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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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잠의 신비, 잠을 통해서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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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05 ㅣ No.828

[허영엽 신부의 ‘나눔’] 잠의 신비, 잠을 통해서도 기도

 

 

나는 잠이 많았다. 어린 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채비를 하는 것은 고욕이었다. 그런 내 옆에서는 자는 동생은 하루 온종일 돌아다니는 게 일이라 그야말로 실신 수준이다. 새벽부터 부엌에서는 달그락 달그락, 어머니와 누나들이 밥 짓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누나들은 이른 아침부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까르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엔 그 소리가 무척 거슬렸지만 어느 순간 웬만한 소음쯤은 가벼운 자장가로 바뀌고, 나는 이불을 둘둘 말아 한 몸이 되어 마침내 번데기로 변신한다. 내 체온이 스민 이 이불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고개를 돌려 옆에 누운 동생을 보니, 이 아이는 한술 더 떠 이불 끝을 야무지게 묶었다.

 

그러나 이토록 무던히 애를 써도 우리는 늘 약자(!)였다. 동네 마당에서 체조를 하고 오신 아버지는 제일 먼저 창문과 문을 활짝 여신다. 동시에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칼날처럼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아버지는 마치 신호처럼 “밥 먹고 학교 가야지” 하면서 이불과 요를 번쩍 들어 올리시는데, 그때마다 부역군(?) 누나들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이불 끝을 나눠 들고 그네처럼 흔들어 댄다. 이불을 사수하겠다며 의기양양하던 나는 키질에 쓸려나가는 쭉정이마냥, 고치를 잃은 번데기마냥 바닥에 나뒹굴고 만다. 내가 비몽사몽간에 아수라장에서 허우적거리는 사이, 다음 희생자가 자신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동생은 너무도 차분한 표정으로 이불을 개키곤 했다.

 

더 커서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늘 고역이었다, 특히 추운 겨울에 마당에서 세수를 하자면 당연히 고양이(?)처럼 물을 찍어 바르는 수준이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1시간 정도 먼저 이불에 들어갔다. 점심 식사 후 어김없이 찾아오는 식곤증을 이겨본 적은 거의 없어서, 낮잠 안 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낮에 오수를 즐긴 것과는 별개로, 매일 밤 기숙사에서 흘러나오는 취침 음악은 첫 마디만 겨우 들었을 정도다. 게다가 한 번 잠이 들면 중간에 깨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인데 동료들 중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고생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신학교 생활 내내 잘 잔 덕분에 수업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쉬웠던 것 같다.

 

 

건강한 수면은 삶의 질을 높이고 각종 질병 예방해

 

하지만 신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잠’은 내게 큰 고민이었다. 그래서 한번은 본당 주임 신부님께 상담을 청했다.

 

“신부님! 저는 신학교에 잘 안 맞나봐요.”

“왜 무슨 일이 있어?”

“어려서 병치레를 많이 해서 그런지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아요.”

 

심각한 표정의 나와는 달리 주임 신부님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신학교 때에도 잠을 못 자서 중간에 신학교를 나간 사람은 있어도, 잠을 많이 자서 신부가 못된 사람은 없어. 잠을 잘 자는 것도 은총이라 생각해. 한밤중에 깨면 분심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질 거 아니겠어? 내 동기 중에 한 신부는 보좌신부가 강론하는 동안 너무 깊이 꿀잠을 자서 잠꼬대도 했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지금까지 성실한 목자로 잘 살고 있어. 언제나 중요한 것은 마음 자세야.”

 

잠에 대해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던 나도 이제는 나이가 들수록 잠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수면 효율이 줄면서 중간에 깨거나 너무 일찍 일어나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건강한 수면은 삶의 질을 높이고 각종 질병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잠이 보약인 것은 잠이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충분한 수면은 신체 기능을 회복하고 감정을 조절해 다음 날 신체 활동을 가능하게 만든다. 잠 하나만 잘 자도 혈압을 낮추고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잠을 잘 못 자거나 수면의 질이 좋지 않으면 신체와 정신 활동에 문제가 생겨 일상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도 있다. 특히 나이가 많아지면서 잠의 질은 점차 떨어진다고 한다.

 

잠이 잘 안 오는 대부분의 경우는 걱정이 많을 때이다. 스트레스는 잠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불면이 계속되면 이후 형성된 수면 습관이 불면증으로 발전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오랫동안 불면증에 시달리셨다고 말씀하셨다. 어려운 시절 서울대교구장을 맡으면서 불면증은 더 깊어졌다니 그분이 짊어지셨던 책임감과 스트레스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잠자기 전 짧은 명상과 좋아하는 기도 반복해보기

 

불면증이 지속되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스트레스, 불안, 우울감도 나타난다. 특이한 수면 습관이 있는 동창 신부가 있다. 그는 잠자기 전에 ‘나는 몇 시에 일어날 거야’ 하고 잠자리에 드는데 매번 자명종도 없이 그 시간에 딱 맞춰 일어난다고 한다. 비결을 물었더니 머릿속 시계에 일어날 시간을 상상으로 맞춰놓고 잔다고 한다. 그리고 잠이 들 때 묵주를 꼭 쥐고 기도를 바친다고 했다. 나도 신학교에서 그 친구의 권유에 따라 해보았다. 머릿속 큰 시계에 일어나는 시간을 정해놓고 잠이 들면 어느새 그 시간 전에 눈이 떠졌다. 나중에 마인드 컨트롤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에도 조용히 눈을 감고 가만히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체험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면역력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면역력 강화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충분한 수면이다. 잠을 자는 동안 신체는 낮 시간에 쌓인 피로를 풀어내고 몸을 회복하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충분한 수면 시간을 가지면 좋지만 바쁜 현대 사회에서 현실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면역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충분한 잠, 영양소를 고루 갖춘 균형 잡힌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는 것을 추천한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식욕 억제 호르몬이 감소하고 식욕을 촉진하는 호르몬이 증가하여 비만이 될 위험이 높아진다고 한다. 적절한 수면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키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주님 앞에 앉아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꾸벅꾸벅 잠을 자는 것도 주님과 만나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졸음이 올 때 어머니 무릎을 베고 편안하게 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도 당신 앞에 와서 졸고 있는 우리를 꼬옥 안아주시며 미소로 우리를 내려다보실 것이다. 기도는 주님과의 만남이다. 잠자기 전 TV나 핸드폰 사용을 줄이고 5분이나 10분이라도 명상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는 좋아하는 기도를 반복하면 불면의 상태도 점차 좋아지지 않을까. 오늘부터라도 다짐하고 실행해 보자.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9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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