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파리 생트 샤펠 스테인드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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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15 ㅣ No.255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6) 파리 생트 샤펠 스테인드글라스


빛으로 쓴 성경 속으로

 

 

- 생트 샤펠 경당 내부 모습.

 

 

흔히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천상의 빛을 연출하는 아름다운 빛과 색채의 벽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 표현을 가시적으로 가장 잘 드러낸 곳이 바로 파리 생트 샤펠(Sainte Chapelle, 1245~1248)이 아닐까 한다.

 

파리 법원 옆에 위치한 이 작은 경당에는 벽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15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이 분절 없이 천장까지 길게 이어지며 마치 보석과도 같은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높이 치솟은 거대한 고딕 대성당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과 성 십자가 조각 등을 모시기 위한 왕실의 경당으로 건축되어, 규모는 작지만 그 호화로움은 극에 달한다. 루이 9세 때 건축된 생트 샤펠은 당시 성물 공경에 대한 열의를 대변해 주고 있다.

 

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독 빛으로 충만해 보이는 것은 아케이드, 트리포리움(triforium, 아치와 지붕 사이), 클리어스토리(채광창)로 나뉘는 일반적인 고딕 성당 건축의 입면 구조와는 달리 하나의 긴 창으로 연결되어 빛을 차단하는 건축적 요소가 최소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트 샤펠은 네이브(신자석)와 아일(통로)을 구획 짓는 열주(列柱)들이 생략되고, 4개의 베이(구역)로 이뤄진 네이브만으로 지어져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 창과 창을 연결하는 가는 기둥 다발에도 금색을 주조로 한 채색이 더해져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또 다른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빛을 방해하는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생트 샤펠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층은 천장이 낮고 창이 많지 않아 어둡지만, 15m 높이의 스테인드글라스 15개가 에워싼 상층부는 천상을 연상시키는 빛을 연출하고 있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이는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어둡고 좁은 나선형 계단을 끝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되는 빛이어서 그 신비로움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올라 상층 경당에 첫발을 딛는 사람들은 모두 빛의 벽을 맞이한 경이로움에 취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연발하곤 한다. 그리고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아 각 15개의 창에 그려진 구약과 신약의 성경 말씀을 하나씩 읽어 간다.

 

여느 고딕성당과 같이 원형, 마름모꼴 등으로 이뤄진 구획에 성경의 주요 장면들이 묘사된 창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 중에서 동쪽 정 중앙에 자리한 예수 수난에는 좌우로 이사야와 이사이의 나무, 요한 사도와 예수의 유년기(좌), 요한 세례자와 다니엘, 에제키엘의 성경 말씀이 담겨 있다. 이어 북쪽과 남쪽 측창에는 창세기, 탈출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북쪽), 그리고 예레미야서, 토빗기, 유딧기, 욥기, 에스테르기의 말씀 그림들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프랑스의 왕들과 예수 수난 성 유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야말로 창으로 만들어진 성경이 아닐 수 없다. 서쪽 장미창은 15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고딕 전성기인 13세기 장미창들과는 달리 수레바퀴 모양에서 벗어난 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

 

한 번은 생트 샤펠을 방문하고 나서 호기심에 파리 법원에 들어가 재판의 청중이 되어 본 적이 있다. 이미 전과가 많은 아프리카 기니의 남자 죄수에 대한 재판이었는데, 형을 선고해야 하는 판사와 한 가족의 가장으로 부양할 가족들이 있음을 이야기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변호사의 변론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심판과 하느님의 심판을 떠올렸다. 빛으로 충만한 공간에서 법원의 어둑한 재판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고양되었던 정신이 다시 땅을 딛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음엔 반대로 법원에서 생트 샤펠로 순서를 바꾸어 방문해 보려 한다.

 

[평화신문, 2016년 5월 15일, 정수경 가타리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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