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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본당순례: 옛 교우촌처럼 여전히 숙연함을 자아내는 장재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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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09 ㅣ No.978

[본당순례] 옛 교우촌처럼 여전히 숙연함을 자아내는 장재동성당

 

 

진주의 고즈넉한 외곽지역 주택가에서 장재동성당을 만난다. 입구 오른쪽에 선 <장재동본당 이야기>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마당에 발을 들여놓으면 왼쪽 담벼락을 따라 야외 십자가의 길이 나 있다. 한 처씩 따라가면 뒷동산으로 오르고, 14처가 끝날 즈음에 자그마한 성모동굴이 나타난다. 1938년 조성하여, 모신 성모님은 몇 번 바뀌었지만 동굴은 그때 그대로이다. 그리고 예전 성당으로 쓰이다 사제관으로 사용했던 오래된 건물과 종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소박한 길을 순례자의 걸음으로 걸으면 이곳에 깃들였던 신앙의 숨결이 전해질 수 있다.

 

 

오래된 신앙의 뿌리

 

장재동은 ‘비라실’ ‘장재리’ ‘장재실’이란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곳에 인동 장씨 3형제가 이주하였는데, 막내인 장익금이 병인박해가 이어지던 1871년 천주교 신자인 문산 제씨와 혼인하였다. 4년쯤 후 장익금은 부인의 권유로 이시도르로 세례를 받았고, 그들이 비라실의 첫 교우가 되었다. 그 후 형제들과 친척들도 모두 입교하여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이곳에서 계속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워, 비라실 안골로 이사했다. 맏형의 집을 임시 공소로 사용하였으며, 장 이시도르는 첫 공소회장을 맡게 되었다.

 

1888년 진주에서 윤봉문 요셉의 순교가 있었다. 이때 장 공소회장과 몇 사람이 순교자의 시신을 빼내어 말티고개를 넘어 공소 뒷산인 교우산 너지골에 가매장했다. 8년 동안 비라실 교우들이 가매장 터를 지켰기에, 1896년 순교자 후손들이 거제 족박골로 시신을 옮겨갈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비라실 교우들의 신심이 깊어지고, 신자가 불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장재리공소는 문산본당 관할이었다가, 진주(옥봉)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하며 오랜 공소시절을 마감하고 1938년 6월 장재동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본당 설립은 85주년에 달하지만, 공소가 꾸려진 역사를 더하면 100여 년 이상 이어온 신앙의 터전이다. 흔한 개신교 십자가 하나 보이지 않는 성당 동네이다.

 

 

주님의 터전을 지키고 가꾸어

 

임해원 안토니오 주임 신부, 장용희 바오로, 김순정 모니카, 박주영 도미니카 사무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장용희 바오로는 장익금 이시도로의 후손으로 몇 차례나 회장을 역임했다. 이제 연로하여 직책은 맡지 않아도 자녀들과 손자들까지 신앙의 고리를 만들며 자리를 지킨다. 김순정은 현재 회장인 금영제 아우구스티노의 모친으로, 바쁜 아들을 대신하여 평일미사에 참여하고 본당일에 보탬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미사에서는 봉헌자가 아니라도 아픈 사람들을 일일이 호명하고 지향하여 미사를 올리는 사제의 정성에 고개를 숙인다. 박주영 도미니카 사무장은 어르신 산간학교가 2박 3일로 진행된 때를 떠올렸다. 젊은 자매들이 봉사하여 식사를 제공하고 30여 명 어르신들이 캠프생활을 했던 꿈같은 시간이었다. 올해는 숙박은 못해도 하루 나들이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단다.

 

현재의 성전은 1957년에 건립하여 때마다 보수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다. 임해원 신부는 부임 후 노후한 면면을 살폈다. 목재로 된 야외 십자가의 길은 훼손이 심해 2021년 10월에 새로 마련했다. 작가의 도움으로 디자인하고, 서울 신자가 후원하여 대리석 조형물로 설치했다. 11월에는 자갈로 되어 불편했던 마당에 블록을 판판하게 깔고 잔디를 심어 통행이 수월하게 공사했다. 12월에는 <장재동본당 이야기> 게시판을 설치했다. 이듬해 봄에는 벽돌을 붙이는 성전 외벽공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본당주보성인 소화 데레사도 성전 입구에 모셨다. 연이어 창문 공사를 마무리하여 4월에 축성식을 가졌다. 과제는 많고 재력도 인력도 부족한 성당이지만, 하나씩 이루려고 할 때마다 뜻밖의 천사가 나타나 힘을 보탰다.

 

본당출신 사제 최태준 필립보를 뒤이을 귀한 신학생 장규원 마태오가 있는데, 장용희 바오로의 손자이다. 2학년을 마치고 입대해 군복무 중이지만 본당에서는 2호 사제가 탄생하도록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임해원 신부는 신학생이 입대하기 전에 본당의 역사를 찾고 정리하여 파일을 만드는 작업을 함께했다. 이 작업을 매듭짓기 위해 신학생이 10월에 제대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85년이 된 본당 역사를 비록 책으로 발간하지 못하더라도 더 늦기 전에 자료를 정리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려고 한다.

 

 

한 가족처럼 옹기종기

 

주임 사제는 몇 대에 걸친 신자들이 한 가족처럼 옹기종기 살아간다고 자랑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이야물 세실리아 자매가 87세로 선종했다. 레지오 활동 등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외지의 자녀들은 모두 신자가 아니고 돈도 관심도 없었다. 이에 오래 함께 생활했던 안타까운 30여 명 신자들이 마음을 모아 백만 원을 마련해서 연미사를 청하는 것을 보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교리교사 3명이 애쓰는 주일학교도 있다. 올해는 드물게 5명이나 첫영성체를 했다. 교리가 있는 기간 동안 아이들의 소리가 성당을 즐겁게 만들었고, 주일미사에는 쩌렁쩌렁한 아이들 소리에 어른들 가슴이 벅찼다. 성가대가 한 달에 한 번은 주일미사에 성가를 부르고, 반주자도 네 명이나 되어 각 미사를 담당하여 전례를 북돋운다. 아파트단지 덕분에 주일미사 참례자도 조금씩이나마 늘어나고 있다.

 

교구에서 농아선교회 수어미사를 맡고 있는 임해원 신부는 지난해 본당의 날에 농아인 교우들을 초대하여 수어미사를 올렸다. 미사 후에는 그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본당 신자들이 나와 다른 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원했다. 이만하면 됐다는 선을 그어서 실행하는 것은 부족하단다. 한계를 짓는 것은 주님 뜻이 아니란다. 한발자국 넘어서는 지점에 하느님 나라의 국경선이 있단다.

 

  

[2023년 7월 9일(가해) 연중 제14주일 가톨릭마산 4-5면, 황광지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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