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강론자료

대림 2 주일-가해-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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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8-12-04 ㅣ No.8

대  림   제  2  주  일 ( 가 해 )

 

       이사 11,1-10    로마 15,4-9    마태 3,1-12

 

    1998. 12. 6.

 

주제 :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삶의 모습

 

오늘은 대림 주간 2번째 주일입니다.

추운 날씨에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가난한 사람은 어찌되었든 따뜻한 것이 낫다고 하던데, 여러분들은 지금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추워서 몸을 움츠리시는 쪽인가요 아니면 그래도 가슴을 펴고 좋은 생각을 하고 활기찬 모습을 생각하시는 쪽인가요?  우리가 어떤 생각과 자세를 갖든지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자세이고 우리의 마음자세에 따라 맘에 들지 않는 세상을 달리 바꾸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활기찬 생각을 갖기를 권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마음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에 적응하면서 삽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자는 부자대로, 바쁜 사람은 바쁜 일을 처리하면서, 특별히 할 일 없는 사람도 다들 자기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현실에 적응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력하며 살아가는 데에는 신앙도 커다란 역할을 합니다. 신앙은 삶에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은 그것을 담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생기는 희망보다 다른 것을 더 많이 갖고 있다면 새로운 전환이 필요합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는 우리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하느님의 나라, 메시아의 나라를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성서의 말씀이고, 하느님의 말씀이지만 도저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그려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면, 변화되어야 할 요소가 많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고 있는 셈입니다.  

 

부당하게 대우받는 사람이 사라지고, 잔인한 사람이 없는 세상, 정의와 성실이 어울러지고, 동물들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본능을 잃어버린 듯, 전혀 성격이 다른 동물들끼리 보듬고 평화를 이루고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훗날에 이루어질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 세상이 우리에게 하루라도 빨리 다가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그것뿐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머물고 있는 이 곳 고양동 성당 공동체가 좀 더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는 것도 같은 중요성을 갖는 문제입니다.  

 

사람의 세계에서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다들 완전한 것을 찾고 보다 낫고 맘에 드는 것을 찾기는 하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 신(神) 존재 증명을 할 때에도 완전성에 이르는 길로써 하느님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완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찾기는 하겠지만, 그 길에 도달하려면, 독서 첫머리에 나오는 ’하느님의 영’을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을 출발점으로 해서 오는 영(靈)’에 일치할 때라야만 우리의 생활에 윤기 흐르고 활기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지혜와 슬기입니다.  경륜과 용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흔히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임으로써 받게되는 선물입니다.

 

그러한 메시아의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칩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고 말입니다.  ’회개’를 요구하는 요한 세례자의 외침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온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이 세례자 요한의 본 뜻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형식만이 아니라 인간의 온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은 세례를 받기 위해서 요한에게 왔지만 마음은 저 멀리 두고 온 일부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세례자 요한은 독설을 퍼붓습니다.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의 준비를 외치는 사람으로서는 전혀 걸맞지 않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왜 독설을 퍼부었을까요?  그것은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상에도 흔히 쓰는 것처럼, ’귀한 자식에게 매 한 대 더 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된 변화는 우리의 몸에 멋있고 빛나는 옷을 한가지 더 입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벌거벗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움 없는 자세이어야 한다는 외침이 그 안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한 변화를 이야기하는 세례자 요한은 자신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갖고 다가오실 새로운 분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이 대림절은 지내며  바로 그 분이 우리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시기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독서를 통해서 들은 바오로 사도가 제시하는 확실한 변화의 기준은 다른 사람들의 종으로서 사는 것입니다.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으로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종으로 사는 방법은 가끔씩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희생하고 봉사하면서 사는 것도 포함합니다.

 

대림 두 번째 주일은 한국교회에서 정한 ’인권(人權)주일’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귀중한 대우를 받으려면, 다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존경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는 행동입니다.  그가 하고 있는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서 존경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인권을 생각하는 첫 순간에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외칩니다.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이 소리는 또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처음으로 해야 할 사명을 선포하는 것도 됩니다.  여러분들은 세례자 요한의 이 복음선포가 어떤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알아듣는 대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움직인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평가해 주실 것입니다.  올바른 지혜를 위하여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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