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일)
(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강론자료

성체성혈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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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욱 [EliaPark] 쪽지 캡슐

1999-06-06 ㅣ No.119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가해)

1999. 6. 6.(수색)

. 제1독서 : 신명기8,2-3. 14b-16a./ . 제2독서 : 1고린토10,16-17./ . 복음 : 요한6,51-58.

벌써 6월이 되었습니다. 푸르른 나뭇잎들이 더욱 싱그러운 파란빛으로 물들여지는 6월은, 그 푸르름이 가득한 '젊음의 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6월을, 항상 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념하는, "예수 성심 성월"로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서른 셋의 나이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니까..., 그래서 청년이셨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는 말이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시는 그 정열이 바로 젊다는 말입니다. 항상 우리들이 푸르른 희망을 가지고, 벌써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것과 같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은 정말 젊은 분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젊은 사랑을 기리는 6월의 첫주일에..., 우리는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특별히 기념하고 그 신비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성체성사란,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십자가의 사랑을, 예수님의 최후만찬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우리도 그 같은 사랑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성사입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생명을 나타내는 당신의 살과 피가 되는 거룩한 변화를 이루게 하여, 제자들에게 직접 나누어 주셨고...,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이같은 예수님의 모습을 반복하는 성체성사로, 최후만찬 때와 똑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어 먹고, 예수님의 몸과 피로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지며, 그것을 받아먹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예수님과, 그리고 그 성체와 성혈을 받아먹은 모든 사람들과 일치를 이루고, 세상 모든 이와도 일치를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성체성사이며, 이 성체성사의 신비로 우리는 예수님과 일치된 교회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이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언제나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주일에 기념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체성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세상의 시작부터 영원토록 우리에게 변함없이 베푸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우리가 그같은 사랑을 행함으로써, 우리도 당신과 한 몸이 되는 구원을 얻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써 하느님과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그 사랑을 행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에..., 성체 성혈 대축일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한 몸이 되는 은총과 신비의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이 땅에서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며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랑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각기 서로 다른 인간이,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음으로써,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게 된다는 이 신비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받아먹은 살과 피인 예수님의 모습을 닮게하고, 마침내 예수님과 같아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영원한 생명을 우리도 똑같이 누리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미사, 즉 성체성사를 통해 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는 데에서만 그쳐서는 안되고, 그 살과 피를 먹고, 나도 그 살과 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살과 피처럼, 나도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에게 나의 살과 피를, 즉 나의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아먹은 살과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이며, 그분의 성체와 성혈은 우리를 당신과 같은 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알기 위해/ 나는 나는/ 당신의 피속으로 뛰어든 나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이것은 류시화라는 시인이 쓴 {소금인형}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성체와 성혈을 받아모신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바다에 뛰어든 소금인형은 이제 소금인형인 자신의 모습은 없어지게 되었지만, 이제부턴 소금인형이 아니라, 그 넓고 푸른 바다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포기하고 자신마저 내어놓음으로써, 따로 떨어져 혼자 있는 소금인형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이루게 한 소금을 만들어 준 바다의 일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만들어준 바다의 사랑에 감복하여,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면서까지, 자기 자신이 녹아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다와 한 몸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소금인형의 모습은,/ 나는 없어지더라도, 내 생명이 다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나를 만들어 내신 하느님의 사랑에 감복하고, 그분과 한 몸이 되기 위해, 예수님의 피속으로 뛰어들어, 나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고, 온전히 예수님과 한몸이 되는 신비, 즉 성체성사의 신비를 잘 깨닫게 해 줍니다. 이제 나는 없어지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그분의 일부가 되는 신비, 이것이 곧 성체성사의 신비이며, 우리가 이루는 교회 공동체의 신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같이 그분의 살과 피를 받아먹고도, 그 살과 피의 사랑을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사를 통해 성체와 성혈을 받아먹지만, 성당을 나오면 예전의 나의 이기적인 욕심만으로 세상을 살아나간다면, 우리는 바다에 뛰어들긴 했으되 녹지 않은 소금인형..., 그분의 피속으로 뛰어들긴 했으되 그분과 한 몸이 되지 않아서, 오히려 그 몸을 불편하게만 하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받아먹는 성체가 '영원한 생명의 빵'이 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조상들의 모습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천상의 빵인 만나로 육신의 배만 불렸기 때문에, 희망의 빵을 먹고도 끝없는 절망 속에서 불평만 늘어놓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사랑을 베풀 생각은 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하느님께 달라고만 했기 때문에, 만나를 먹고도 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 생명의 빵이 오히려 죽음의 빵이 되고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롭게, 우리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예수님을 믿고 먹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조상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즉 나 자신을 흔적도 없이 녹게 하는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이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체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인 예수님 자신이기 때문에, 이것을 받아먹는 우리에게 힘이 되며, 참된 희망이 되고,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을 실천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체는 끝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참다운 희망을 주며 용기를 북돋아 당신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망스러운 일들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절망끝에서 부르는 하나의 희망 노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 그 생명까지 내어주는 사랑을 우리가 실천하기에 바로 그 "사랑"이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바친 사랑, 그 사랑인 몸과 피를 받아먹으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의 몸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든 것, 나의 살과 피, 그 생명을,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똑같은 사랑을 행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절망과 실망이 가득한 이 세상에 진정한 희망이 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힘으로 살아가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사는 모습인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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