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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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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순교, 완성된 그리스도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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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13 ㅣ No.1561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순교, 완성된 그리스도인의 삶

 

 

사랑은 주는 것이다. 순교는 사랑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그 생명을 받아들이면 순교가 사랑 안에서 완성된다. 이웃에게 시원한 물 한 잔 내어주는 것도 현대적 의미의 순교라고 할 수 있다.

 

 

순교, 자신의 목숨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

 

그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니, 은총이었다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그조차도 나중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이곳에 제일 먼저 온 선교사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전부터 이들의 문화 속에 슬그머니 복음화의 밑거름을 뿌려 놓으셨습니다.”(이태석 신부의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중)

 

영화 <울지 마 톤즈>로 널리 알려진 고(故) 이태석 신부(1962∼2010, 살레시오회)와의 인연은 그의 고향인 부산에서 시작됐다. 1980년대 중반 부산교구 고등학생연합회 활동을 하던 우리들에게 그는 이미 그 ‘유별남’ 또는 ‘독특함’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모두가 힘겨워하던 시절 무려 형제가 10남매나 됐으니…. 그 열 중에 한둘은 이리저리 아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태석 신부는 당시 부산에서도 ‘달동네’로 알려져 있던 남부민동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가 아홉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삶이 얼마나 곤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의 어머니는 자갈치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해 자녀들을 키웠다.

 

어려움 속에서도 학창시절 내내 송도성당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는 누구나 부러워할 의대생이 됐다. 여기까지였다면 그는 우리 또래에게도 편한 선배나 형이 됐을 터였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있을까, 군의관으로 군 복무을 마치고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돌았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다. 2001년 6월 서울 구로3동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그는 그해 10월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떠났다, 마치 미리 정해진 길을 찾아가듯….

 

병실 12개짜리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봤다. 시간 날 때마다 인근 80여 개 마을을 순회하며 가난 때문에 목숨줄을 놓아야 하는 이들의 삶을 거들었다. 학교를 짓고, 초·중·고교 12년 과정을 꾸려 직접 수학과 음악도 가르쳤다.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다. 톤즈 아이들에게 ‘쫄리’(John Lee, 이 신부의 별명) 신부로 불린 그는 그렇게 가난한 이들과 하나가 되어갔다.

 

그러나 2008년 11월 휴가 차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대장암 진단을 받고 다시는 톤즈의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만다. 투병 끝에 2010년 1월 14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기 직전까지도 그는 아프리카에 두고 온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이 신부가 자신의 몸도 돌볼 여유 없이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다 하느님께로 돌아간 지 6년, 그로 인해 무수한 생명들이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음을 본다. 이태석 신부의 삶과 ‘순교’를 연결시키기에 조금도 어색함이 없다. 이웃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해주려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 곧 순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신부의 삶은 현대의 가장 완전한 순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순교 = 증거

 

증오가 온 세상 덮을 때에도 죽음보다 강한 ‘사랑’ 증거, 지난 2000년간 20세기 순교자 절반 이상 차지

 

라틴어 ‘마르티리움 martyrium’, 곧 순교는 그리스어 ‘마르티리온 martyrion’에서 비롯된 말이다. 본래 뜻은 ‘증언’ 또는 ‘증거’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치는 순교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진실성을 죽음으로써 증명하는 행위다. 그런 면에서 순교는 그리스도인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성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박해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는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면서 더욱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2002년 ‘제네바 보고서’에 따르면, 2억 명 정도의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유엔 인권선언에서 정의한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후 그리스도인 대상 폭력 사건으로 확인된 사망 사건이 최소 1건 이상 발생한 국가만 해도 40개 나라가 넘는다.

 

‘도움이 필요한 교회 구호’(Aid to the Church in Need, 이하 ACN) 이탈리아지부가 200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1,000명 가까운 그리스도인이 신앙 때문에 살해당했다. 특히 콜롬비아에서는 2002년 한 해에만 127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됐다.

 

ACN 보고서는 특히 아시아와 중동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 안에는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가 지정한 종교자유 침해 특별관심 국가 11개국 중 6개국이 들어있다. 특히 ACN은 북한에서 10만여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강제 수용소에 구금돼 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에서는 가톨릭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이 납치돼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1999년 독립한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점령 하에서 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다.

 

교황청 해외선교연구소가 발행하는 선교지 ‘몬도에미씨오네’에 따르면, 전 세계 독재 정권 하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정권의 골칫거리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교회 내 관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에 대해 ▲ 독재정치 ▲ 민족주의 부상 ▲ 배금주의 등을 주된 요인으로 꼽는다. 한마디로 반그리스도적인 흐름과 이 같은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공동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순교자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은 7,000만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5%에 해당하는 4,550만 명이 20세기 들어 희생됐다. 인류의 이성이 그 어느 때보다 고양된 시대에 반이성적인 일이 벌어졌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20세기의 가톨릭 순교자들》의 저자 로버트 로열(Robert Royal)은 20세기는 그리스도교 순교 역사 안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이탈리아 저널리스트 안토니오 소치는 저서 《새 순교자》를 통해 “20세기는 그리스도교 순교사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인 시기였다.”고 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지난 1998년 11월 대희년을 선포하면서 “세상의 모든 교회는 순교자들의 증언을 기리고 그들을 열렬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현대의 순교자들이 보인 순교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후 2000년 5월 7일 콜로세움에서 1만 2,692명의 그리스도인을 ‘신앙의 증인’으로 선포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20세기 들어서 초세기 순교자들보다 훨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웅적으로 신앙을 증거했다.”고 밝혔다.

 

대희년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로 꼽힌 신앙의 증인 선포식에서는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 등 교파를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이 망라된 명단이 발표됐다. 여기에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에디트 슈타인,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 디트리히 본 회퍼를 비롯해 1980년 산살바도르에서 살해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등이 포함됐다.

 

특히 6·25 전쟁의 희생자를 중심으로 1901년 제주 신축교난 당시 사망한 가톨릭 신자 206명과 성공회 신자 6명 등 215명의 한국교회 현대 순교자도 포함됐다.

 

20세기 들어 이 같은 새로운 형태의 ‘순교자’들이 대거 나타나게 된 것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공산주의·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출현,

독재정치, 내전 등 다양한 배경을 들 수 있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콜베 신부뿐만 아니라 1939년부터 1943년 사이 100여 명의 독일 예수회

신부들이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주로 남미의 독재정치 아래서 순교가 이뤄졌다. 러시아에서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등을 거치면서 20여만 명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살해됐다. 아시아지역에서 순교자가 생긴 주된 이유는 이슬람과의 충돌이다. 또 아프리카에서는 인종 분쟁으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현대의 순교

 

1999년 12월 24일 대희년이 개막되면서 열린 성베드로대성당의 성문은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으로 장식돼 있었다. 순교의 역사로 일컬어지는 교회의 역사는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아픔을 보지 못한다면, 애써 외면한다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 신학자 발터 카스퍼 추기경(전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은 현대적 순교 개념을 ‘그리스도교적인 동기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자유를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투신하고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광(이냐시오)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올바른 방향 제시, 공정한 경제발전을 위한 가르침, 사회적 불평등의 척결, 약자의 우선적 선택과 존중, 문화적 소외지대 척결과 편견 극복을 위한 노력에서 순교 정신의 계승성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따져보면 그리스도인의 일상이 박해와 순교가 동시에 이뤄지고, 늘 부활이 일어나는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 황종렬(레오·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소장은 “일상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하느님 살림을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모든 것이 박해이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함께 연대하며 그들 가운데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오늘날의 순교”라고 말한다.

 

황 소장은 아울러 “박해와 순교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여정에서 순교신심을 가다듬어 나갈 때 부활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홍 신부(부산교구 오륜대순교자성지 담당) “옛날에는 박해를 이겨내고 목숨을 내놓는 것이 순교였다면 오늘날은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유혹을 뿌리치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순교”라고 강조했다.

 

신앙 선조들의 순교의 피 위에서 교회가 탄생했다면 우리도 매일의 작은 순교로 이웃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느님을 알기 때문에 순교할 수 있다. 하느님을 모르는 이에게 사랑으로 다가가 새 생명의 물을 주고, 새 생명의 불을 붙여주는 것이 오늘의 순교다.

 

[평신도, 2016년 여름(계간 52호), 정리 서상덕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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