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여주 양섬: 신앙선조들 부활 기쁨 함께 나누다 체포된 곳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6-21 ㅣ No.1555

[우리 교구 이곳저곳] (11) 양섬


신앙선조들 부활 기쁨 함께 나누다 체포된 곳

 

 

- 2015년 5월 여주본당이 복자 최창주 등 양섬에서 체포된 순교자들의 이름을 새겨 세운 비석.

 

 

박해시기 신앙을 지켜내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자유롭게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오늘날, 박해이야기는 모질고 가혹하기만 하다. 하지만 신앙선조들은 그런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생활했다. 그런 신앙선조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 경기도 여주 양섬이다.

 

경기 여주, 세종대왕이 묻힌 영녕릉이 바라보는 남한강에는 48만㎡ 규모의 반달모양 섬이 있다. 바로 양섬이다. 

 

예로부터 양섬의 풍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해 여주 팔경으로 꼽히곤 했다. 조선시대 사관(史官) 최숙정(1433~1480)이 양섬에 내려앉은 기러기의 모습을 시로 노래했을 정도다.

 

양섬에 도착하니 섬 전체에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남한강과 산의 풍경은 가히 여주팔경이라 불릴 만했다. 

 

양섬의 경치를 만끽하면서 입구로 들어서니 조그만 비석이 놓여있다. 바로 용인대리구 여주본당이 2015년 5월 31일 세운 순교자 기념비다. 기념비에는 복자 최창주(마르첼리노)·이중배(마르티노)·원경도(요한)·조용삼(베드로)과 순교자 정종호·임희영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에 새겨진 신앙선조들은 이곳에서 체포돼 순교의 길을 걸은 이들이다. 이 아름다운 양섬에서는 신앙선조들이 부활대축일을 맞아 함께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며 기쁨을 나누던 행사가 이뤄졌다.

 

행사를 주최한 이는 양섬에 살던 순교자 정종호였다. 정종호는 여주 출신으로 신자집안에서 태어나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또 1800년 박해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부활대축일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신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양섬에 모인 신자들은 큰소리로 기도하고 기쁨에 가득 차 부활찬미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외교인의 밀고로 잔치에 참여한 신자들이 모두 체포됐다.

 

하지만 이들의 잔치는 계속 ‘진행형’이었던 것 같다. 의술을 익혔던 복자 이중배는 옥중에서도 많은 환자를 낫게 하고, 잔치를 주최한 정종호는 다른 신자들이 나약해지지 않고 바른 신심으로 용기를 갖도록 격려했다. 그들이 신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은 포졸마저도 신자가 되도록 영향을 줬다. 순교자들은 지금의 여주성당 인근 여주형장에서 처형됐는데, 이날 참수형을 집행했던 희광이가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받은 나머지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산책로를 따라 양섬을 한 바퀴 거닐었다. 양섬은 하천환경정비공사의 하나로 2012년 양섬지구공원으로 정비됐다. 시원한 강바람에 산책하기에는 더없이 좋았지만, 신앙선조들이 머물던 옛 모습이 어땠는지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순교자들이 이곳 어딘가에서 함께 모여 성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기에 순교자들의 기쁨을 기억하면서 성가를 흥얼거렸다.

 

양섬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순교자 기념비에 개망초가 올라가 있었다. 섬 안에 조성된 야구장과 야영장, 보트선착장, 한강 자전거길 등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기에 누가 올려뒀는지, 순교자들을 위해 올려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쩐지 박해 속에서도 박해자들에게 짓눌리지 않고 기쁨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개망초의 꽃말처럼 ‘화해’의 마음으로 살아갔기 때문이라고 순교자들이 알려주는 듯 했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6년 6월 19일, 이승훈 기자]



3,74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