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교의신학ㅣ교부학

[성령] 성령과 기: 중국철학에서의 기(氣)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1 ㅣ No.222

성령과 기(氣) : 중국철학에서의 기(氣) (1)

 

 

1. 들어가며

 

기(氣)는 중국철학에서 유래하는 개념으로 쉽게 정의되지 않는 매우 복잡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기란 개념은 몇몇 철학자들로부터 유래하는 것도 아니고, 한 명 혹은 여러 명의 철학자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 세운 어떤 확실한 이론에 속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개념에는 너무나 많은 상반된 견해와 해석들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를 물질로 정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영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고 물질과 영도 아닌 제3의 존재로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기는 하나의 철학적 개념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는 소위 ‘인기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판도라의 상자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이 ‘기’라는 개념인 것이다.

 

기개념은 대략 3,000년 전 중국철학과 때를 같이하여 생성된 너무나 오래된 개념으로서, 철학적인 개념으로 논의되기 이전에 벌써 민중의 일상 속에 살아 있었던 개념이다. 사람들은 위대한 자연의 현상을 기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하였으니, 먼저 하늘에 떠있는 신비한 ‘구름’을 ‘기’라고 보았다. 그 밖에도 사람들은 전 우주와 만물을 뒤섞으며 최종적인 일치에로 중재하는 역동적이고 근원적인 힘 등을 기로 이해하였으니, ‘공기, 입김, 숨, 생명의 숨결, 에너지, 내면적이고 심리학적인 힘, […] 생명의 힘’ 등이 기의 원초적인 이미지들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기에 대한 관념들은 앞에서 살펴본 ‘성령’의 구약성서적인 개념인 ‘ruah’와 신약성서적 개념인 ‘pneuma’와 비슷하다.)

 

이러한 개념으로서의 기는 오늘날에도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에서의 의학(특히 침술), 예술, 철학, 학문, 마술, 무술(태극권 등), 건축, 도시계획, 영업계획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데, 근래에는 무엇보다도 건강상의 회복과 일반적인 안녕을 목표로 하는 기운동 혹은 기공이 유행이다.

 

중국철학에서의 기에 관하여 고찰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대부분의 중국 철학자들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더 많이 다룬다는 것이고, 개별적인 질문을 즐겨 추구하지만 그에 관한 구조적인 표현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에 관한 상세하고 조직적인 연구에는 당연히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며, 그러기에 기를 논할 때에는 개별적인 저자들에 관계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이해해야 하다. 그렇다고 해서 기개념에 관계한 모든 철학자들을 다 논한다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중국적인 기 이론은 한국 혹은 일본의 기 이미지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중국 외의 수많은 철학자들의 생각들을 다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우선 중국 철학자들의 기 이론을 소개하며, 아울러 기에 관한 한국 철학자들의 중요한 사상들도 설명할까 한다. 하지만 이 글의 목적은 “기사상의 연구”가 아니라, “기개념의 도움으로하는 성령이해의 토착화”를 검토함에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싶다. 기 이론들과 그리스도교적인 (성령)신학 사이에는 외관상으로는 서로 분명하게 밀접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 간에 공통점과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중국 고대에서의 기관념의 발전

 

중국철학의 주된 내용은 고대에 발전되었는데, 기개념도 고대의 초기 고전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고대의 사상가들은 만물을 기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였으며, 이런 이유로 기는 관념상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하여 기개념은 진(秦)왕조 이전, 즉 기원전 2100-221년에 그 발전의 첫 단계를 지나게 된다.

 

가. 기라는 단어에 대하여

 

기(氣)는 고대 중국 문자 ‘三’ 혹은 ‘   ’에서 유래하는데, ‘三’과 ‘   ’는 구름의 흐름을 뜻한다. 三은 물론 ‘셋’을 나타내고 ‘다수’의 뜻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三’과 ‘   ’는 기가 구름처럼 여러 단계로 피어오른다는 것을 나타낸다.(구름기운 기< >참조) 이렇게 하여 기는 처음에 ‘운기(雲氣)’를 의미하였다. 고대의 사람들은 하늘에 신비하게 떠있는 구름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우주적인 질문을 기로써 설명하였으니, 기는 무엇보다도 신적인 에너지로 파악된 것이다.

 

나. 좌전과 국어에서의 기

 

연대기인 좌전(左傳)과 국어(國語)에서는 기가 철학적인 의미를 갖추어 나타나는데, 여기서 기는 하늘과 땅과 인간의 ‘생성’과 ‘변화’와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다. 기에 관한 이론이 아직도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사회의 현상에 대한 좌전과 국어의 해석은 기개념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

 

* 좌전에서의 기

 

상(商)나라(기원전 16-11세기)의 연대기 좌전에서 기는 만물과 자연의 ‘미세한 물질’로 나타나는데, 이 물질은 ‘운동’하고 ‘변화’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물의 운동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기는 음(陰), 양(陽), 풍(風), 우(雨), 회(晦), 명(明)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육기(六氣)라고 하며, 좌전은 육기의 교감과 변화로 ‘봄(春)·여름(夏)·가을(秋)·겨울(冬)’ 네 계절의 형성과 ‘금(金)·목(木)·화(火)·수(水)·토(土)’ 오행(五行)의 발생 및 ‘매운맛·신맛·짠맛·쓴맛·단맛’ 다섯 가지의 맛(五味), ‘흰색·푸른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 다섯 가지의 빛깔(五色),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 다섯 가지의 소리(五聲)의 생성을 설명하였으며, 사람 몸의 질병은 물론이고, 사람의 사상과 ‘좋아하고 미워하며 기뻐하고 성내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여섯 가지의 감정(六志)과 의지도 육기에서 근원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기는 인간의 세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이해되는데, 하나의 기가 너무 지나치면 균형을 잃게 되고 뒤섞여서 사람들이 본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기는 예로써 받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좌전의 가르침이다.

 

* 국어에서의 기

 

주(周)나라(기원전 11세기-221년)의 연대기 국어(國語)에서 기는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로 나타난다. 즉 기는 “하늘과 땅의 기’ 혹은 ‘음과 양의 기’로 이해되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개의 기가 자연의 객관적인 본질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국어에 의하면, 음과 양의 두 가지의 기는 서로 대립되어 있고 모순되면서도 서로 의존하며 작용하는 것으로, 기 내부의 이 같은 대립과 교감운동이 만물의 운동과 변화를 야기시킨다. 음양의 기에 대한 이러한 사상은 중국철학에서의 기관념에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천지음양의 기로서의 기사상(氣思想)은 오늘날의 자연보호운동과도 어울리는 사상이다. 산과 늪, 시내와 못은 음양의 기가 만든 것으로 합당한 이유로 높거나 낮고 구체적 형상과 종류를 이루고 있으니, 음양의 기는 파괴되지 않으면 그 질서를 잃지 않고, 동식물이 풍부하게 번식하며, 백성들은 재물을 쓸 수 있고 편히 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음양이 어울려 두 기가 통하는 것이 온 세상에 복이 되는 것이다.

 

국어는 기를 정치의 원리로 고찰하면서, “정치는 음악과 같으니 음악은 조화를 따르고, 조화는 고름을 따른다.”고 한다. 따라서 음양의 기가 조화되는 것은 곧 정치를 위한 기초를 형성하는 것이다. 국어에 따르면 인체도 기로 이루어져 있으니, 기는 사람의 모습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성정(性情)도 결정한다. 사람은 자기 몸 안의 기를 지켜 음양의 조화를 이룰 때, 그 마음에 조화를 유지하고 말함에 실질을 갖게 되며, 행위에 마땅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기는 평안해야 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받아들여야 하며, 입은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기는 인간의 심성수양(心性修養)과 관련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3. 초기 고전 유교와 도교에서의 기

 

유교와 도교는 서로 심하게 결합되어 나뉘어질 수 없는 사상체계이며, 여기서 기는 우주의 구성재료로 고찰된다. 중국 사상의 이 두 기본 방향의 공통점은 이러한 사상이 음양과 오행(木·火·土·金·水)이라는 고대 두 학설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이다.

 

가. 초기 유교에서의 기

 

유교는 중국철학의 근본 실체이며,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하나의 중요한 학파이다. 이 가르침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충성과 관용, 절제와 중용을 옹호하는 특징이 있다.”

 

* 공자의 기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는 유가학의 창설자로서 중국의 철학적 사상을 여는 사람이며, 후대의 계속되는 모든 중국 사상체계의 준거가 되는 사람이다. 그의 말을 기록한 논어(論語)는 기의 문헌적 고찰에 있어서 중요한 작품으로서 기를 네 가지 종류로 나누고 있는데, 병기(屛氣 : 숨·호흡으로서의 기), 혈기(血氣 : 목숨을 유지하는 피로서의 기), 사기(辭氣 : 말투로서의 기), 식기(食氣 : 태도로서의 기)가 그것이다. 이중 혈기에 대한 논어의 표현을 보자.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 젊어서는 혈기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므로 색욕을 경계해야 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므로 다툼을 경계해야 하고, 늙어서는 혈기가 이미 쇠하였으므로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공자가 갖고 있는 기에 관한 관념은 인간의 삶에 아주 가까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그가 말하는 기는 사람이 내뿜고 들이마시는 숨, 사람의 유기체적인 생리기능, 말투와 태도와 같은 인간 생활기능과 관련된 현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보다 현실적인 질문을 더 많이 하는 중국인에게 있어서 항상 고찰의 주축이 되는 것은 ‘실제로 주어진 존재’인 ‘세상 안에서의 사람’으로서, 기도 먼저 인간과 관련되어 고려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에게 있어서 기는 일반개념으로서 아직 철학적인 범주로 쓰이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윤리적 본성과 연결되어 나타나며, 후세의 유가(儒家)들은 기와 심성(心性)이 서로 관련된다고 하는 혈기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유가 심성학설의 중요한 내용으로 발전시킨다.

 

* 맹자의 기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는 공자의 사상을 인(仁)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 철학체계로 발전시킨다. 맹자는 공자보다 기를 더욱 심원하게 표현하지만, 그의 설명은 그 사용례(使用例)와 어의(語義)에 있어서 논어에 비하여 훨씬 넓고 또 복잡하게 되어 있기에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성선설(性善說)에서 기를 논의하기 시작하는 맹자는 공자의 ‘혈기’사상을 발전시켜 기를 사람 몸 안에 담겨있으나 끝없이 넓고 크며 굳센 ‘호연지기(浩然之氣)’로 규정한다. 그가 강조하는 이러한 호연지기는 크고 굳세고 정의롭고, 우주와 사람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활기(活氣)이며, 도의(道義)에 병행하는 활기이고, 외부에서부터 엄습해 와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행동함으로써 인간의 내심(內心)에서부터 길러지는 활기이다. 맹자는 만일 사람이 호연지기를 정확하게 길러서 채우고 해치지 않으면, 전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찰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의 이러한 기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정기(正氣)로서 일종의 도덕정신과 같은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는 인간 안에서만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 안에 퍼져있다는 것이 맹자의 생각으로서, 그가 설명하는 기는 지속적인 규정된 연습을 통해서 강화되는 우주적인 에너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이를 잘 길러 알차게 하고 넓고 크게 하면, 이는 지극히 크고 굳세어지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맹자의 기는 이렇게 인간의 몸을 가득 채우는 극미한 구성요소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의 의지에 의해 지배된다. 즉 사람의 마음과 의지와 기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니, 뜻과 기와 마음의 일치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결 같으면 기를 움직이고, 기가 한결 같으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렇게 맹자는 기를 심리학적인 영역에 부속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선하고 또 좋은 기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말하길, 사람들은 금수(禽獸)에 가까워지지 않도록 기를 배양하고 간직해야 한다고 하였다.

 

* 순자의 기

 

순자(荀子, 기원전 300-238)는 기를 고대의 사고(思考)로 더 깊이 연결시키는데, 기가 인간 삶에만이 아니라 순 물질적 존재에도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의하면 하늘·땅·사람·우주·사물에는 모두 기가 있으며, 이 기는 자연의 기로서 하늘과 땅과 만물과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물질원소이다. 수화(水化)는 기(氣)가 있되 생이 없고, 초목(草木)은 생(生)이 있되 지(知)가 없고, 금수(禽獸)는 지(知)가 있되 의(義)가 없으나, 사람은 기가 있고 생이 있으며 지가 있고 또한 의가 있으니 그러므로 천하(天下)의 귀(貴)가 되는 것이다.

 

순자는 맹자와는 달리 인간의 본성이 태생적으로 악하다 생각하여, 기를 보존하는 것보다 다스리는 것을 더 중요히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월간 빛, 2006년 7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성령과 기(氣) : 중국철학에서의 기(氣) (2)

 

 

나. 초기 도교에서의 기

 

도교의 중심은 노자와 장자의 도론(道論)이다. 도론에서는 사람은 생각과 행위에 있어서 “모든 것을 산출하나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며, 행동하나 뽐내지 않으며, 모든 것을 돌보나 다스리지 않는” 도(道)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 노자의 기

 

도가의 창립자인 노자(老子, 기원전 604-531?)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기는 어린 아기처럼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기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잘 조화된 활기인 ‘충기(沖氣)’로 표현되며, 이는 ‘만물생성론(萬物生成論)’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음양충화(陰陽沖和)’ 혹은 ‘음양조화(陰陽調和)’된 힘으로서의 기는 창조를 위한 기본적 원리가 되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도가 변화·생성해서 혼돈의 기가 나오고, 기가 변화하여 음양의 기가 나오고, 음양의 기가 변화하여 하늘·땅·사람이 나오고, 나아가 만물이 변화·생성된다.” 기는 ‘하나’이며 우주의 ‘나뉘지 않은 혼돈의 기’로서, ‘물질성’과 ‘운동성’이라는 두 가지의 뚜렷한 특징을 갖는다. 즉 기는 음양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러한 음양이 서로 부딪히며 작용하는 과정에서 ‘충기’가 화합하고 변화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만물인데, 이러한 기는 형체가 없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물질적 존재라 할 수 있다.

 

노자는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는 우주 만물의 본체이며 만물의 운동 변화를 위한 총체적인 법칙인” 도를 자기 철학의 최고 범주로 삼았는데, 여기서 기는 도가 변화하여 만물을 생성해 내는 중간 고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장자의 기

 

장자(莊子, 기원전 369년경-286년경)는 기에서 하늘, 땅, 사람, 사물의 기원을 보며, 기로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을 설명하고자 한다. : 여러 종류의 기가 모이면 사람과 만물이 생겨나며, 기가 흩어지면 사람과 만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과 죽음은 기의 변화, 기의 모임과 흩어짐(離合聚散)이다.

 

장자의 기는 이렇게 생명을 산출하는 힘인데, 이는 도의 창조적인 삶의 역학 안에서 존재하는 힘으로, 현상계의 보다 근본에 가로놓여 있는 원질(原質)처럼 보인다. 이렇게 장자의 기는 우주론과 자연주의적인 생의 철학의 근본개념이라 할 수 있다.

 

장자는 무엇보다 기의 일치의 특성을 강조하며, 이러한 기를 ‘일기(一氣)’라고 칭하였다. 하지만 이 일기는 단순한 하나가 아니고 음양 두 기로 나누어지며, 음양 속에서 자신의 충만한 힘을 펼칠 수 있다. 장자의 이러한 ‘기일원론(氣一元論)’적인 사상은 중국의 전통적인 기 사상의 기초가 된다.

 

장자에게 있어서 인간적인 기는 하나의 특별한 힘인데, 여기서 언급할 만한 것은 이러한 기가 ‘신기(神氣)’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 “기가 모여 사람이 되면, 사람 몸 안에는 기를 담고 있게 되고, 이것이 사람의 신기, 곧 사람의 정신세계가 된다.” 기는 비어 있으면서 만물을 받아들이므로, 사람은 기로써 세상 만물을 욕심에서 벗어나 수용하고 그를 통하여 정신적 자유를 이르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강조되는 것은, 사람은 사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순수 육체적인 조직인 귀나 마음을 쓰지 말고 ‘직관으로서의 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에 관련한 장자의 생각은 노자의 그것과 같은데, 그에 의하면 도는 기의 본체이며, 하늘과 땅과 사람과 물질의 원천이고, 기는 도가 만물을 변화생성해내는 과정의 중간 고리에 해당한다.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계속되는 기에 관한 연구에 기초가 된다.

 

 

4. 우주적 생명력으로서의 기

 

중국의 철학자들이 전개한 우주론은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고 있음에서 출발하는데, 생명에 관한 문제의 해답이 바로 생명의 우주론에서 역동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기’이다. 즉 많은 철학자들이 기를 우주론을 위한 근본개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는 음과 양, 하늘과 땅, 도(道)나 리(理) 등과 같은 다른 개념들과도 관련되어 있다.

 

가. 고대에 있어서의 ‘음양의 기’

 

일반적으로 음과 양은 중국철학을 지배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모든 사물과 세계변화의 구성원리이다. : 모든 이루어진 것들에서 한 사물은 다른 것들과 똑같지 않다. 그렇게 많은 사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실제에 있어서 하나의 사물에 불과한 것이니, 즉 음과 양 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과 땅의 변화가 이 두 극단으로부터의 연유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음과 양, 이 두 극단의 근본적 원리이론은 이미 기원전 4세기경부터 있어온 것으로, 고전적 사상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음과 양은 세계의 진행에 있어서의 근본질서를 나타내는 우주철학의 두 요소로 나타난다. 여기서 음은 여성적, 수동적, 수용적이고 헌신적이며 은폐적인 원리이고, 양은 남성적, 능동적, 산출적이고 창조적이며 밝은 원리이다. 음과 양은 양분하는 요소로서가 아니라 역동적인 이원성으로 이해된다. : “이 양극성은 항상 리드미컬한 운동 속에 있다. 그 때문에 이 양극성은 고착된 실체적인 이원론의 의미로 파악되는 것이다.”

 

* 황제내경에서의 음양의 기

 

진한(秦漢)시대(기원전 221-기원후 220)의 의학서 《황제내경(皇帝內徑)》에 기에 대한 서술이 들어있다. 여기서 기는 다시 ‘하늘과 땅의 기’와 ‘음양의 기’로 이해되며 ‘네 계절의 기’로 칭해진다. 주목할 것은 ‘오행의 기(金續乫水岫訖土)’가 자연계만이 아니라 인체에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生理之氣) 인체는 안으로 천지와 음양의 기를 포함하고 있으며 인체 생리의 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기는 서로 통하여 감응한다. 만일 사람이 기와 그 상호관계를 인식하면, 이 생리의 기의 평형을 이루어 신체의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 사람은 음양의 영향 밖에서는 살 수가 없으므로 그 음양의 조화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음양의 기라는 구분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며 서로를 포함하면서 서로 삼투하는 것이다.”

 

* 회남자에서의 기

 

서한(西漢)시대의 회남왕(淮南王 劉安, 기원전 179-122)이 주관하여 편찬한 책인 《회남자(淮南子)》에 따르면, 기는 일반적인 만물의 기초가 되는데, 그것은 음과 양 두 기의 화합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만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는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정미한 원시물질이며 도에 의해서 낳아지는 것으로 고찰되며, 이 음양의 기는 두 ‘신(神)’으로 표현된다.

 

조화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이고 음양의 기가 운동, 변화하는 방향을 나타내는데, “음이 성하면 양으로 돌아가고, 양이 성하면 음으로 돌아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어야 비로소 ‘조화’가 된다.” 회남자에 의하면 생명의 존재와 발전은 형(形)과 기(氣)와 신(神)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것이다.

 

* 동중서의 기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는 ‘하늘과 인간은 감응한다.’고 하는 기본 관념에서 기를 생각하는데, ‘천지가 있기 이전에 존재하며, 천지 만물을 낳는 근원’이 되는 근본적인 기로서의 ‘원기(元氣)’를 언급한다. 이 원기가 운동하는 과정 중에 나누어지면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음양의 두 기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도 조화가 논의되는데, 만물도 ‘음양의 기’와 ‘천지의 기’의 교감과 조화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이러한 “음양의 기는 하늘에도 있고 인간에도 있다. 사람에 있는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고, 즐겁고, 화나는 것이 된다. 하늘에 있는 것은 따뜻하고, 맑고, 차갑고, 더운 것이 된다.” 하늘과 인간은 서로가 감응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비슷하며, 음과 양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니, 가장 큰 도리는 조화이기 때문이다. 음양의 기가 고갈되면 인간은 죽는다. 그러므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를 아끼는 데에 있다.

 

나. 중세 이후의 ‘음양의 기’

 

음과 양의 기가 두 개의 기인지 아니면 한 개의 기인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니, 그 답이 대부분 애매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세 이후의 음양의 기에 관한 이론은 두 가지 방향으로 고찰할 수 있다.

 

* 하나의 기로서의 ‘음양의 기’

 

많은 철학자들이 음양의 기를 하나의 기로 생각한다. 모든 사물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지는데, 기는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몸을 갖고 있지만, 하나의 사물이라는 것이다. : “천지는 단지 하나의 기일 뿐이지만 그것은 스스로 음양으로 나누어지며, 음과 양 두 기가 서로 감응함으로 인해서 만물이 화생(化生)한다.” 기는 음과 양의 대립으로부터 ‘상호감응’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들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며, 서로 단일화하면서 서로를 포함한다. 음양의 모순과 대립이 기의 운동과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운동은 기의 중요한 특성이다. 여기서 음과 양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기는 ‘태극(太極)’으로 이해된다.

 

* 두 개의 기로서의 ‘음양의 기’

 

이와 반대로 많지는 않지만 음양의 기를 ‘두 개의 기’로 여기는 철학자들도 있다. 음과 양이라는 두 개의 기가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스스로 음양이 되는 하나의 기가 ‘두 개의 기’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월간 빛, 2006년 8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성령과 기(氣) : 중국철학에서의 기(氣) (3)

 

 

다. 우주의 원천으로서의 기

 

“기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관통하여 흐르는 우주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뜻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기가 우주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여, “기의 활기찬 변화에 근거하여 만물과 현상들이 형성된다.”고 한다. 이렇게 기는 생물의 근원이며 생명의 원천이다. 그러나 이 기가 어떠하고 어디서 유래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설명이 있다.

 

* 원기

 

‘원(元)’은 기의 시작과 원천으로 표현된다. 이에 따라서 많은 철학자들이 기를 만물을 낳는 원기(元氣)로서의 기라고 생각한다. 천지가 생기기 이전에 원기가 있었는데, 이는 우주의 본체이자 만물을 구성하는 재료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기는 우주와 지혜와 생명의 본원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원기는 그 다른 특성에 따라 각각의 다른 기로 표현되는데, 예를 들어 정기(精氣), 천지의 기, 음양의 기, 오행의 기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상응하는 여러 가지 사물을 낳는다.

 

* 현

 

몇몇 철학자들은 기를 ‘현(玄)’에 의해 생산된 근원 물질이라고 여기는데, 여기서 현은 만물의 기본요소이다. : “현이란 무형의 부류로, 자연의 뿌리이다. 현은 태시(太始)에서 일어나니 그보다 앞서는 것은 없다.”

 

* 태허

 

장재(張載)는 ‘태허(太虛:원초적인 진공상태, 우주를 감싸고 있는 무한한 공간)’를 기의 본체, 존재의 근원, 기의 원형, 무형의 기로 여긴다. 이 태허는 확산된 기의 형상으로서 원초적인 존재일 뿐 아니라 세계의 일부이기도 하다. 기의 본체가 태허이므로, 태허에 속해있는 하늘도 고정된 물체가 아니라 확산된 기의 한 모습이다.

 

* 정기

 

허형(許衡, 1209-1281)에게 음양의 기는 우주에서 왕성하게 작용하고 운동하는 ‘정기(精氣)’이다. 그에 의하면, 만물은 모두 음양에 근본하며 그 가운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가장 귀하다.

 

* 허무

 

담약수(湛若水, 1466-1560)에 의하면 기는 ‘허(虛)’ 또는 ‘허무(虛無)’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를 호흡함에도 사실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왕부지(王夫之, 1619-1692)는 우주 간에는 오로지 일기(一氣)만이 있으며, ‘허’라고 하는 것은 단지 기를 표현하는 형식의 하나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기는 우주를 위한 근본존재이다. 왜냐하면 전 우주가 기이고, 기가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거하여 왕부지는 비록 우주공간을 태허로 불렀지만, 태허의 본체를 기라고 하면서, 우주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아니라 우주가 곧 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사람들이 태허라고 하는 것은 ‘기’이지 ‘허’가 아니다. 허는 기를 포함하고 기는 허에 충만되어 있으니, 이른바 무(無)라는 것은 없다.” 무라는 것, 즉 없다는 말은 아무 것도 없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 무가 아니라, 무언가 있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 무라는 말이다.

 

라. 기와 도

 

* 도

 

‘도(道)’라는 단어는 길, 선(線), 방법, 도구, 수단, 원칙, 원리, 교훈, 교의(敎義:道敎 혹은 道家 참조) 등 여러 뜻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장자와 노자의 도교는 도를 ‘기의 근본요소’로 생각한다. 그런데 “도가 중국의 모든 개념들 가운데에서 가장 알려지지 않은 개념은 결코 아니지만, 그 유래와 생성을 표현하기엔 연대기와 기록문서들의 가치의 관점에서 가장 어려운 개념이다.” 이렇게 어려운 개념인 도에 관하여 다음 노자의 말은  비교적 명확한 설명을 던져주고 있다. : 하늘과 땅 이전에 생겨난 한 혼란한 것이 있으니, 아, 그것은 고요하고 비어 있으며, 홀로 있고, 변하지를 않으며, 두루 다녀도 지치지를 않는구나. 사람들은 그를 천하의 어머니로 볼 수 있으나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나는 도(道)라 이르고 굳이 이름 하여 크다고 말한다. 크다는 것은 달아난다는 것이요, 달아난다는 것은 돌아온다는 것이다. … 사람의 법은 땅이요, 땅의 법은 하늘이며, 하늘의 법은 도이고, 도의 법은 자기 자신이다.

 

여기서 도는 인간과 만물의 근본적인 법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사람들은 인간과 세상의 근원을 도로써 설명하며, 또한 이 도를 가지고 기를 설명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므로 도라는 개념은 기 못지않게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 기가 도로부터 낳아지는지, 아니면 반대로 도가 기로부터 낳아지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이론이 구별의 시금석이 된다.

 

* 도 우위설

 

몇몇 철학자들에 따르면 도는 기의 원천이다. 도는 기를 낳고, 기는 만물을 낳기 때문이다. “도는 태극과 기보다 앞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데, 도는 태극을 낳고, 태극은 기를 낳고, 기는 음양오행으로 나누어지고, 음양오행의 기는 왕성하게 작용하고 교감하여 천(天)·지(地)·인(人)·사물(事物)을 낳는다.”

 

* 기 우위설

 

이와는 반대로 많은 철학자들은 도가 기에 종속되고 음양의 기가 도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기를 만물의 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에 굳게 서서 기가 도로부터 낳아진다는 관점을 분명하게 거부한다.

 

* 기와 도의 동등설

 

한편 다른 몇몇 철학자들은 기와 도가 같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본다. 기와 도, 이 둘은 나눠질 수 없는 것이다. 음양의 기는 도의 내용이고, 도는 음양의 모순과 통일에 대한 총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는 도의 본체이고 음양의 존재를 위한 근거가 된다. 도와 기는 한 몸이다. 기를 무시하고 도를 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 기와 리

 

전 자연과 인간들을 철학적인 구조 안으로 이끌어 들이려고 애썼던 송(宋) 왕조(12세기)의 신유학자들에게 있어서 ‘기(氣)’와 ‘리(理)’는 학문적으로 주요한 근본개념이었다. “기에 있어서의 구조적인 요소는 도의 해설과 신유학에서의 불교비판을 통해서 형이상학적 원리인 리로 해석되었고, 따라서 기와 리는 중국철학의 계속적인 발전을 확정하였던 것이다.”

 

* 리

 

리는 이성, 원인, 원리, 이론, 학문 등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철학적 개념으로 ‘우주적인 질서원리’를 가리킨다. 기철학 안에서 리는 중요하고 복잡한 개념이다. 하지만 리개념은 상당히 늦게 기와 관계되게 되었다. 우선 위진(魏晉)시대의 왕필(王弼, 226-249), 배위(裵    ,264-300), 곽상(郭象, 252-312)에게 있어서 리는 기와 관련하여 고찰되었으니, ‘자연의 필수적인 법’인 리는 일반적으로 ‘만물에 적용된 법칙’이자 ‘모든 이가 따라야만 하는 법칙’으로 파악되었다.

 

송대(宋代)의 철학자들은 학문적으로 새로운 개념인 리로써 처음 기이론에 접근하였고, 리·기이론을 그들 철학의 중심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이론을 성리학[性理學] 또는 신유학이라 한다.) 대다수의 철학자들의 생각은 리가 기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기가 모든 사물 가운데 언제나 첫 자리를 차지한다는 견해를 주장한 철학자들도 있었다.

 

아무튼 리는 기 곁에 있든지 혹은 기 안에 있든지 간에 사물의 근본요소로 보인다. 이렇게 신유학 안에서 리와 기의 존재관계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고, 그 우주론적인 해석에 따라서 여러 이론이 성립되었다.

 

* 주리론

 

다수의 철학자들은 기가 리에 종속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만물의 원천은 기인데, 그 기는 리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기로 말미암아 구성되는 형상을 가진 사물도 리를 존재의 근거로 삼는다. 이렇게 하여 리는 기로부터 분명히 분리되어 최고의 철학개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여기서 리는 기의 주재이고 천지만물의 존재근거이며, 기보다 앞서 존재한다. 기는 리에 속해있는 한편, 리는 기를 다스린다. 리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선과 악은 모두 기의 활동영역에 있다.

 

* 주기론

 

리가 기에 우선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면, 음양의 기가 리를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이들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음양의 두 양상으로 활동하는 기에서부터 생겨나기 때문에 기 안에 포함된 리는 사물의 본질로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기는 사물의 유일한 근원요소로 표현되니, 리는 기에 종속되는 것으로서,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기에 의존적인 것이다. 기는 리의 본질을 결정하지만, 한편으로 리는 기를 자신 안에 있는 고유한 질서로 다스린다. 기는 만물의 토대인 반면에, 리는 기의 한 특성이며 기 없이 자존적으로 존재 할 수 없는 것이다.

 

바. 기와 신성(神性)·영(靈)

 

기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기의 원천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앞에서 본대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으니, 도(道)나 현(玄), 혹은 무(無)가 그것이다.

 

곽상(郭象, 252-312)은 기를 자존재(自存在)로 고찰한다. 그에 의하면, 기는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며, 항상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존재로서의 기관념’은 여러 기개념 가운데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기는 결코 자립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기는 항상 발판과 작용토대로서의 [자신 밖에서의 어떤] 지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래서 기는 자신을 지탱하는] 개별 존재와 삼라만상 사물의 특성에 따라 [고유한] 자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기는 왕부지(王夫之, 1619-1692)의 생각대로 영적인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인 존재로 보여진다. 즉 리가 객관적인 법칙이라면, 기는 물질적인 실체이고 홀로 ‘불멸하는 물질’이다. 이와 같이 기는 ‘비물질’, ‘혼백’과 관련되어 신(神)적인 개념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특히 유교와 도교는 신이 기와 더불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기가 있으면 신도 존재하고, 기가 없어지면 신도 없어진다고 하였다.

 

유우석(劉禹錫, 772-842)은 하늘(神)이 인간들에게 기를 선사한다고 생각하였다. : “하늘은 정기(精氣)를 위대한 인물에게 부여한다.”

 

장재(張載, 1020-1077)는 태허의 기를 신이라 칭하고, 신을 기의 성(性)으로 여겼다. 그에 의하면, 신은 모든 사물의 운동을 통일하고 지배한다.

 

정이(程     , 1033-1107)에 따르면 기는 신 이외에 다름이 아니니, 그는 기운동의 순수한 작용을 신으로 이해하였다.

 

이와 반대로 양만리(楊萬里, 1127-1206)는 우주가 바로 기의 운동과 음양의 상호작용과 변화로서 영원한 존재이므로, 거기엔 어떤 주재자(神)도 없다고 말한다.

 

왕정상(王廷相, 1474-1544)은 기와 신성(神性)·영(靈)의 관계를 설명하기를, 기는 본질이고 신은 작용이라 하였다. : “신이란 형기(形氣)가 신묘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 신은 반드시 형기를 빌려서 존재하는 것이다. 형기가 없으면 신은 사라진다. … 기가 없으면 신은 어디로부터 생기겠는가?” [월간 빛, 2006년 9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3,08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