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저 여인은 누구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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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2 ㅣ No.818

[길 위의 사람들] 저 여인은 누구실까

 

 

-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 무리요.

 

 

고리 혹은 사슬을 의미하는 라틴어 까떼나(The Catena Legionis)는 ‘먼동이 트이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며, 진을 친 군대처럼 두려운 저 여인은 누구실까?’라는 후렴으로 시작하고 마칩니다. 이 기도는 성모님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정리한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Magnificat)’(루가 1,46-55)이 주가 됩니다. 수도원에서는 저녁 성무일도 때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노래로 바쳐집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 18항에서 성모님을 기도하는 동정녀라고 하시면서 이 찬가 안에 있는 어머니 마리아의 겸손과 믿음과 희망을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옛 이스라엘과 새 이스라엘의 기쁨이 어우러진 메시아 시대의 노래입니다. 성 이레네오는 이 노래 안에서 교회의 예언자적인 음성이 울려 퍼진다고 하셨습니다.(교본 174쪽 참조)

 

이 노래에는 성모님의 잘 정신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성모님의 영혼은 주님을 찬송함으로 빛납니다. 우리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품에 머무르면서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창조된 목적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비천한 인간의 사정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눈으로 비천한 종인 자신을 굽어보셨기에 구세주를 잉태하게 된 것을 탄복하면서 미래에 있을 일을 넌지시 깨우쳐 주십니다. 성모님은 당신 존재의 참된 뿌리가 하느님의 자비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이, 즉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 아나빔에게 드러납니다. 하느님은 하느님께만 의탁하는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겸손의 덕이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로부터 힘을 길어내지 않는 권력과 부는 종종 횡포가 됩니다. 인간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권력과 부는, 돌보고 나누면서 창조 만물을 향유하라는 하느님의 창조 정신과는 반대되는 폭력으로 드러납니다. 이 교만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형태로 표출됩니다. 교만이야말로 은총의 혜택을 가로막는 악덕입니다. 이는 모든 선한 의도로 시작된 것까지도 파괴하고 해체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순명은 교만의 힘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순명은 하느님의 뜻을 따름으로 완성되었기에 모든 세대가 그분을 복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천함은 성모님의 본질, 마음의 가난과 정신을 드러내는 가장 완전한 묘사입니다.

 

사랑이신 삼위일체 안에 머무는 성모님의 깊은 내면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마음자리입니다. 마음속에 자녀들을 품고 계시면서 애틋하게 돌보시는 어머니의 마음자리에 가 닿으십시오. 성모님은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와 나누기를 원하시는 자애로운 어머니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 귀한 아드님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시고,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아픔을 겪으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십니다.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의 뜻을 합하신 성모님의 노래를 중심에 둔 까떼나야말로 우리 기도의 기반입니다.

 

 

성모님의 노래를 중심에 둔 까떼나야말로 우리 기도의 기반

 

미국에 거주하면서 성모님의 사랑에 푹 빠져 사는 그레고리오 형제님과 미카엘라 자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레지오 마리애에 기고할 세 번째 글을 쓰는 과정 중에 주신 꿈 덕분입니다. 2월11일, 새벽 저는 아주 평화롭게 성당을 향했습니다. 평상시와 달리 맑은 기운으로 묵상을 시작하면서 저는 꿈을 떠올렸습니다.

 

눈 덮인 언덕 위에서 해맑게 웃으면서 휴식하는 가족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사진으로 본 눈 덮인 지붕과 나무들이 있는 마을을 담은 풍경이 낯설게 여겨졌습니다. 열흘이 지난 후, 저는 그곳이 메주고리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심도 두지 않던 곳이 왜 무의식에서 떠올려졌을까를 생각하다가 그곳의 정보를 찾아보았습니다. ‘나의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라는 책이 있어 얼른 한 권을 주문했는데, 그 책은 제가 수녀원 도서관을 정리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이었습니다. 책을 보면서 저는 성모님께서 우리들의 삶의 자리로 직접 다가오시는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다른 수녀님들의 부탁으로 다시 책을 주문하면서 평화의 모후 선교회 미카엘라 자매님과 연락이 닿았는데, 알고 보니 그분은 43년간 미국에 살고 계셨습니다.

 

미카엘라 자매님은 9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신당을 모시고 굿을 하는 계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미카엘라 자매님은 명동성당 주변에 있는 직장을 다녔는데, 어느 날 성모 동굴에 들렀습니다. 성모님 앞에 섰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서 평화로운 마음이 일어 그 후 가족들 몰래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명동성당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해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지금의 남편, 그레고리오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결혼 후 미국으로 가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 40세가 되어 다운증후군에 속한 염색체 이상의 신드롬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미카엘라 자매님은 평소 장애를 가진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싶은 바람도 있었는데 막상 자신의 아이가 그렇다니 하느님께 마음이 돌아섰습니다. 그레고리오 형제님은 그런 아내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54일 기도를 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던 중 메주고리예에서 매일 성모님께서 발현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보스니아 헤르체코비아는 내전 중이어서 아주 위험했습니다. 더구나 메주고리예는 아직 성지로 반포되기 전이었습니다.

 

다녀와서 위안을 받고 그 아이가 성모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확신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성지를 다녀오라고 권했지만, 자매님은 “성모님께서 메주고리예만 계시냐, 어디든 다 계시지”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그레고리오 형제님은 성모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를 시작했는데, 3일째 되는 날 완고한 미카엘라 자매님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던 미카엘라 자매님은 메주고리예에서 천상의 어머니를 만나 그 환희를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합니다.

 

다녀온 후 한 달 안에 다시 한 번 성지를 방문하고 그레고리오, 미카엘라 부부는 잘 나가던 직장과 가게를 처분하고 평화의 모후 선교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22년 동안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을 온 세상에 전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미카엘라 부부는 지금도 레지오 협조단원으로서 순례자들과 레지오 단가를 부를 때 가슴이 설렌다고 합니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하느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저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부자들의 횡포로 전쟁이 일어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 곳을 잃어가는 이 세상에는 끊임없이 바쳐지는 까떼나가 절실합니다. 언제나 기도로 초대하시는 성모님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오늘도 묵주를 손에 들고 성모님과 일치하여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7월호,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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