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사순 3 주일-나해-2003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03-23 ㅣ No.397

사순 제 3 주일 (나해)

 

                출애굽기 20,1-17     1고린토 1,22-25     요한 2,13-25

 

    2003. 3. 23.

 

주제 :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

 

안녕하십니까?

봄이라고 맞이한 3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춥다고 말을 해도 몸이 움츠러들 만큼은 아닙니다.

 

오늘은 사순시기 세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주일에 들은 말씀의 내용은 우리 삶이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서기 위하여 꼭 갖춰야할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출애굽기 독서는 세상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뜻을 담은 십계명을 전하며, 요한복음은 하느님을 모시는 도구이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도구인 몸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 선포된 뒤로 약 35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고 하지만 그 하느님의 뜻이 실천돼야 할 세상의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을 것입니다.  그 계명이 실현되는 세상을 하느님은 어떻게 보실까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이 오늘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더러 그 계명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라면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을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이 그렇게 반응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저 역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명이 처음부터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울리는 북소리에 불과할 것이고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약 400년간 머물며 겪었던 삶의 고난을 바꾸게 하고 삶의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것이 십계명이 향하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새로운 공동체로 태어날 이스라엘 백성 안에서는 그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느님은 십계명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랬지만 그 십계명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여전히 실현돼야 할 것으로 다가옵니다. 사람의 힘을 앞세우기 시작하면서부터 하느님의 말씀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그것입니다.

 

긍정명령과 부정명령이 섞여서 반복되는 것이 십계명의 내용입니다.  그 표현을 보고 들으면서 ‘긍정 혹은 부정’명령이라고 구별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게 긍정명령이라면 따를 것이고 부정명령이라면 무시해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게 긍정의 형태이든 부정의 형태이든 항상 지켜져야만 사람의 생활은 행복으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을 향해서 가야할 마땅한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해서는 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면 그곳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곳도 아니고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고 하더라도 슬퍼하는 곳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복음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채찍을 들고 행동하도록 우리가 예수님을 몰아세우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엊그제(3/20 11:35) 부자이고 힘이 센 미국은 가난하고 힘이 약한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자기 맘대로 정한 ‘악의 축’이고 어쩌고 하는 표현을 빌려 지상에서 없어져야 할 곳으로 지목된 곳과 벌린 전쟁입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릇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들에게 맡깁니다.  한 해 평균 국민소득 70만원인 나라와 4000만원이 넘는 나라의 싸움입니다. 내가 그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안에 감춰진 마음 자세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장사를 하려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도움이 되는 선에서 해야 하는 것이지 인간의 생각을 담고 그 인간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강요하는 선에서 하는 행동이라면 예수님의 채찍밖에 기대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십계명을 선포하는 하느님, 사람들의 마음에서 잘못된 것을 몰아내고자 채찍을 휘두르는 예수님이 기대하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일에 대해서 자기 권리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싶은 사람들은 당연히 화를 낼 것입니다.  다음 문제는 사람들이 흥분하는 내용이 어디까지 합당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이신 행동은 분명 그분의 활동에 장애로 다가왔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당신의 의지를 꺾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하느님의 뜻은 그렇게 적용될 것입니다.

 

사순시기 세 번째 주일에 듣는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부담스럽게 여긴다면 내가 삶에서 바꿔야 할 자세가 많은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내가 아직은 하느님의 뜻에 가까이 가 있지 않다는 소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일입니다.



45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