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백)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가정 안에서의 전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05 ㅣ No.826

[레지오 영성] 가정 안에서의 전례

 

 

한 해 한 해 점점 더워지는 7, 8월 한여름을 지내고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하였습니다. 2년 넘게 계속되던 코로나19 상황이 조금 진정되나 싶더니 새로운 변이의 출현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함께 전례생활도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상황이 오랜 시간 계속되다 보니 과거 열심히 활동하던 것을 잊어버리고 지금의 현실에 안주해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근본적인 이유는 전례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영향도 있습니다.

 

전례생활에 대한 신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성당에서 사제가 예절을 거행하면 신자들은 거기에 참여하는 거룩한 행위라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삶이 성당 안에서만 의미를 갖고, 성당 밖 일상생활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신앙 안에서 해결하려 하기보다 일상생활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데, 이는 신자생활 자체가 전례의 삶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어떤 외적인 큰 신심행사에는 만사를 제치고라도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많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자신들이 속한 ‘작은 교회(가정)’ 안의 일상적인 전례에서는 그 의미를 깨닫기는커녕 찾으려 하지도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당에서 행해지는 보편적인 전례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 자체가 신앙적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부모님 덕에 저는 유아세례를 받고 어려서부터 기도생활을 체험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여러 번 이사했지만, 부모님은 항상 성당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셨고 자주 평일 아침미사에 저희 형제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가정에서 식구들이 함께 모여 아침저녁 기도를 바치고 묵주기도를 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었던 일들이 내 기억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이 가족이 함께 모여 행한 가정 안에서의 전례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가정 안에서 전례 분위기를 느끼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며, 자녀들에게 그러한 신앙 유산을 남겨주려고 마음 쓰는 부모가 얼마나 있습니까?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제각각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자연히 신자들의 생활도 세상 물결을 타 가족이 함께 묵주기도를 바친다거나 아침, 저녁 기도를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족들의 참 만남이 점점 더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의 삶의 표상인 전례적 삶을 성당에서만이 아닌 가정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생활화한 리듬으로 되살려내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들의 관계 안에서 전례적 삶을 맛들이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가정전례를 부활시켜야

 

전례는 교회의 아름다운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공적으로 만나는 곳이 교회인 만큼 그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전례행위는 사람들을 한마음, 한 의식으로 모아주고 거기에서 아름다운 삶의 꽃들을 무수히 피우게 해줍니다. 그렇다 보니 교회를 한갓 건물로만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전례의식만이 전례의 모든 것인 양 생각하기 쉬우며, 그 틀 안에서 고정된 형식에 매여 생활 현장 속에 살아있는 전례의 참맛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기 십상입니다. 결국 신자들은 전례를 외적인 의무행위 정도로만 여기게 되므로 전례의 참맛을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례의 공동체적인 형식을 교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는 더더욱 맛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작은 교회인 가정생활 자체가 하느님의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전례 현장으로서 근원적인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변화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 안 모든 삶의 자리는 바로 하느님의 창조적 삶의 자리로 이어지며, 하느님 사랑 안에 맺어진 부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최초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귀중한 가정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우리 가정은 단순한 숙식 제공의 자리로서만 남아있을 뿐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하느님 사랑의 꽃은 피우지 못할 것입니다. 전례를 만들어 가는 현장으로서 가정의 본래 기능을 되살려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은 자연스레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장 튼튼한 믿음과 신뢰의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모든 전례가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이 됩니다. 부모들이 이를 잘 엮어나간다면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로서 많은 신앙생활의 꽃이 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은 부모와 자녀의 역할이 어우러져 서로 삶의 몫을 나누며 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니다.

 

교회의 구성원들도 그런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본당 신부님이 한 지역 공동체를 주교님을 대신하여 맡아 돌보듯 작은 교회인 가정을 맡은 가장도 가족의 모든 사목적 배려의 중대한 몫을 이미 맡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 구성원의 역할이 상호보완 작용을 하면서 가정은 전례적인 모든 삶을 이룰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갖춘 훌륭한 공동체가 됩니다.

 

그런데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개인주의화 되다 보니 가정도 오늘날에는 육신이 머무는 거처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가정이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질서와 조화의 삶으로 다시 돌아와야 할 사명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가정전례를 부활시킴으로써 작은 교회가 다시 일어나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9월호, 정대웅 요한보스꼬 신부(서울대교구 목5동성당 주임, 서서울 Re. 담당사제)]

 



1,97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