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9일 (수)
(백)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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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소외된 한 마리 어린양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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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25 ㅣ No.1041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74) 소외된 한 마리 어린양의 마음

 

 

신학생 시절 어느 겨울의 일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낡은 15인승 승합차 안에는 지도 신부님과 14명의 신학생이 서로 꽉 끼어 앉아 있었다. 경상도 깊은 산골에 계시는 은인을 방문해야 할 일이 생겼다. 우리는 5시간 이상이 걸리는 장거리 여정에 모두 녹초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지나 비포장 산길을 달릴 때는 피로가 정점에 달했다. 마치 ‘디스코 팡팡’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신학생들은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서로 머리가 부딪쳤다. 게다가 건장한 20대 청년들의 땀 냄새는 가뜩이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나에게 멀미와 구토를 안겨주었다.

 

신체적 불편함은 담배 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차 안에서는 흡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나는 담배 연기에 질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체구가 작아 가운데에 끼여 앉았던 나는 너무 답답하고 숨을 쉬기가 어려워 옆 동료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했다. 창문을 열자 살을 에는 찬바람이 차 안으로 들이쳤다. 그래도 구토가 나오는 담배 연기보다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 신선한 행복도 잠시뿐, 이내 신학생들의 강력한 항의에 문을 닫아야 했다. 연기를 피해 달아나는 두더지나 오소리가 바로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그 동물들보다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운 담배 연기는 문제도 아니었다. 한 사람의 비흡연자를 배려하지 못하는 이 신학생들의 모질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서 내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신학생들의 암묵적 메시지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임에도 가톨릭의 가르침은 공리주의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톨릭 사회교리 안에서 ‘공동선의 원리’와 ‘보조성의 원리’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마침내 나는 용기를 내어 운전석 옆에 계신 신부님께 도움을 청했다. “신부님, 죄송하지만 제가 숨을 쉬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차를 잠시 세우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면 어떨까요?” 신부님은 이 상황에서 내 호소를 무시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신부님의 답변은 나의 믿음과 기대를 한 번에 저버렸다. “담배 연기가 그렇게 싫으면 너도 담배를 피우면 되잖아~.”

 

아! 이게 웬 말인가? 적어도 신부님은 내 편이 되어주실 줄 알았다. 착한 목자가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목자처럼 느껴져 실망이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부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깊은 뜻이 있는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신부님은 나에게 담배를 피우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어떤 상황을 인식할 때는 판단 보다는 수용의 관점을 가지라는 말씀처럼 느껴졌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 행동인가를 먼저 판단하려는 마음보다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잘못된 상황에서라도 말이다.

 

물론 이 사건 이후에도 나는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면서 대화하는 자리를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다. 담배 대신 차를 마시며 무리에 끼어 대화하는 나 자신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게다가 그 날 이후 나는 특별한 은총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한 마리 어린양이 누구인지 더 잘 보이기 시작했고 그 마음이 어떨지가 더 잘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그 한 마리 어린양을 만나는 사목을 하는 것 같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23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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