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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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길 위의 사람들: 사랑의 불을 놓으시는 성령에 힘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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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03 ㅣ No.823

[길 위의 사람들] 사랑의 불을 놓으시는 성령에 힘입어

 

 

-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로 시작되는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은 우리가 성모님과 어떻게 연결되어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성령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고 우리 영혼 안에 사랑의 불을 놓으시어 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시는 성모님의 사랑과 뜻에 일치하게 도우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는데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선서문을 통해 고백하게 됩니다(교본 제15장 레지오의 선서문 참조).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에 힘입어 우리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과 함께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선서문은 성모님의 병사요, 자녀로서 온전히 성모님께 의탁하는 우리 각자의 신원을 확인시켜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뜻에 의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들도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순간, 모든 것은 은총으로 다가옵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이끌려 혹은 내 생각과 판단으로 이곳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착각인지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계시고 지켜보시고 이끌어 가시고,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성령께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성모님께서는 성령의 신부이십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성모님을 감싸(루카 1, 35)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셨으니 말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 모든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도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또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40주야를 단식하시면서 악마와 대적하십니다.

 

 

성령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어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구에 살고 계신 소화 데레사 할머니의 입교와 그 후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저를 생생한 하느님 체험으로 이끌었습니다. 데레사 할머니는 3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첫 남동생은 6‧25 때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이때 소화 데레사의 어머니는 인보성체회 수녀님을 만나 갓 태어난 아들에게 세례를 주고 가톨릭 신앙과 접하게 됩니다. 여아들 중 넷째 그러니까 소화 데레사의 바로 아래 동생이 어린 나이에 악령에 들려 시달리다가 세례를 받으면서 ‘아멘’하고 죽게 되는데, 이 광경을 지켜본 9살 소화 데레사는 하느님이 계심과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흔들림 없는 믿음을 선물로 받아 이때까지 한 번도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희생묵주.

 

 

악령에 시달리다 죽는 동생을 지켜보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알아 뵙게 된 9살 소화 데레사는 늘 하느님을 마음에 품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5학년 때 수원으로 이사했습니다. 이때 소화 데레사는 어머니께 “나는 성당이 있는 학교에 다닐 거에요.”라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혀 북수동성당 내에 있는 소화초등학교에 전학할 수 있었습니다. 소화 데레사의 신앙은 순수하게 키워졌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현존은 소화 데레사에게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학교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님들이 계셨는데 수녀님께서는 희생묵주를 만들어서 소화 데레사에게 건네주셨습니다. 소화 데레사는 희생을 봉헌하기 위해 매시간 수업이 끝날 때마다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있는 성당으로 달려가 성체 앞에 오도카니 앉아 10분간 조배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조배가 뭔지도 모르면서 했는데 이러기를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했다고 합니다. 똑똑하고 뭐든지 잘했던 소화 데레사는 언제나 순교할 것을 꿈꾸면서 어떻게 해야 일상 안에서 순교를 하게 될지를 생각했습니다.

 

아쉽게도 성당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다시 이사를 가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하느님께 희생을 바치고자 3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걸어 새벽 6시 미사를 하고 다시 걸어서 집에 왔다가 다시 학교를 걸어가는 희생을 바쳤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희생을 바치는 13살 소녀 소화 데레사를 상상해 보십시오. 어떻게 이 소녀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이 떠날 수 있겠습니까?

 

 

‘나의 성소는 순교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노래를 잘했던 소화 데레사는 자매회에 입회해 청년 성가대 활동을 하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지금은 시누이가 되신 선생님 한 분을 만나게 되는데 그분은 소화 데레사의 신심 활동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 선생님의 집안은 순교자 집안이었고, 선생님은 수원교구에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한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집안의 신앙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소화 데레사가 지닌 강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여겨 아직 여고생인 소화 데레사를 자신의 남동생과 혼인할 대상으로 점지했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렸다가 남동생을 만나게 됩니다. 오직 하나 순교자가 있고, 대대로 성직자, 수도자가 난 집안이라는 것 하나만을 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혼인을 했습니다. 신앙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혼인해서 보니 집안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이때부터 ‘나의 성소는 순교다’라는 마음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남편은 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큰 딸아이가 10살 때 남편은 교통사고로 장애자가 되어 누워 생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 매일 밤 묵주기도를 하면서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기도가 몸에 배어 갔습니다. 남편의 시중을 40년을 들었는데 몇 년 전에 남편은 하늘길에 올랐습니다. 삯바느질부터 안 해 본 일없이 다 하면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진복자다.’는 말씀을 품으며 어려움과 유혹들을 견뎌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뜻하지 않은 시간에 성령께서 마치 옆에서 말씀하시듯 또렷하게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큰 위안이 되어 삶에 생기를 더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들을 신앙으로 키우면서 남모르는 눈물도 많이 흘리셨을 소화 데레사 할머니는 성모님을 닮으셨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이들은 다들 교회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 1시간 묵상을 하고, 온몸과 마음과 영혼을 다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침묵 중에 성직자, 수도자인 자녀들을 위해 또한 교회를 위해 자신의 기도가 하늘로 올려지기를 바라면서 성령과 나누는 친교 안에서 살아가십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8월호,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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