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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신학ㅣ교부학

[마리아]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의의 성립 과정과 신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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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20 ㅣ No.725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의의 성립 과정과 신학적 의미*

 

 

국문 초록

 

본고는 교황 비오 9세의 칙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과 관련하여, 그것이 선포하고 있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전, 정립되었는지 살피며, 그 신학적 의미를 논구한다. 성경은 마리아의 원죄 없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지만, 구원역사 안에서 마리아가 보여준 탁월한 신앙과 순명의 자세는 교부들로 하여금 성경 안에서 마리아의 ‘은총 가득함’과 거룩함, 나아가 그녀의 죄없음을 묵상하고 통찰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교부들의 성경 독법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매우 이른 시점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마리아 공경과 신심에 기초하여, ‘마리아의 거룩한 잉태’ 혹은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기념하는 전례적 실천이 동방교회에서 시작하여 서방교회 전역으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중세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노 이래 엄격하게 해석되어 온 원죄론과 마리아의 원죄 없음을 조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였고, 특히 둔스 스코투스는 선행구속이라는 개념을 통해 죄의 보편성에 상응하는 구원의 보편성이 마리아에게서 더 탁월한 방식으로 실현되었음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적합성의 확보와 더불어 하느님 백성 안에서 점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더 크고 강력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러한 신자들의 신앙 감각 속에서 마침내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칙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을 통해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믿어야할 결정적인 교의(教義)로 선포하게 된다.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는 그리스도론적이고 구원론적이며 교회론적 함의를 갖는다. 그것은 또한 현재 ‘교회의 현실’ 안에 나타나는 신자들의 신앙 감각이 계시의 내용을 식별하는 데 결정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염시태 교의가 갖는 이러한 신학적 가치들은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특히 시노달리타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커다란 의의를 가지며, 올바른 마리아 공경과 신심의 실천에 있어서도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서론

 

본 연구는 교황칙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Ineffabilis Deus)과 관련하여, 이 칙서가 담고 있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의 역사적 성립 과정과 그 의미를 다룬다.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 네 가지 교의, 곧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 승천을 가르친다. 이 중 원죄 없으신 잉태와 성모 승천은 각각 1854년과 1950년에 ‘믿을 교리’로 선언되었지만, 두 교리 모두 초기 교회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승에서 기인한다.

 

본고는 특히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의 최초의 한국어 번역문 발견이라는 역사학적·문헌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기회를 맞아, 이 번역문이 담고 있는 내용의 맥락(context)과 그 신학적 함의를 살피고자 한다.1) 그러므로 번역문 자체를 다루거나, 번역 작업과 관련된 세부적인 역사의 흐름을 살피는 일은 전적으로 본고의 영역에서 제외된다.2) 또한 원죄 없으신 잉태와 밀접히 관련되지만 동시에 구분되는 다른 신학적 주제들, 예컨대 원죄론이나 마리아론 일반에 대한 내용 역시 다루지 않을 것이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의 뿌리가 되는 성경과 전승의 증언을 살피되, 특히 교부들의 성경 해석과 하느님 백성의 전례적 실천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둘째로, 이 교리에 분명한 모양과 체계를 제공한 중세의 신학적 논쟁을 살피며, 그 안에서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가 어떻게 신학적 정당성 혹은 적합성을 확보해 나가는지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칙서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의 반포 과정과 그 내용을 보며, 그 안에 앞 시대의 모든 흐름이 어떻게 집약되어 결실을 맺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본격적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용어에 대한 문제를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혹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는 마리아가 예수를 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리아 자신이 그녀의 어머니 태중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뜻한다.3) 한자말로 이를 무염시태(無染始胎)라 하는데, 말 그대로 풀이하면 죄에 오염(汚染)되지 않고 잉태되었다는 의미이다. 본고에서는 ‘원죄 없으신 잉태’, ‘원죄 없는 잉태’, ‘무염시태’ 등의 표현을 혼용할 것인데, 이는 모두 같은 의미를 갖는다. 또한 성경 구절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펴낸 『성경』에서 인용할 것이며, 그밖에 모든 신학 용어나 인명의 경우 모두 한국천주교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표기를 따를 것이다.

 

 

1. 성경과 전승의 증언

 

1.1. “은총이 가득한 이” -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된 마리아

 

오늘날 성서주석학의 주된 흐름은 성경의 해당 구절을 집필한 혹은 편집한 이의 정확한 의도를 찾아 그것을 해당 구절의 의미로 제시하는 것이다. 확실히 성경저자의 본래 의도를 찾는 일은 중요하다.4)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해당 텍스트가 하느님 백성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읽혀왔고 해석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마리아는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명백한 구절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성경에 무염시태 교의의 ‘직접적’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교부들은 아주 일찍부터 성경의 몇몇 구절들을 토대로 마리아가 구원역사에서 갖고 있는 위상과 의의를 강조해 왔고, 나아가 이는 마리아의 무죄성에 대한 묵상과 통찰로까지 발전하였다.

 

교부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준 부분은 바로 루카 복음의 주님 탄생 예고 장면이다. 교회 역사 안에서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신학적, 영성적,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이 장면은 하느님에 의해서 파견된 천사 가브리엘이 다윗 가문의 요셉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건네는 인사말로 시작한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여기서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표현의 그리스어 원문은 “κεχαριτωμένη”이다. 훗날 라틴말 성경에서 이는 “gratia plena”라는 말로 번역되고, 이 표현이 오늘날 많은 가톨릭 신자들에 의해 성모송의 첫 구절로서(“Ave Maria, gratia plena”) 애송된다.

 

어떤 학자들에 따르면 “κεχαριτωμένη”의 좀 더 정확한 번역은 “특별히 총애를 받은 이여”라고 한다.5) 그러나 이 그리스어 자체가, 우리말로 종종 ‘은총’으로 번역되는 ‘χάρις’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신약성경 안에서 χάρις 곧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고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무상은혜를 뜻한다”6)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해당 표현을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번역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마리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은 바로 뒤의 말로써 더욱 분명하게 표현된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많은 학자들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넨 인사말이 그 구조와 내용에 있어 구약의 판관기에서 천사가 기드온에게 한 인사말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7)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 6,12) 기드온은 타고난 “힘센 용사”였고, 그가 지닌 이러한 면모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택하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할 도구로 삼으셨다. 동일한 논리가 마리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마리아는 이미 구세주를 잉태하기 전부터 “은총이 가득한 이”요 하느님께 특별한 총애를 받은 이였으며,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그녀와 함께 계셨다. 마리아의 이 ‘은총 가득함’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이스라엘과 온 백성을 구원할 도구로, 곧 구세주의 어머니로 택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은총이 가득한 이여”로 시작한 천사와 마리아의 대화는 저 유명한 마리아의 “fiat” 곧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로 끝난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사도 요한과 바오로의 전통을 잇는 교부인 리옹의 이레네오(+202)는 이 장면에서 창세 3,15의 신비로운 예언의 성취를 보았다. 창세 3장에서 첫 여자(하와)는 뱀의 꼬임에 빠져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나무열매를 먹고 이를 남자(아담)에게 건네준다. 이에 대한 벌로 하느님께서는 뱀에게 저주를 선고하시며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투쟁을 예고하신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이레네오는 특별히 마리아에게서 “여자의 후손”의 모습을 본다. 이미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새로운 아담’으로 보며(로마 5,12-21) 아담의 죄 곧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의로움 곧 순종을 대비하는데, 이레네오는 바오로의 통찰을 이어받아 이를 마리아에게도 적용한다. 이레네오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새로운 아담이며 마리아는 새로운 하와이다.

 

구원 계획에 따라, 동정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길 바랍니다’하고 말하며 순종하셨다. 그러나 하와는 불순종하였다. … 그리하여 그녀는 그녀 자신과 모든 인류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causa facta est mortis). [그러나] 마리아는 … 순종함으로써 그녀 자신과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 (Maria … obaudiens, et sibi et universo generi humano causa facta est salutis). 그리하여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으로 풀렸다. 처녀 하와가 불신앙으로 묶었던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믿음으로써 풀었다.8)

 

옛 하와가 하느님께서 주신 단 하나의 금령에도 순종하지 않아 죄를 짓고 “죽음의 원인”(causa mortis)이 되었다면, 새로운 하와인 마리아는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리라는, 상식을 넘어서는 놀라운 예고 앞에서도 불순명하지 않고, 오히려 천사와의 차분한 대화 속에서 끝내는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함으로써 “구원의 원인”(causa salutis)이 되었다.

 

은총이 가득한 이,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이,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이로서의 마리아의 특별한 위치는 그녀가 천사를 통해 전해받은 구세주의 탄생 예고 앞에 온전히 순명함으로써 그 본원적 성격을 드러낸다. 흔히 개신교인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마리아의 거룩함과 무죄성, 나아가 그녀의 원죄 없는 잉태는 그녀를 하느님의 위치에 버금가게 격상시키거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받은 특별한 총애는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하기 위해 받은 특전이요 선물이다. 그리고 그 순명의 결실은 바로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유일한 중개자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이다. 다시 말해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마리아의 특별한 거룩함과 ‘무죄성’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향해 있고 동시에 인류의 구원을 겨냥하고 있다.

 

1.2. 십자가 아래 계신 어머니-마리아와 교회

 

주님 탄생 예고 장면과 더불어 교부들로 하여금 마리아의 거룩함과 무죄성을 묵상하게끔 만든 성경 대목은 요한 19,25-27이다. 많은 교부들은 마리아가 아드님의 수난에 동참하였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입장 차이를 보인다. 먼저 오리게네스(+253)는 마리아를 “거룩한 동정녀”로 칭하지만,9) 동시에 그녀가 아드님의 수난 동안 일종의 신앙의 어둠을 겪었다고 말한다. 많은 성인(聖人)들의 삶에서 볼 수 있듯, 불가항력적인 의심과 불신앙의 유혹을 동반하는 신앙의 어둠은 종종 거룩함으로 향해 나아가는 한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렇기에 신앙의 어둠이 꼭 성덕(聖德)에 반(反)하거나 죄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리게네스는 원죄론에 근거하여 사도들의 불신앙과 마찬가지로 마리아 역시 ‘걸림돌’(불신앙)의 단계를 겪었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함으로써 마리아의 무죄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준다.10)

 

이에 비해 암브로시오(+397)는 스승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도망간 사도들과는 달리 마리아가 끝까지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 옆을 지켰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그녀의 흔들림 없는 믿음과 거룩함을 강조한다. “사도들은 도망갔지만, 마리아는… 십자가 앞에 서서 아픔 가득한 눈으로 아들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세상의 구원을 기다렸기 때문이다.”11)

 

교부들의 가르침을 참고하여 요한 19,25-27을 주석학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 어떤 주석가들은 십자가 아래 서 있는 마리아에게서 새로운 “시온의 딸”(즈카 9,9) 곧 교회의 모습을 보며,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는 말씀을 이 새로운 구원 공동체와 그 자녀들을 묶어주려는 그리스도의 뜻으로 이해한다.12) 다른 한편, 전통적으로 많은 교부들은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아래 서 있던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요한 19,26)를 그리스도인의 대표로 바라보며, 이 장면을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어머니’로 주시는 장면으로 이해했다. 두 해석 모두 “예수님의 어머니”(요한 2,1; 19,25) 마리아와 “어머니인 교회”(Mater Ecclesia) 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에 근거하고 있다.

 

세 번째 보편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431)에서 선포한 바와 같이 마리아는 참 사람이자 참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이다.13) 이는 마리아가 여신(女神)이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위격(位格; persona) 안에 신성과 인성이 너무나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에 그리스도의 인간적 어머니인 마리아는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도 마땅히 불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은총이 가득한 이” 마리아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명 안에 참된 하느님이요 참된 인간인 유일한 구세주를 낳음으로써 ‘구원의 원인’(causa salutis)이 된 것처럼, 교회도 믿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이 하느님의 자녀들을 ‘낳음’으로써 모든 그리스도인의 어머니가 된다.14)

 

어머니인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흠없는 신부로서, 비록 그 안에 많은 죄인들을 자녀로 품고 있지만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인 성령에 의해 끊임없이 거룩하게 되어 ‘흠없는’(immaculata) 신부로서 그리스도 앞에 서 있다.15) 많은 교부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듯, 어머니 마리아는 어머니 교회의 모범이자 예형(豫形)으로서 교회처럼 흠없는 처녀이자 어머니이다. 이는 마리아 개인의 권능이나 우월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비록 죄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온전히 거룩하고 흠없는 신부로 서 있듯, 마리아 역시 오직 은총 곧 “하느님의 총애”에 의해 온갖 죄로부터 보호받는다고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거룩한 이유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그 거룩함 안에서 끊임없이 자녀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함인 것처럼, 마리아가 하느님께로부터 거룩하고 흠없이 보호받은 이유는 인류의 구세주를 낳을 어머니이기 때문이며 나아가 구원받을 이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범이 되기 위함이다.

 

1.3. 원죄론과 무염시태 교리

 

서방교회의 원죄론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노(+430)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로마 5,12 참조) 죄를 지었고,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아야 한다. 오늘날 아우구스티노의 원죄론은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을 받지만,16) 원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모든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그리스도교의 오랜 확신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아우구스티노는 그의 명저 <본성과 은총에 대하여>에서 유일한 구원자 그리스도와 그분을 통해 인간의 모든 행위와 업적에 앞서 주어지는 은총의 선행성(先行性)을 강조하며, 그 은총으로 모든 죄인은 구원받는다고 역설한다. 이 죄인의 범주에는 심지어 거룩한 이들, 즉 우리가 성인, 성녀로 공경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는 예외적으로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다.

 

… 그러므로 거룩한 동정녀 마리아는 여기서 [죄인들의 범주에 속하지 않고] 예외이다. 나는 주님의 영예 때문에(propter honorem Domini), 죄에 관한 것이라면 마리아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것도 묻지 않고자 한다. 마리아가 무죄한 주님을 잉태하고 낳기에 합당한 [이가 되기] 위해서, 그리하여 모든 점에서 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마리아에게 더 많은 은총이 주어졌을지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겠는가?17)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아담의 후손은 예외없이 원조(元祖)의 죄를 물려받았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필요로 한다고 확신했던 아우구스티노는 ‘예외적으로’ 마리아에게 죄가 없을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예외가 아니다. 아우구스티노가 마리아의 무죄성, 즉 원죄로부터의 자유로움이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가 구세주의 어머니라는 사실에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마리아로부터 인성(人性)을 취하시어 참으로 ‘사람의 아들’ 곧 마리아의 아들로서 탄생하셨기에, 그녀는 주님의 어머니로서 “주님의 영예”에 맞갖은 무죄함을 지녔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영예와 ‘특권’은 결국 그녀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참된 아들이자 영원하신 아버지(聖父)의 참된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이는 앞의 “은총이 가득한 이”로서의 마리아의 특전과 동일선상에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아직 후대의 둔스 스코투스처럼 그리스도에 의한 마리아의 선행 구속(先行救贖)이란 개념을 제시하지 못하며, 심지어 그녀의 원죄 없음을 확신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펠라지우스주의에 맞서 죄의 보편성과 은총의 절대적 필요성을 역설했던 이 ‘은총의 박사’가 마리아에 한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다름 아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라는 사실에서 찾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훗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원죄에 대한 교령을 반포하면서 거의 동일하게 마리아에 대해서만 유보 조항을 두게 되는데, 이는 아우구스티노 이래 면면히 이어지는 통찰을 수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4. 전례적 실천-기도의 법은 믿음의 법

 

1854년 비오 9세가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를 반포했을 때 이 교리의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된 것이 바로 오랜 전례적 실천이었다. “복된 천주의 모친의 신비에 대한 공경은 차가운 사변이나 날카로운 논증에서 자라난 것이 아니라, 사랑 깊은 실천의 따뜻함에서”18) 자라났는데, 이 “사랑 깊은 실천”의 대표적인 그리고 결정적인 자리는 바로 전례였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4대 교리는 모두 교의(Dogma)로 선언되기 이전에 신자들에 의해 믿어졌고 고백되었으며 전례를 통해 그 믿음이 오랜 시간 실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9)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마리아의 잉태에 대한 전례적 기념은 동방교회, 특히 비잔틴 교회에서 시작되었다.20) 7세기 말 동방 교부 크레타의 안드레아는 마리아의 잉태 축일을 언급하며 그 미사의 고유기도문을 전해주고 있다.

 

오늘, 하느님의 어머니의 거룩한 잉태 안에서, 우리에게 기쁨의 보고(寶庫)들이 열릴 것이라고, 또한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한) 저주의 슬픔이 끝날 것이라고 예고되었나이다.

 

그녀의 어머니의 태 안에서, 이제 땅이 꽃피기 시작했나이다. 그 땅은 땅의 창조주가 거할 장소, 거룩한 왕홀, 새로운 계약궤, 만나를 담은 함, … , 불에 타지 않은 떨기나무, 황금 촛대, 주 하느님의 살아있는 신방이 될 것입니다.21)

 

이 아름다운 비잔틴 전례문은 마리아가 그 어머니인 성녀 안나의 태중에 잉태된 사건을 전체 구원 역사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22) 앞서 성경과 그에 대한 교부들의 해석에 드러나는 통찰이 여기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성경의 증언에 따르면 구세주께서는 성령에 의해 동정녀의 태중에 거룩하게 잉태되셨지만, 이미 구세주의 어머니도 “거룩한 잉태”를 통해 태어났다. 그녀의 잉태됨이 거룩한 이유는 장차 그녀가 “은총이 가득한 이”로서 천사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에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결정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례문은 “기쁨의 보고들이 열릴 것”이며, 원죄로 인한 “저주의 눈물이 끝날 것”이라고 미래형으로 노래한다. 말하자면 마리아의 거룩한 잉태는, 구원역사의 본격적 시작을 위한 하느님의 특별한 안배와 준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거룩한 잉태”가 반드시 ‘원죄 없는 잉태’와 동일한 의미라고 섣불리 결론 짓기는 힘들다. 그러나 보먼(Bouman)에 따르면 당시 많은 신심 깊은 이들과 학자들은 동정녀의 ‘거룩함’을 그녀의 ‘무죄함’으로 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23) 동일한 비잔틴 전례문의 다른 곳에서 마리아를 “되찾은 낙원”으로 표현하는데, 아담과 하와는 원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표현은 마리아의 원죄 없음에 대한 암시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먼은 주장한다.24)

 

동방에서 먼저 시작된 마리아의 잉태 축일은 이르면 8세기, 늦어도 9세기 경 서방교회에 전해지며,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교회에서 그 실천이 확인된다.25) 특히 영국 교회에서는 이 축일을 중시하였는데, 1129년 런던 시노드에서 “원죄 없으신 잉태 축일”라는 이름으로 이 축일의 거행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었고, 그 날짜는 성모 성탄 축일인 9월 8일보다 (일반적인 임신 기간으로 간주되는) 9개월 전인 12월 8일로 결정되었다.26) 12~13세기에는 “원죄 없으신 잉태 축일”이 서방교회 전역으로 확산된다.

 

훗날 서방에서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때, 가장 먼저 의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마리아는 원죄 없이 태어났다”는 구체적인 신학 명제가 아니라 ‘거룩한 잉태 축일’ 혹은 ‘원죄 없는 잉태 축일’의 정당성 여부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전례적 실천은 무염시태 교리의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2.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신학적 논쟁

 

2.1. 안셀무스와 애드머

 

앞에서 본 것처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차가운’ 신학 논증 이전에 교부들과 신자들의 ‘마음’과 신앙적·전례적 실천 안에 자라나고 고백되어 온 내용이다. 교부들은 성경을 전체 구원 역사 안에 조망하면서 마리아가 갖는 구세사적 위치의 독특함을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적, 교회론적 관점 안에 숙고함으로써 교회 안에 하나의 중요한 성경 독법 방식을 마련하였고, 이와 맞물려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이름 모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시작된 구세주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신심 안에서 마리아의 거룩한 잉태 혹은 원죄 없으신 잉태를 기념하는 전례가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교부들이 살아있는 신앙의 전승 안에서 성경을 읽고 이를 토대로 구원 역사적 관점에서 신학을 전개했다면, 이제 중세 스콜라 시대에는 좀 더 사변적이고 체계적이며 개념 분석에 치중한 신학이 발달하게 된다. 이에 따라 원죄론, 특히 아우구스티노 신학의 관점에서 엄격하게 해석된 원죄론과, 마리아의 무염시태에 대한 ‘살아있는’ 고백이 서로 충돌하는 듯한 양상이 나타나고, 이 충돌과 ‘모순’을 해결하고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신학적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중세의 많은 저자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죄로부터의 정화를 말한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는 그의 저서 “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에서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이들의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들은 시간적으로 그리스도보다 앞서 있지만 결국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죽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가르친다. 그는 나아가 마리아는 특별히 이미 그리스도의 죽음 이전에 원죄로부터 정화되었다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이전에 이루어진 어머니의 정화는 사실 그분의 죽음 덕분이라고 주장한다.27) 동정녀는 시간적으로 뒤에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힘으로 미리 정화되었는데, 이 정화의 목적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께서 죄 없는 어머니에게서 탄생하시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동정녀의 ‘앞선 정화’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힘입은 것인 동시에 그분의 탄생을 위한 하느님의 준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안셀무스는 말한다. “그리스도의 어머니의(죄로부터의) 깨끗함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도 (죄로부터) 깨끗하신데, (그분 어머니의 깨끗함은) 그리스도에 의한 것이고 그분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결국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 자신에 의하여 깨끗하시다(고 말할 수 있다).”28) 결국 마리아의 깨끗함 혹은 정화됨은 그리스도에게서 시작되고 그리스도를 향하여 있다.

 

안셀무스는 아직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완전히 보호받았다는 명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에 힘입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이루어진 동정녀의 정화에 대해 말함으로써 후세의 신학적 토론에 중요한 길잡이를 제시했다. 안셀무스의 제자 애드머(Eadmer, 1060~1130)는 “거룩한 마리아의 잉태에 대한 논고”(Tractatus de conceptione Sanctae Mariae)를 통해 스승의 논리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킨다.29) 죄로부터의 정화를 주로 말했던 안셀무스와는 달리 애드머는 마리아가 그 자신의 삶의 시작, 곧 성녀 안나의 태중에 잉태될 때부터 원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웠다고 말한다.

 

순수한 진리의 그 스승(즉, 사도 바오로)은 … 모든 인간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참되며, 만약 (누군가) 이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죄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마리아 당신 안에 있는 탁월한 신적 은총을 생각할 때, 당신은 (당신 아드님을 제외한다면)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믿습니다. 당신의 잉태 안에서, 당신은 다른 (인간들의) 자연적 법칙에 묶여 계시지 않고, 유일무이하고 인간의 정신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힘과 작용을 통하여 온전히 죄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우셨습니다.30)

 

여기서 애드머는 마리아가 갖는 뛰어난 품위를 고려했을 때, 그녀는 (그녀의 아드님을 제외하고)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시는 분으로,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죄에 물들지 않고 죄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웠을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런데 마리아의 이 놀라운 품위와 특전은 사실 그녀 자신의 ‘본성’이나 권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녀 안에 있는 “탁월한 신적 은총”에서 오는 것이다. 그녀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이 특별한 은총은 다름 아닌 그녀의 아드님으로부터 오고 그분을 향해 있다.

 

동정녀들 가운데 가장 복된 이들이라도, 선택된 이들의 무리에 있다 하더라도, 이 (놀라운) 품위에 절대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아버지의 품으로부터 내려오시어 동정녀에게서 인간(본성)을 취하시어 아담의 죄를 파괴하지 않으셨다면 말이다.31)

 

즉 죄로부터 온전히 보호받는 특별한 은총과 품위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나 순결함, 거룩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강생과 죽음으로 이루신 구원 업적에서 오는 것이다. 애드머에 따르면 마리아의 탁월한 순결함은 오직 그녀의 아드님에게서 기인한다. “성자(聖子)께서는 죄스러운 인간 집단(massa)으로부터 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은 인간 본성을 창조해내실 수 있었으며, 바로 그 (무죄한) 인간 본성을 당신 위격과 결합하심으로써, 당신의 신성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으시고 온전한 인간이 되셨다.”32)

 

물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죄인인 어머니로부터도 당신의 아드님이 무죄한 인간본성으로 탄생할 수 있게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논리가 강생(육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기에 굳이 강생과 십자가 죽음이라는 ‘수고로움’을 거치지 않고서도 인간을 구원하셨을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33)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강생이라는 길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기로 하셨고, 이를 위해 당신 아드님이 인성을 취하실 동정녀를 미리 죄에 물들지 않게끔 준비하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는 논리적 필연성도 아니고 하느님의 본성이나 권능, 의지를 제한하는 존재론적 필연성이나 윤리적 당위성도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창조, 하느님 아드님의 강생과 파스카, 인간의 종말론적 완성으로 이어지는 구원역사 전체의 틀 안에서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는 신학적 ‘적합성’이라 할 수 있다.34)

 

애드머는 이러한 신학적 적합성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었고, 그리하여 원하셨으며, (실제로) 하셨다.”35) 이 원리는 훗날 둔스 스코투스에 의해 수용되어, 무염시태 교리의 신학적 적합성과 정당성을 표현하는 대표적 명제가 된다.

 

2.2. 반대 주장들

 

애드머의 저작은 무염시태 교의의 정립 과정 안에서 중요한 저서로 평가받지만, 당대의 신학적 논쟁에 완벽한 답을 주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당시의 영향력 있는 많은 신학자들은 무염시태의 전례적 거행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하였다. 예컨대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1090~1153)는 원죄의 보편성에 근거하여 마리아의 무염시태는 “비이성적인 견해”이며 이에 대한 전례 거행도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다.36)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원죄의 보편성과 이에 상응하는 구원의 보편성을 강조하여,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자유롭다는 견해를 반대하고,37) 다만 그녀는 영혼이 육신에 주입된 이후에 그리고 탄생 이전에 원죄로부터 정화되었다고 말한다.38)

 

그러나 토마스는 마리아의 무죄성을 온전히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교부들과 동일한 선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동정녀는 죄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했다고 주장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어떤 특별한 직무를 위해 뽑으신 사람들을 그렇게 준비하시어, 그들이 그 직무를 완수할 수 있게끔 하신다. … 복된 동정녀는 하느님에 의해서 그분의 어머니가 되도록 선택되었다. 그러므로 의심할 여지 없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그녀가 그 직무에 합당하게끔 만드신다. 이는 천사가 한 말에 드러난다. “너는 하느님의 총애(은총)을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그런데 만약 그녀가 한 번이라도 죄를 지었다면, 그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부모의 영예는 자녀들에게 반영되며… 반대로 어머니의 수치는 그녀의 아들에게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그녀로부터 육(caro, 인간본성)을 취하신 것이다. … 셋째,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그녀 안에 유일무이한 방식으로 계셨는데, 단지 그녀의 영혼 안에서가 아니라, 그녀의 태중에 계셨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복된 동정녀가 대죄이든 소죄이든 어떤 본죄도 짓지 않았다고 고백해야 한다.39)

 

결국 토마스는 마리아의 무죄성에 대한 전승의 가르침과 실천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원죄론과 조화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명제를 내세우는 것이다. 곧, 마리아 역시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기에 그녀는 원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잉태 이후 탄생 이전에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온전히 정화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택된 이로서 평생 그 어떤 (본)죄도 짓지 않도록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

 

이처럼 토마스는 철저히 그리스도론적이고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마리아의 무죄성을 이해했지만, 아직 마리아의 온전한 무죄성이란 개념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를 머뭇거리게 했던 것은 바로 아우구스티노 이래 확립된 “모든 이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서방교회 특유의 엄격한 원죄이론이었다. 은총(구원)과 죄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제기되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무죄성에 대한 문제는 둔스 스코투스의 선행 구속 개념으로 결정적인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2.3. 둔스 스코투스의 선행 구속 이론

 

스코투스는 기존의 학자들이 제기한 질문, 곧 마리아의 무염시태가 죄와 구원의 보편성과 상충하지 않겠느냐는 물음을 염두에 둔다. 하지만 그는 은총의 우위성과 선행성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극복한다.

 

(만약 마리아가 죄가 없었다면)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 구속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가장 필요로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태어났기에(즉, 부모의 성적 결합에 의해 태어났기에) 만약 중재자(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해서 보호받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필연적으로) 원죄에 물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자신이 이미 물들어 있는 그 죄의 용서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이, 마리아는 죄에 선행하는 중재자를 더욱더 필요로 했을 것이다.40)

 

원죄에 물든 모든 이는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데, 원죄에 물들지 않은 마리아는 더욱 구원자를 필요로 했다는 스코투스의 논리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즉,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그녀를 구원의 보편성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다. 무염시태는 오히려 더 탁월한 방식으로 구원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모든 죄인은 예외 없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데, 죄에 물들지 않은 마리아는 그 ‘무죄성’의 근본 원인이자 동력으로서 그리스도를 더욱더 필요로 한다. 마리아가 원죄를 포함한 모든 죄로부터 보호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가장 완전한 중재자는 어떤 이들에 대해서는 가장 완전한 중재 행위를 한다. … 그런데 그분은 그 누구에게도 마리아보다 더 탁월한 형태의 중재 행위를 하지 않았다. 만약 그리스도가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런 말이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죄를 사하는 가장 완전한 방식은 죄가 형성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만일 누가 단지 범한 죄만을 없애고 용서한다면, 완전한 의미에서 속죄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아담의 후손들을 위협하는 죄를 선행할 때, 그래서 … 아담의 후손들 중 한 사람의 영혼이 이 죄를 지니지 않을 때, 삼위일체 하느님께 이 죄에 대한 완전한 속죄를 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의 후손 중 하나가 원죄로부터 해방되는, 혹은 아무런 죄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41)

 

애드머와 마찬가지로 스코투스는 형이상학적 필연성이나 윤리적 당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느님의 절대적 자유를 존중하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완전성이란 개념을 토대로 신학적 적합성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특히 스코투스가 주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 효력이 시간을 초월하여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42) 마리아는 “죄에 선행하는”(praeveniente peccatum) 중재자의 구원 공로에 따른 은총으로 원죄를 비롯한 모든 죄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중재자의 가장 완전한 구원 방식에 어울리는 일이다. 그리하여 스코투스는 애드머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하느님께서는 복된 동정녀가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실 수 있었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합당했으며, 그리하여 그렇게 하셨다.”(Deus Beatae Virginis immaculate conceptam facere potuit, decuit, ergo fecit.)43)

 

2.4. 스코투스 이후의 논쟁과 교도권의 개입

 

스코투스가 선행 구속의 개념을 통해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설명한 뒤에도 이에 대한 논쟁은 가라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토마스의 견해를 고수하는 도미니코회와 스코투스의 입장을 따르는 프란치스코회 사이의 대립과 맞물려 논쟁이 격렬해졌고, 심지어 상반된 입장을 갖는 이들이 서로를 이단으로 고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교황 식스토 4세는 교황령 “Grave nimis”를 반포하여 서로에 대한 비난을 중지할 것을 명한다.

 

거룩한 로마 교회가 공적으로 그리고 장엄하게 흠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잉태 축일을 지냄에도 불구하고 … 어떤 설교자들은 … 영광스럽고 흠없으신 천주의 모친께서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셨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죄를 짓는 것이며 이단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들은 주장하기를, 이러한 축일 지내는 것 자체가 큰 죄가 된다고 한다. 본인은 [이러한 주장을] … 단죄하며, 그러한 주장을 담고 있는 모든 책의 출판을 금한다. … [동시에] 본인은 정반대의 주장을 공공연하게 펴는 이, 곧 동정 마리아께서 원죄를 갖고 태어나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단이나 대죄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에 대해서도, 똑같은 단죄와 금지를 표명하는 바이다.44)

 

여기서 교황은 양측이 서로 이단이라 공격하는 것을 금하면서도, 미묘하게 무염시태에 대한 옹호에 무게를 더 싣는다. 교황은 교회의 전례적 실천을 강조하며, 이 실천을 비난하는 것을 엄금하고 그러한 비판을 담은 저서를 출판하는 것조차 불허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부들과 전승의 증언에 따라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에 힘입은 마리아의 거룩함과 무죄성에 대해 말한다.45) 공의회는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서 그의 죄(原罪)를 짊어지고 있기에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고 가르치는 동시에, 마리아에게는 이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함으로써 무염시태 교리를 위한 분명한 여백을 남겨둔다. 공의회는 식스토 4세의 교황령을 언급하며 무염시태에 대해 그와 동일한 ‘긍정적 유보’의 태도를 취한다.46)

 

 

3. 칙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반포와 그 내용

 

3.1. 칙서 반포까지의 과정

 

식스토 4세와 트리엔트 공의회는 무염시태 교리에 대해 ‘긍정적 유보’의 입장을 취했지만, 점차 교도권은 ‘유보’를 넘어선 ‘긍정’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교황 바오로 5세와 그레고리오 15세는 한편으로 식스토 4세의 상호 비방 금지 명령을 새롭게 내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원죄 없는 잉태의 전례적 실천을 긍정하고 옹호하였다.47) 알렉산데르 7세는 1661년 교서를 반포하여 무염시태 신심과 전례를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확인하고, 오직 이에 대한 반대 의견 표명만 금지한다.48) 클레멘스 11세는 1708년 무염시태 대축일을 전체 보편교회의 축일로 확대한다.

 

교도권의 입장은 사실 당시 가톨릭교회 안에 널리 퍼진 공감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일부 신학자들을 제외하면, 매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원죄 없으신 잉태의 전례적 실천과 신심을 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 견해에 근거하여 무염시태 교리를 신학적으로 반대해 오던 도미니코회도 1605년 총회에서 자신들의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수많은 도미니코회 신학자들이 이 교리를 옹호하게 된다.49)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특별히 18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기적의 메달’ 성모 발현을 계기로 더욱 큰 관심과 열성의 대상이 된다.50) 이 ‘기적의 메달’에는 수녀 카트린느 라부레(Catherine Labouré)가 본 환시의 내용, 곧 “오, 마리아, 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말이 적혀 있다. 이 메달이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 퍼지고 그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면서, 1840년 프랑스 대주교들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무염시태 교리의 선포를 청원하게 된다.

 

이런 교회 전체의 흐름에 한국천주교회도 합류한다. 1838년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당시 교황청 포교성성(現 인류복음화부)에 서한을 보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조선교구의 새로운 주보성인으로 정해달라 청원하고, 성청은 1841년 이를 허가한다.51)

 

이러한 전체 교회의 분위기 안에서 1846년 교황으로 선출된 비오 9세는 무염시태 교리의 결정적 선포를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1849년 회칙 “Ubi primum”을 반포하여 공식적으로 무염시태 교의 선포에 대한 주교들의 의견을 요청하게 된다. 한편, 주교들을 포함하여 신부, 평신도들의 의견을 묻는 사전조사에서 603건의 설문지 중 90%가 넘는 546건이 적극적인 찬성 의사를 표명하고, 일부는 때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유보의 입장을, 그리고 매우 소수만이 반대 의견을 내었다. 토론의 과정에서 특히 중시되었던 것은, 오랜 전례적 실천에 근거한 “기도의 법은 믿음의 법”이란 원칙과 더불어, 오늘날 교회가 그렇게 믿고 행하고 있다는 “factum ecclesiae”(교회의 현실)이었다. 오늘의 보편적 실천이 그 기원적 정당성을 드러내고 입증해 준다는 것이다.52)

 

이러한 조사와 토론의 결실을 갈무리하여 1854년 비오 9세는 교황칙서(Bulla)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Ineffabilis Deus)을 통해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다.

 

3.2. 칙서의 내용 분석53)

 

교황은 무엇보다 먼저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Ineffabilis Deus)께서 이미 창조 이전에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멸망의 상태를 미리 보시고 “영원으로부터” 당신 아드님의 강생을 계획하셨다고 말한다. 아드님의 강생에 대한 계획은 동시에 그분의 어머니에 대한 계획도 포함한다. 즉 마리아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준비와 안배는 인류를 위해 이미 영원으로부터 세우신 구원 계획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597).

 

다음으로 교황은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교회의 오랜 신심과 전례적 거행을 언급하며, 역대 교황들이 그러한 신심과 전례들을 옹호하고 격려했음을 상기시킨다(598-601). 뒤이어 교황은 우리가 기도 즉 전례로서 기념하는 것들은 그 전례의 “대상”(objectum)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며 “기도의 법은 믿음의 법”이란 원리를 제시한다(601). 하느님 백성이 전부터 “기도의 법”으로써 기념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은, 만약 그 대상이 “불확실하거나”(anceps) “모호하면”(ambiguo) 그러한 실천 자체가 “분명하고 확정적인”(rata et fixa)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될 수 없다거나, 원죄에 물든 이후에 그것으로부터 정화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무염시태 축일의 대상(objectum)을 불확실하게 만들고, 그리하여 그 실천 자체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교황은 무염시태 축일이 거행하는 바와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더 이상의 관용이 베풀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비오 9세는 해당 부분에서 자신의 선임 교황들, 특히 알렉산데르 7세의 가르침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영혼은 인류의 구세주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미리 입어, 그녀의 영혼이 창조되어 육체에 주입되는 첫 순간에 원죄의 오염에서 깨끗이 보호되었음을 알아 … 그녀의 축일을 장엄한 예절로 경하하며 거행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 신심은 참으로 오래다.”(DH 2015)

 

비오 9세는 다시 한번 무염시태 신심과 전례에 대한 선임 교황들의 간접적·직접적 옹호를 말하며, 특히 알렉산데르 7세의 선포문을 인용하는데 여기에 “선행 은총”(gratia praeveniens)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단, 여기서 “선행 은총”은 성령의 작용에 따른 은총의 우위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아직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업적이 시간의 한계를 넘어 마리아에게 먼저 적용되었다는 생각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602-604).

 

교황은 무염시태나 그 전례적 거행에 대한 반대를 금지하는 선임 교황들의 교령을 제시한 다음(604-605), 이 거룩하고 정당한 “기도의 법”을 설명하기 위해 신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상기시키며 본격적으로 둔스 스코투스에 의해 제시된 선행 구속 혹은 선행 공로의 개념을 언급한다. “동정녀 마리아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선행 공로(praevisa merita)로 인하여 결코 원죄에 예속되지 않고, 반대로 전적으로 원죄의 흠에서 탁월하게 구속되고 보호되었다…”(605) 또한 칙서는 원죄 일반에 대한 내용을 마리아에게는 적용시킬 의도가 없다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보류’ 입장을 무염시태를 옹호하는 ‘간접적’ 증거로 제시한다(605-606).

 

하느님 백성의 신심과 전례적 실천, 그리고 그것을 옹호하는 교도권의 입장을 중심으로 무염시태 교리의 정당성을 제시한 교황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 교리에 대한 신학적 논증을 제시한다. 특히 교황은 그리스도교 교의에 대한 교도권의 기본 입장, 곧 “자신들에게 맡겨진 가르침들에 대하여 … 교회는 아무것도 변경하거나 빼거나 첨가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성실하게 보존해 왔다는 원칙을 천명한다(606). 첫 번째 보편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모든 보편공의회들은, 해당 공의회가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 아무 것도 보태거나 빼지 않았다는 점을 늘 강조해 왔다. 물론, 신학적으로 봤을 때 이후의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교 교의의 많은 내용들이 새롭게 그리고 더 정교하게 정의되었지만, 교회는 그러한 ‘새로움’을 이미 ‘옛 것’에 있지만 단지 감추어진, 혹은 암묵적으로 포함된 것으로 이해한다. 동일 선상에서 무염시태 교의나 훗날의 성모승천 교의도, 이미 교회가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받은 원천 전승(‘사도전승’)에 불분명한 형태로나마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며, 그것이 교회 안에서 신심이나 전례를 통해 먼저 고백되다가 마침내 명료한 형태의 교의로 장엄하게 선언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정적’ 교의의 반포에는 교도권과 더불어 학자들의 “연구, 학문, 그리고 지혜”(studio, scientia, ac sapientia)가 큰 역할을 한다고 교황은 명시한다.

 

그리하여 칙서는 계시의 원천인 성경과 전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607-612). 교황은 무염시태의 ‘근거’가 되는 성경 내용을 들되, 특별히 교부들의 독법(讀法)에 따른 성경 해석을 제시한다. 먼저 원복음(原福音)이라 불리는 창세 3,15을 제시하며, 이 말씀이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로 실현되었다고 말한다(607). 또한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표상들, 곧 “노아의 방주”(창세 6,9 참조),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다리”(창세 28,12), “불붙는 떨기나무”(탈출 3,2 참조), “하느님의 거룩한 도성”(시편 86,1) 등이 마리아에게 적용되는데, 이는 모두 교부들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마리아에 대한 표현들이다(607-608). 뒤이어 교황은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라는 호칭을 언급하며, 이를 통해 마리아에게 내려진 온갖 충만한 은총과 그에 따르는 그녀의 거룩함과 무죄성에 대해 말한다(608-609). 또한 마리아는 새로운 하와로서 원죄 이전의 하와보다 더 고귀한 존재인데, 이는 그녀가 창세 3,15의 말씀에 따라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뱀의 힘과 능력을 온전히 분쇄하였기”(609) 때문이다. 여기서 교황은 마리아의 무죄성을 악에 대한 그녀의 승리로 보는데, 이는 온전히 하느님의 힘에 의한 것이다.

 

교황은 마리아에 대한 교부들의 다양한 호칭들을 언급하며, 이러한 찬사들을 마리아의 거룩함과 무죄성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이해한다. 그녀가 받은 이 ‘특별함’은 그녀가 온전히 그리스의 합당한 거처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암묵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담고 있는 이 호칭들은 전례 안에 수용되어 끊임없이 하느님 백성에 의해 고백되고 찬미되었다(611-612).

 

‘교회의 현실’(factum Ecclesiae)과 ‘기도의 법’에서 시작하여 그에 대한 성경적·전승적 근거를 확인한 교황은 이제 다시 ‘교회의 현실’로 돌아와, 옛부터 성직자와 평신도를 막론하고 수많은 교회의 지체들이 무염시태 교의의 반포를 청원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612-613). 신자들의 신앙 감각(sensus fidei)에 근거를 둔 이러한 교회 전체의 신심과 실천, 원의 앞에서 교황은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이 교리에 대한 결정적인 식별과 판단을 할 의무를 인식하고, 1849년 반포한 회칙(“Ubi primum”)을 통해 무염시태 교리에 대한 모든 주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요청했음을 말한다(613-614). “경애하는 형제 주교들”(fratres venerabiles)의 절대 다수가 이 교의의 선포를 지지하였음을 알게 된 교황은, 추기경 회의를 열어 교의 선포에 대한 강력한 원의를 다시 확인한다(614-615).

 

뒤이어 교황은 무염시태 교의에 대한 근거를 짧게 정리하는데, 그 첫째는 성경과 전승이고, 둘째는 교회의 항구한 감각(sensus)이며, 셋째는 이 신앙 감각에 토대를 둔 가톨릭 주교들과 신자들의 단일한 열망이고, 넷째는 신심과 원의를 옹호하고 장려해 온 교도권(교황들)의 가르침이다. 교황은 사도 베드로와 그 후계자에게 부여된 권한과 의무에 입각하여 “복되신 동정녀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정의하고 반포하는”(615)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힌다.

 

그리하여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교의(Dogma)로, 곧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믿어야 할 교리로 선언한다(6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복된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권위와, 본인 자신의 권위에 의해, 본인은 다음의 교리를 반포하고 선언하며 정의한다. 곧,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당신이 잉태되신 첫 순간에, 하느님에 의해 선사된 단일한 은총과 특전에 의해,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미리) 힘입어, 원죄의 모든 흠으로부터 깨끗하게 보호받으셨다. 이 교리는 하느님에 의해 계시된 것이므로, 모든 신자들에 의해 굳건하게 그리고 합당하게 고백되어야 한다.54)

 

교령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이 ‘교의 정의’(definitio dogmatica)에서, 교황은 둔스 스코투스의 선행 구속 이론에 따라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에 당신 아드님으로 태어날 구세주의 공로에 미리 힘입어 원죄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았다고 정의한다. 스코투스에 따르면 이는 가장 탁월한 구원의 형태이며, 따라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에 의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뛰어나게 구원된 피조물이라 할 수 있다. 교황은 성경과 전승의 증언,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의 법’과 ‘교회의 현실’을 토대로, 이것이 하느님에 의해 계시된 것이며 따라서 모든 이들이 마땅히 믿고 고백해야 할 바라고 선언한다. 즉,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믿는다’는 것은,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고백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놀랍고 특별한 방식으로 구원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계시 안에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던 이 ‘신앙의 내용’은 교황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에게서 유래한 로마 사도좌에 앉은 이로서 그에게 부여한 권한을 가지고 명시적으로 정의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교령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미리 그리고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구원된 마리아는 모든 믿는 이들의 어머니로서 그들에게 특별하고 강력한 도움이요 전구자임을 상기시킨다(616-618). 그리고 이 교의 선포에 대한 권위의 재확인과, 이에 반대되는 고백에 대한 경고로써 칙서는 끝난다(618).

 

 

결론 - 무염시태 교의의 신학적 의미와 전망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는 오랜 신심과 전례적 실천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는 신앙의 원천과 전혀 상관없는 후대의 ‘변질된’ 생각이나 관습이 교리로 굳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교회의 살아 있는 전승은 성경에 드러나는 마리아의 모습과 사명(missio)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통찰하여 그녀의 거룩함과 무죄함에 대해 증언해 왔다. 이는 한편으로 교부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다른 한편으로 이름 모를 그리스도인들의 신심과 그에 연관된 전례적 실천 안에서 그 한결같고도 구체적인 모습을 취해 왔다.

 

무염시태의 신심과 전례를 둘러싼 중세의 논쟁은 ‘기도의 법’으로 먼저 형성되기 시작한 이 교리에 신학적 체계와 정밀함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신학자들은, 교부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마리아가 스스로 죄를 범하지는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서방교회에서 큰 권위를 갖고 있던 아우구스티노의 원죄 이론에 따른 죄와 구원의 보편성이란 개념 때문에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반대하기도 했다. 논쟁의 와중에 둔스 스코투스는 선행 구속 이론을 통하여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가 구원의 보편성에서 그녀를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탁월한 방식으로 포함한다는 논증을 제시하게 된다.

 

교도권은 이 모든 신심과 전례적 실천, 신학적 논쟁들 안에서 대단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기도의 법은 믿음의 법’이란 원리와 더불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 그 원천인 계시의 내용을 반영한다는 통찰에 힘입어, 무염시태의 전례적 거행을 옹호하고 그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증언과 고백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러한 전체 교회의 신앙 감각(sensus fidei) 안에서 마침내 교황 비오 9세는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 작업 끝에 1854년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한다.

 

무염시태 교리의 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계시의 원천은 성경과 전승인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명시하듯 이 둘은 별개의 원천이 아닌 하나의 단일한 원천을 형성한다.55) 성경이 집필되고 정경 목록이 확정되기 전부터 전승은 있어 왔다. 성경은 바로 그 살아있는 교회의 전승 안에서 탄생하였고, 그렇기에 언제나 전승 안에서 읽히고 해석되어야 한다. 역으로 전승은 언제나 성경을 그 기준점으로 삼고 성경을 통하여 전승의 본질적 요소와 부차적 요소를 구분해야 한다. 무염시태 교리는 성경이 교회의 살아 있는 전승 안에 읽힌 결과이며, 동시에 전승은 성경 안에서 끊임없이 이 교리에 대한 ‘근거’와 영감을 확인해 왔다.

 

둘째, 불변하는 신앙의 진리인 전승의 핵심적 요소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부차적 요소를 구분할 때, 중요한 판단 근거 중 하나는 ‘교회의 현실’과 더불어 이를 단단하게 뒷받침하는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한 목소리로 증언하는 신앙 감각이다.56) 가톨릭교회는 신앙 감각을 어떤 다수결의 원리가 아닌 하느님 백성의 현실 안에 드러나는 뚜렷한 성령의 움직임의 결과로 본다. 비오 9세가 무염시태 교리를 선언할 때, 그는 신자들의 목소리 안에 일관되게 드러나는 신앙 감각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였다.

 

셋째, 마리아에 대한 모든 교의가 그렇듯이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도 철저히 그리스도론적이고 구원론적으로 정향되어 있다. 마리아의 죄 없는 잉태는 그리스도의 선행 구속에 의한 것이며, 그녀를 모든 죄에서 보호함으로써 장차 “은총이 가득한 이”로서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하여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을 어머니로 미리 준비시키고자 하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중요한 마디이다.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안에서 하느님 은총의 선행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보편성이 가장 탁월하게 나타난다.

 

넷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죄인들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흠없이 그분 앞에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을 미리 그리고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다. 죄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은 동정녀 마리아가 자신의 흠없는 태중에서 구세주를 잉태하여 세상에 낳아준 것처럼, 죄인들의 ‘어머니’ 교회는 끊임없이 신랑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에 의해 거룩해져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들을 ‘출산’한다.

 

무염시태 교의가 갖는 이러한 신학적 의미는 오늘날 한국천주교회에도 특별한 영감을 준다. 현재 한국교회의 가장 큰 화두이자 과제는 시노달리타스, 즉 시노드 정신의 구현이다. 이미 보편교회 차원에서 시작된 이 움직임을 한국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시노달리타스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신자들의 신앙 감각(‘sensus fidei’ 혹은 ‘sensus fidelium’)이다.57) 무염시태 교의의 반포는, 교회가 오랜 세월 신자들의 신심과 전례적 실천 안에 나타나는 신앙 감각을 식별하고 수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의 다른 지체들과 더불어, 신자들의 원의와 실천 안에 드러나는 신앙 감각, 곧 성령의 움직임을 신중하게 식별하고 열린 마음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올바른 마리아 신심의 정착이다. 무염시태 교의 선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많은 가톨릭 신자들의 열성적인 마리아 신심이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한국천주교회 역시 그러한 보편교회의 전체적 흐름 안에 있었고, 이미 교의 반포 전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조선교회의 주보성인으로 청하여 성청의 허락을 받은 바 있다. 그러니 1854년 보편교회가 이를 공식적인 교의로 선포했을 때 당시 조선교회 신자들의 기쁨이 어떠했을지 넉넉히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한 역사 때문인지 한국 천주교회는 늘 특별하고도 강한 마리아 신심을 간직해 왔다. 때론 이것이 과장되어 교회 안팎으로 오해와 우려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지만,5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세주의 어머니이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요 특별한 전구자인 마리아에 대한 신뢰와 공경심이 한국교회의 신앙적 열성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한 ‘전통’과 ‘전승’의 흐름 안에서 좋은 것은 더욱 발전시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잘 식별하여 정화할 수 있는 용기가 오늘날 한국교회에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59)

 

 

참고 문헌

 

교회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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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문헌 (교부 및 중세 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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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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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대한 내용은 가톨릭신문의 다음 두 기사를 참조.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360636 (2021년 10월 10일, 제3264호 3면).

https://m.catholictimes.org/mobile/article_view.php?aid=360636 (2022년 7월 3일, 제3301호 3면).

 

2) 원문과 번역문에 대한 연구는 서원모/곽문석, 「19세기 옛한글 바티칸 필사본 Sire.L.13 연구」, 『교회사학』 21, 2022, 129~175쪽을 참조하라. 단, 해당 연구의 저자들은 네 번째 장(IV. 필사본 Sire.L.13에서 표현된 마리아론)을 작성할 때, 2022년 6월 28일 한국교회사연구소 제209회 연구발표회에서 발표된 필자의 발표문의 구조와 내용, 표현들을 광범위하게 참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출처와 참조 사실을 명기하지 않았다. 필자는 이를 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에 고지하였고(2022. 10. 31), 『교회사학』 측에서는 이에 대한 사실여부를 조사하여 필자에게 그 결론을 알려왔다(2022. 11. 30). 조사 결과, 「19세기 옛한글 바티칸 필사본 Sire.L.13 연구」의 저자들은 제4장을 집필할 때 필자의 발표문을 참조한 사실을 명기하는 것을 누락했음을 인정하였으며, 『교회사학』 측은 꼼꼼한 조사로 더 세심하게 관련 사안을 밝히고 확인하였다. 이에 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 편찬위원회는 해당 논문의 저자들에게 필자의 “발표문을 언급[전거 출처]하지 않은 ‘불성실’에 대해 엄중히 경고, 주의를 통지”하였다. 이 지면을 빌어 어려운 조사 작업을 수행해 주신 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 편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3) 물론 마리아의 아들 예수도 “죄를 모르는”(2코린 5,21) 분이며, 이는 성경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신학적으로 보면, 첫째, 그분은 참된 인간이지만 동시에 참된 하느님으로서 죄와 양립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고, 둘째, 전통적인 원죄론에 따르면 원죄는 조상(부모)에게서 물려받는데 예수는 그 어머니가 원죄로부터 보호받은 분이기에 원죄를 가질 수 없다.

 

4)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헌장 11항.

5) J.A. Fitzmyer, The Gospel according to Luke I-IX (1983), 345.

6) 이영헌, 『신약성서에 따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2000), 38.

 

7) Fitzmyer(1983), 346; K. Stock, “Die Berufung Marias(Lk 1,26-28)”, Biblica 61(1980), 457~471; I. de la Potterie(이냐시오 드 라 포테리), 『계약의 신비 안에 계시는 마리아』(2006), 59~66.

 

8) 이레네오, <이단 반박>, III, 22, 4 (굵은 글씨 강조는 필자에 의해 첨가됨. 원문은 Sources Chrétiennes vol.211, 440 참조). 또한 이레네오는 하와와 마리아를 대비하며, 순종한 마리아는 불순종한 하와의 변호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로써] 동정 마리아는 처녀 하와의 변호자(advocata)가 되었다. 인류가 한 처녀를 통하여 죽음의 사슬에 묶이게 되었다면, 다시 한 처녀에 의해 거기에서 해방되었다. 처녀의 불순종은 처녀의 순종에 의해 회복되었다.”(<이단 반박>, V, 19, 1) 원문은 Sources Chrétiennes vol.153, 248 참조.

 

9) 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강론>, XVII. 다음을 참조: S. de Fiores, Nuovo dizionario di mariologia (1986), 616.

 

10) 오리게네스, <루카 복음 강론>, XVII, 6: “사도들이 (십자가로 인해) 걸려넘어지는 동안, 주님의 어머니는 걸림돌로부터(a scandalo) 보호되었는가? 만약 그녀가 그러한 걸림돌을 겪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그녀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는 말씀과 ‘모두가 그분의 은총에 의해 의로워지고 속량되었습니다.’(로마 3,23)라는 말씀으로 봤을 때, 마리아 역시 그 [주님의 수난] 때에 걸림돌에 걸려넘어졌다(scandalizata est).” 희랍어 원문이 남아 있지 않은 해당 작품의 라틴어본은 Sources Chrétiennes vol.87, 258 참조. 또한 다음을 참조: L. Gambero, Maria nel pensiero dei padri della Chiesa (1991), 77~78;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1998), 147~148.

 

11) 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주석>, 10, 132. 원문은 다음을 참조: L. Gambero, Testi mariani nel primo millennio, vol.3 (1990), 192.

 

12) R.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XIII-XXI (1970), 922~927; R. Laurentin, Mary in Scripture, Liturgy, and the Catholic Tradition (2014), 20~26.

 

13) 참조: Denzinger, H. & Hünermann, P.(eds.),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이하 DH로 표현), n.251.

 

14) “교회는 마리아의 깊은 성덕을 바라보며 그 사랑을 본받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받아들여 그 자신도 어머니가 된다. 실제로 교회는 복음 선포와 세례로써, 성령으로 잉태하여 하느님에게서 난 자녀들을 불멸의 새 생명으로 낳는다.”(교회헌장 64항)

 

15) “합당하게도, 마리아는 신부이자 동정녀인데, 왜냐하면 그녀는 교회의 모상(imago)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흠없는 (동정녀)이지만 동시에 신부이다.”(암브로시오, <루카 복음 주석>, 2, 7.)

 

16) 이에 대한 간략한 내용은 조규만, 『원죄론』 (2000), 59~69; 127~136 참조.

 

17) 아우구스티노, <본성과 은총에 관하여>, 36, 42 (굵은 글씨 강조는 필자가 추가함). 원문은 Opere di Sant'Agostino 17/1 (1981), 428 참조.

 

18) C.A. Bouman, “The Immaculate Conception in the Liturgy” in E.D. O’Conner(ed.), The Dogma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1958), 114.

 

19)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반포된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는 이미 교의로 선포되기 전부터 신자들이 애용하던 호칭이었으며, 평생 동정에 대한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원죄 없으신 잉태와 성모 승천 교의는, 매우 오랜 세월 대중 신심과 전례를 통해 고백되고 실천되던 것을 각각 19세기와 20세기에 교회 교도권이 신중한 검토 작업을 거쳐 수용하고 확정지은 것이다.

 

20) 비잔틴 교회 신학자들의 설교와 저작 안에 나타나는 마리아의 거룩함과 무죄함에 대한 견해 들은 다음을 참조: F. Dvornik, “The Byzantine Church and the Immaculate Conception” in O’Conner(ed.), The Dogma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1958), 87~112.

 

21) Bouman, 118~119.

22) 참조: Bouman, 117~120.

23) Bouman, 119.

24) Bouman, 118~119.

 

25) 참조: S.J. Boss, “The Doctrine of Mary’s Immaculate Conception” in S.J. Boss(ed.), Mary: The Complete Resource (2007), 208~209; Bouman, 123~130; Ziegenaus(안톤 지게나우스), 『마리아론』, 364.

 

26) 참조: Boss, 208; M. Clayton, The Cult of the Virgin Mary in Anglo-Saxon England (1990), 40~43.

 

27) Anselmus, Cur Deus homo, 2, 16 (S. Anselmi opera omnia, F.S. Schmitt(ed.), vol.2). 또한 다음을 참조: C. Balić, “The Medieval Controversy over the Immaculate Conception up to the death of Scotus” in O’Conner(ed.), The Dogma of the Immaculate Conception(1958), 165~187.

 

28) Anselmus, Cur Deus homo, 2, 16.

29) 참조: Balić, 175~187.

 

30) Eadmer(Eadmerus), Tractatus, 12 (Eadmeri Monachi Cantuariensis Tractatus de Conceptione Sanctae Mariae, H. Thurston(ed.)).

 

31) Eadmer, Tractatus, 25.

32) Eadmer, Tractatus, 17.

33) 이에 대한 의문과 답이, 바로 애드머의 스승인 안셀무스의 “Cur Deus homo”에 상세하게 제시된다.

 

34) “육화, 동정녀로부터 탄생,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같은 구원의 질서는 형이상학적 필연성으로는 증명될 수 없다. 하느님은 분명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음 사실 역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하느님은 절대적인 가능성(potentia absoluta)으로부터가 아니라, 질서 있는 가능성(potentia ordinata)으로부터 행동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행위는 신비로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인 것은 아니다.”(Ziegenaus, 369) 여기서 지게나우스가 제시하고 있는 절대적인 가능성(potentia absoluta)과 질서 있는 가능성(potentia ordinata)이라는 스콜라적 개념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박승찬,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한 가능태 이론의 변형」, 『중세철학』 14(2008), 87이하; 조동원, 「하느님 은총에 대한 인간 본성의 개방성」, 『중세철학』 27(2021), 65~70.

 

35) Eadmer, Tractatus.

36) Bernardus, Epistola, 174 (Bernard of Clairvaux, The Letters of St Bernard of Clairvaux(1998), B.S. James(tr.)).

 

37)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거룩한 동정녀가 영혼의 주입(animatio) 이전에 성화되었다면 그녀는 원죄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구속과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하지만 이는 부적절한데,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구원자라고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된 동정녀는 영혼의 주입 이후에 성화되었다.”(STh III, q. 27, a. 2.)

 

38) 토마스는 성경에 기록된 예레미야나 세례자 요한의 예를 들며 마리아는 모태에서 탄생하기 이전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은총이 가득한 이”라는 천사의 인사말을 든다. 토마스는 죄와 구원의 보편성이란 틀 안에서, 마리아는 비록 원죄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잉태 이후 혹은 영혼의 주입 이후부터 탄생 이전까지의 어느 순간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되고 죄로부터 완전히 정화되었다고 본다(STh III, q. 27, a.3.). 오늘날 가톨릭교회에서는 인간 생명의 시작, 곧 하느님에 의해 직접 창조된 영혼이 육신에 주입되는 순간을 정자와 난자의 수정 시점으로 보지만, 토마스 당시에는 수정 후 40~80일 이후에 비로소 영혼이 주입된다고 생각했다. 토마스의 주장은 그러한 당대의 사고관을 반영하고 있다. 참조: 이정운,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신앙과 전례 그리고 삶”, 이정운(편), 『교황 비오 9세,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148.

 

39) STh III, 27, 4.

40) Duns Scotus, In Sententiarum III, d. 3, q. 1.

41) In Sententiarum III, d. 3, q. 1.

 

42) 이미 안셀무스나 애드머의 논증에 불분명하게나마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이 앞서 적용된다’는 생각이 스코투스에 이르러 선행 구속 혹은 선행 은총이라는 개념으로 명료화된다.

 

43) In Sententiarum III, d. 3, q. 2. 참조: 이정운, 153.

44) DH 1425~1426.

45) DH 1547.

 

46) “거룩한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곧, 원죄 [일반]을 다루는 이 교령은 복되시고 흠없으신(immaculata) 동정 마리아, 천주의 모친인 그분[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교황 식스토 4세가 반포한 교황령에서 규정하는 것들이 그대로 유지된다.” (DH 1516)

 

47) 참조: Ziegenaus, 374.

48) DH 2015~2017.

49) 참조: Ziegenaus, 374.

50) 참조: 손희송, 『주님의 어머니, 신앙인의 어머니』 (2014), 170~171; R. Laurentin, The Life of Catherine Labouré (1983).

 

51) 이에 대한 샤를르 달레의 짧은 언급은 다음을 참조: Claude-Charles Dallet(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하), 안응렬/최석우 역주,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6, 136. 달레의 언급에 대해 알려주신 익명의 심사자께 감사드린다.

 

52) 참조: Ziegenaus, 374~375; 손희송, 172~173.

 

53) 원문은 Pii IX Pontificis Maximi Acta, pars prima, Acta exhibens quae ad ecclesiam universam spectant, Romae 1854, pp. 597~619 참조. 우리말 번역은 주로 이정운의 편저를 참조하되(이정운(편), 『교황 비오 9세,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필요한 경우 필자가 라틴어 원문에서 직역하였다. 이하 본문의 괄호 안에 표시되는 숫자는 원문(Pii IX Pontificis Maximi Acta, pars prima)의 페이지 숫자이다.

 

54) DH 2803.

55) 참조: 계시헌장 9항

 

5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의 다음 대목을 참조하라. “성령께 도유를 받는 신자 전체는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주교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신앙과 도덕 문제에 관하여 보편적인 동의를 보일 때에, 온 백성의 초자연적 신앙 감각의 중개로 이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진리의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고 지탱하여 주시는 저 신앙 감각으로 하느님의 백성은 거룩한 교도권의 인도를 받는다. 교도권에 충실히 따르는 백성은 그 가르침을 이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 온전히 지키며, 올바른 판단으로 그 믿음을 더욱 깊이 깨닫고 그 믿음을 실생활에 더욱 충만히 적용한다.”(12항)

 

57) 참조: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교회 생활에서의 신앙 감각」 (2016); 송용민, 「교회의 삶과 사명에서의 ‘공동합의성’(synodalitas)과 ‘신앙 감각’(sensus fidei)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가톨릭신학』 37(2020), 5~36.

 

58) 참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올바른 성모 신심』 (2006).

 

59) 그런 점에서 마리아 공경에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신학자들과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들은 천주 성모의 독특한 품위를 숙고하는 데에서 어느 모로든 온갖 거짓 과장이나 지나치게 협착한 마음을 애써 삼가도록 간곡히 권고한다. 교도권의 지도 아래에서 성경과 거룩한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과 교회의 전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진리와 성덕과 신심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 지향하는 복되신 동정녀의 임무와 특권을 올바로 밝혀야 한다.”(교회헌장 67항)

 

* 이 논문은, 2022년 6월 26일 한국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제209회 연구발표회에서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의 역사적 성립과정과 그 의미”라는 제하에 발표된 연구물을 토대로, 2022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비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연구 작성된 논문임.

 

[교회사 연구 제61집, 2022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조동원(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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