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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수련소 수녀님들과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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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03 ㅣ No.824

[허영엽 신부의 ‘나눔’] 수련소 수녀님들과의 추억

 

 

“신부님의 강의를 통해 성서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들 모두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으로 잘 이끌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들은 신부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수도자로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언제나 저희를 잊지 말아주세요. 저희도 늘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수련소의 수녀님들이 나에게 보내준 카드의 일부입니다. 자신들을 잊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가 가슴을 저밉니다. 내가 어떻게 수녀님들을 잊겠습니까? 어떻게 수녀님들의 그 아름다운 미소와 유쾌한 웃음소리를 잊을 수 있겠어요?

 

나는 명동의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수련소에 1999년부터 약 6년간, 매주 한 번씩 방문했어요. 성서 강의를 위해서였죠. 주로 바오로 서간을 공부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지금도 수련 수녀님들과의 처음 만남이 기억나요. 50명 가까운 수련 수녀님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창가에 비치는 봄 햇살처럼 얼마나 맑고 눈부셨는지요. 나는 마치 꿈을 꾸는 느낌이었어요.

 

별로 우스운 얘기도 아닌데 까르르까르르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여고생들 같았어요, 재미있는 건 매년 새로 들어오는 수련 수녀님들이, 한 해 전 입회한 선배들과도 세대차이(?)가 있다는 것을 미세하게 느끼겠더라고요.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학년마다 너무 특징들이 달랐어요. 그때도 여전히 “나 때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말이야~~”가 있었던 거죠.

 

형제가 없거나 둘, 많아야 세 명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렇게 살다가 수녀원에 들어오면 일단 공동생활을 해야 하지요. 여럿이 사는 것에 불편이 없는 사람은 수녀원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만, 혼자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일상생활도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이런 점은 신학교도 똑같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일과는 저녁 기도 후 개인공부까지 마치고 취침 음악이 나오고서야 침대로 갈 수 있습니다. 저는 신학교 때 차분한 취침 음악에 맞춰 이불에 쏘옥 들어가 눈을 감고 바로 꿈나라로 가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어요.

 

 

까르르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여고생 같은 수련 수녀님들

 

2002년 월드컵으로 축구가 한창일 때였어요. 강의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수련 수녀님들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신부님! 오늘 밤 한국 선수들 축구 경기를 우리도 볼 수 있게 신부님이 어른 수녀님께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간절한 눈빛으로 청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어요. 책임자 수녀님에게 가서 말씀드렸더니 수녀님도 어찌할까 아직 결정을 못 내셨다고 하셨어요.

 

“수녀님! 저도 신학생 때를 생각하면 외출도 못하고 신학교 안에 있지만 밖에 소식은 이상하게 오히려 더 잘 알곤 했어요. 지금 수련 수녀님들도 월드컵 열풍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수녀님들이 축구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허락을 안 해주신다 해도 수녀님들은 어차피 잠을 못 잘 거예요. 서울 전체가 시끄러울 테니까요.”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당시 열풍이었던 ‘붉은악마’ 티셔츠 50벌을 구해 수련원에 보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날 저녁 명동 수련소가 떠나가게(?) 응원했다고 해요.

 

학기를 시작하는 강의 때나 종강 때면 수련소에서 어김없이 하는 행사가 하나 있었어요. 수련 수녀님들이 며칠 동안 정성으로 준비한 노래를 합창으로 불러주는 것이었어요. 그 노래 선물을 들을 때면 항상 깊은 감동을 느꼈어요. 맑은 목소리와 아름다운 노래도 그렇지만 세상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순수함에 경건함마저 느껴졌어요. 마치 천사들이 이 땅에 내려와 합창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또 하나 있어요. 2002년 6월 어머니의 장례미사 때 수련 수녀님들이 일산 대화동성당까지 새벽같이 달려와 아름다운 성가를 불러주었어요. 나의 어머니도 하늘나라로 떠나는 순간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아주 흐뭇해하셨을 거예요. 어머니는 평생 사랑을 많이 실천하셔서 저렇게 아름답게 마지막을 장식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을 주님과 성모님께 봉헌한 수녀님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수녀원에서 내게 맡긴 강의는 성경에 관한 것이었지만 본당 사목을 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수녀님들의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장르로 보면 드라마도 있지만 가끔 스릴러물(?)도 있었어요.

 

그러면 수련소 수녀님들의 첫 반응은 “정말 그럴까? 설마!” “신부님이 과장해서 보탠 이야기일거야, 그럼 그럼!”

 

물론 감동적이고 좋은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가끔은 불편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했어요. 그래야 도움이 될 테니까요. 수련기를 마치고 첫 서원을 하면 본당 등 각자 임지로 파견이 되지요. 언젠가 명동성당 마당에서 본당에 파견된 애기(?) 수녀님을 오랜만에 만난 적이 있어요.

 

“어때? 본당 생활 어렵지 않아?”

 

“신부님! 예전에 강의 때 이제 본당에 나가면 이러이러한 일을 할 거라 하셨을 때, 그땐 정말 남의 일처럼 실감이 안 났거든요. ‘설마, 그런 일이?’ 그랬던 일들이 실제로 있더라고요. 그때 신부님 말씀을 못 들었으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수련소에 수련하다 임지에 나가면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쉽게 이야기하기 힘든 일도 많지요. 결국 누구든지 사람들 속에서 상처도 주고받으며,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죠.

 

내 강의를 들은 수녀님들의 첫 서원이나 종신서원 미사에 참석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제대 앞에 선 새 수녀님들의 모습은 마치 새벽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한 송이 꽃과도 같아요. 모두 긴장한 얼굴이지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서원문을 낭독하는 모습이 대견하기까지 하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주님의 딸들이 임지에서 주님과 함께하며 보람도 한껏 느끼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우리들을 위해 자신을 주님과 성모님께 봉헌한 수녀님들을 위해 기도 부탁드려요. 오늘도 열심히 각 분야에서 열심히 봉사를 통해 주님을 증거하고 있는 수녀님들을 위해 매일 기도를 바칩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8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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