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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아, 마더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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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kspeter] 쪽지 캡슐

2000-07-02 ㅣ No.97

 

 

아, 마더 데레사!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 일에 깃들이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그러한 증여에 깃들이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It is not how much we do, but how much love we put in the doing.  

 

It is not how much we give, but how much love we put in the giving."

 

 

다음 싸이트를 방문하시면, 원문으로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lifemag.com/Life/classic/motherteresa/index.html

 

 

다음 글과 사진은 사진작가 마리 앨랜 마크가 마더 데레사와

 

 거의 한달간 생활하면서 쓴 일기와 사진들을 토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집에서는 보살핌 속에 사람들은 바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친절과 희망으로써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받습니다.  

 

 

   저는 마더 데레사의 생애의 작은 한 조각을 증언할 수 있게 된데 대하여 무척 행운이 따랐음을 느낍니다.  그녀는 위대한 힘과 대단한 집중력과 사랑의 현존이었습니다.  저는 마더 데레사가 사진작가인 제가 그 곳에 있었을 때조차 저를 의식하지 못하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사진작가를 의식하면서 어떠한 일들을 하는 류의 인간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사람에서 유일한 구심점과 강력한 사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보는 여성들의 공동체를 창설하셨습니다.  그녀가 돌보았던 이 사람들은 지독히도 앓고 있었으나 그들은 그녀를 존경하였고 그녀를 어머니라 불렀습니다.  그녀는 그들이 보다 나아지고 나가서 그들 자신의 삶을 갖을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 매리 앨랜 마크, 1997년 9월 5일

 

 

 

   무시무시한 밤이 찾아오는 키플링의 도시 캘거타의 거리에서,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다가 죽습니다.  그것은 서구인들의 마음으로는 거의 상상할 수조차 없는 운명입니다.  가난한 그들은, 만일 가난하지만 않았다면 정치와 상업과 문화가 활발했을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인 사회 얼개 속에서 캘거타의 가장 위풍당당한 지역들 - 으리으리한 집들과 현대적인 사무 빌딩들 - 과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1948년 한 작은 수녀님께서 캘거타의 로레토 수도원을 떠나 가난한 사람들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데 자신을 봉헌하려 모임을 구성했습니다.  이러한 열정적인 헌신으로 마더 데레사께서는 거의 70이 다 되어 지난해 가을 노벨 평하상을 받으셨습니다.  오늘날 마더 데레사의 사랑의 선교회는 전세계에 158 곳의 분원들이 있으며 2,000여 명의 수녀들과 250여명의 형제들, 그리고 10,000여명의 평신도 자원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께서는 가장 절박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도우십니다.  나병 환자들, 미혼모들, 버려진 아기들, 심하게 앓는 이들, 정신병자나 정신 지체자들, 죽어가는 임종자들...  사진작가 매리 앨랜 마크는 거의 한달을 마더 데레사와 함께 보내며 그녀의 일을 채록했습니다.  마크는 그녀의 여행 일기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피고름과 구토물, 오줌과 고통에 찬 절규들, 슬픔과 공허한 얼굴들과 같은 이러한 지독한 고통의 도가니 속에서도, 수녀님들께서는 결코 일하기를 멈추지 않으신다.  그분들은 온유하고도 친절하다.  내가 그분들께 무언가를 질문할 때면, 질문을 받는 수녀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이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으세요?  당신도 카메라를 내려 놓고 무언하 일을 하셔야 합니다.’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마더 데레사의 노력은 절망이라는 대양(大洋)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자비라는 비판을 그녀는 받아들인다.  어느 편지에서 그녀는 언젠가 고열로 신음하면서 꾸었던 꿈을 기술하고 있다.  그녀는 성 베드로께러 갔다고 한다.  ’그러나 성 베드로께서는 ’천국에는 아무런 빈민촌도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천국에 들여 보내주시지 않았답니다.  화가 나는 저는 말했답니다.  ’좋습니다.  저는 천국을 빈민가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버리고 말거에요.  그렇다면야 당신께서도 어쩔 수 없이 저를 천국문 안으로 들여 보내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가엾은 성 베드로!  그후로부터 수녀들과 수사들은 그분(성 베드로)을 쉼 없게 만들었답니다.  우리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으로써 이미 오래 전에 하늘나라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지요.’"

 

 

 

 

 

 기차 역에 쓰러져 있는 한 여인이 니르말 흐리데이로 옮겨지고 있다.

 

 

 

 

 

 

호스피스 남자 목욕실에서 형제들이 죽어가는 한 남자를 목욕시키고 있다.

 

 

   수많은 거지들과 학생들, 여행객들과 행인들을 캘거타의 카라이하트 구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도인들이 죽음을 맞으러 오는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신앙심 있는 힌두교도들은 성스러운 후글리 강 계단 위에서 화장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기차역 호우라는 그들의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이 곳으로 오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여성 구역에서 수녀들이 시트를 갈면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니르말 흐리데이 가까이에는, 마더 데레사께서 힌두교의 죽음과 파괴의 ’어둠의 어머니’ 칼리 여신의 신전이 서 있던 대지 위에 세우신 임종자들을 위한 호스피스가 있습니다.  기생충들과 각종 질병들로 가득찬 가난한 이들이 호스피스에 도착하면, 그들을 목욕시키고 이발해주며 상처를 싸매 줍니다.

 

 

 

 

마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나는 이 죽어가는 사람을 본다.  그는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  푹 꺼진 볼과 커다란 겁에 질린듯한 눈을 한 그는 고통 속에서 쉼없이 죽어간다.  그의 눈은 감기질 않는다."

 

 

 

 

남성들은 여성들보다 훨씬 더 빨리 죽어간다.  

 

   눈부신 태양이 니르말 흐리데이의 흰색으로 칠한 벽을 따라 흘러내릴 때, 수녀님들과 형제들은 그들의 병세가 나아지도록 돕거나 아니면, 적어도 죽기 전에 그들에게 평화를 주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거의 절반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임종합니다.  그들의 몸은 시신 안치소에 놓여지고, 각각의 종교에 따라 분리됩니다.  이에 대해 마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온유한 자세는 놀랍기만 하다.  ’그들은 완전히 홀로된 사람들이지요.’라고 한 수녀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셨다.  ’매우 앓고 있고 가난하지만 아무런 연고자도 없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훨씬 더 빨리 죽음을 맞이 해요.  여성들은 죽음에 덜 이르게 됩니다.’"

 

 

 

  한달에 한번씩 환자들을 옮기고 가구를 들어 낸다.  매일 청소하는 병상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닦아나간다.  여성들이 수녀들이 하루 소임을 마치고 그들의 침상을 갈아 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병상 닦아내기, 임종자 돌보기

 

   니르말 흐리데이에서의 일은 매우 고되고 그곳의 고통은 끝을 모르고 오르내립니다.  마크는 자신의 방문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아침 8시 30분에 수녀님들이 앰블란스로 가신다.  여성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팔에 궤양이 있는 여성은 죽어있었다.  수녀들은 그녀의 눈을 감겨 주고 씻겨 준 다음, 수의를 입혀 시신 안치소 침상 위에 가지런히 눕혀 놓는다.  그들은 죽은 고아가 된 아기와, 죽은 힌두교 남성을 다른 쪽으로 옮겨 놓는다.

 

 

 

 

니르마 흐리데이의 일상 : 세척실 뒷면에서 수녀들이 시트와 모포를 삶고 있다.  하얀 문은 시신 안치소로 이어진다.  오른 쪽에 있는 남성의 시신은 그 안치소로 옮겨질 것이다.

 

 

 

   "여성들의 방에서, 수녀들은 여성들을 씻긴다.  -- 여기저기에서 땟물이 흘러 나온다.  작은 눈먼 소녀는 마치 나찌의 강제 포로 수용소 희생자처럼 보인다.  그녀의 팔은 앙상마른 나뭇가지같고 그녀의 볼은 뼈의 자취가 드러나있다.  새로 들어온 몇몇 환자들도 있다.  그들의 다리는 태아의 다리처럼 흐느적거린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몸 기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그것은 가장 슬픈 일이 되곤 한다.  그들은 자신이 자신의 몸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충분한 양의 음식을 제공받는다.  수녀들은 그들을 다시 씻기고 의약품과 주사를 투여하고 침상을 청소하며 점심거리로 쓸 생선과 야채와 쌀을 씻는다."

 

 

 

 

 

16살난 기분 좋아하는 표정의 소녀는 나병으로 한 쪽 다리를 잃었고 그 질병 때문에 버림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나병 환자들을 위한 병동에서 돌봄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3시 30분에 다시 청소가 있다.  수녀들은 끔찍한 광경들과 냄새들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몹시도 고된 일을 한다.  저녁 식사 시간에, 눈먼 소녀가 도움을 받아 식사를 한다.  더이상 쌀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소녀에게 뼈다귀들을 주지만 소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소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그것을 바닥에 집어 던진다.  어떤 여성들은 거의 자동적인 습관이 된 구걸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들은 늙고 쇠약해져 있다.  너무도 많은 세월을 그들은 구걸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치켜 올려왔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그러한 동작을 멈추지 못한다.  6시 30분에 수녀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환자들은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에 든다.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스케줄 안에서 수녀들은 저녁 식사를 하며 밤 기도를 끝내기 전에 약간의 자유 시간을 갖은 후 10시에 취침을 한다.  그들은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하고 집안 일을 하며 두벌의 사리 중 더러워진 한 벌의 사리를 세탁한 후 미사에 참례하고 나서 아침 식사로써 차와 빵을 먹는다.  그런 다음부터 하루의 일이 다시 시작된다.

 

   이렇게 사람을 녹초로 만들어 버리는 생활은 가난한 이들에 봉사함으로써 스스로를 그들을 위한 삶에 묶어 버리는듯 보이지만, 그것 자체로 끝은 아니다.  "우리의 삶은 하느님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랑의 표현일 뿐입니다."라고 마더 데레사는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각각의 개인입니다.  모든 사람은 저에게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시기에 그 사람은 그 순간 세상 안에 있는 의미있는 단 한 사람이 됩니다."

 

 

 

 

 

마더 데레사는 항상 또다른 수녀님과 함께 여행을 하신다.  인도 정부는 수녀님을 위해 여행자용 객실 패스를 기증했다.

 

 

 

  마더 데레사의 활동에는 신체적으로 , 그리고 정신적으로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 있다.  바로 재활 센터이다.  그곳에서 질병 때문에 사회로부터 쫓겨난 나환우들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동식 클리닉과 영양 프로그램으로써 하루에 5,000 끼의 식사가 제공된다.  캘커다에서의 또다른 사명인 프렘단(사랑의 선물)에서 매리 엘렌 마크는 정신병자를 대하는 수녀들을 목격했다.  "아침 일찍, 소녀들은 환자를 일으킨다.  어떤 이들은 비통해져 있고, 어떤 이들은 행복하거나 기분이 조증 상태이다.  방 안에 있는 소녀들은 우리를 알아 본다.  ’안녕, 아줌마, 안녕하세요 수녀님’  발작증세에 익숙해져 있는 소녀는 ’마마’라 말한다.  그녀는 마더 데레사의 옷깃 아래 앉아 사리 스커트로 수녀복을 만든다.   또다른 소녀는 마더 데레사를 향해 춤추듯 달려온다.

 

 

 

 

 

  프램 단에서 ’수녀들은 환자들과 게임을 하고 웃는다.  그들은 결코 환자들을 체벌하지 않는다.’

 

 

 

  "완전히 어찌할 도리가 없어 격리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물쇠 채워진 방에 가두어 놓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씩 의사가 와서 매우 심하게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전기충격 요법을 시술한다.  어느날 저녁 매리 앤 수녀가 몹시 앓고 있는 여성들을 침상에 눕힌다.  ’이분은 무척 약하세요.’  ’이분은 하늘나라로 가셨답니다.’라고 또다른 수녀가 말한다.  수녀는 죽은 여인의 머리에 끈을 둘러 열려있는 입을 다물게 한다.  시신의 얼굴에 분을 바르고 새하얀 시트를 입히고 주위에 꽃들을 갖다 놓는다.  그들은 시신을 어둡고도 조용한 복도로 옮긴다.

 

 

  "저녁 6시에, 환자들은 잠자리를 만들어 눕힌다.  문닫힌 방 안에서 수녀들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사람들을 커다란 시트로 덮어 준다.  여인들이 달콤한 잠에 빠진 어린이들처럼 누워있다.  ’이들은 정말 순진무구해요’라고 수련 수녀가 말한다.  ’이 사람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하느님과 가깝답니다.’"

 

 

 

 

 

 

어린이들의 집, 신수 바반에서 온 두명의 신부들.  꽃을 들고 온 소녀와 함께 있다.  결혼식을 위해 차려 입었다.

 

 

 

  또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는 인도 전역에 나환우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세워진 시설은 캘커타로부터 300마일 떨어진 라이가르에 있다.  그 시설은 마크의 방문 중에 봉헌된 곳이다.  마더 데레사는 말씀을 하셨고, 무료 개안 클리닉이 개소되었다.  일기에 마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마더 데레사께서 짚차를 타고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빵빠레와 퍼레이드가 있었다.  시청에서의 연설 중에 마더 데레사께서는 최근에 자신에게 다가왔던 걸인 이야기를 하셨다.  그 걸인은 ’수녀님, 모든 이들이 당신께 무언가를 청하러 옵니다.’  ’어떤 이들은 무언가를 드리러 당신께 옵니다.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10펜스를 벌었답니다.  여기 있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제게 노벨상보다도 훨씬 더 값진 것이었습니다."

 

 

고아들에게 전통 결혼식을 치루어 주다

 

   임종자를 위한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그보다 훨씬 더 희망에 가득찬 곳이 있습니다.  하나의 고아원임을 넘어 신수 바반은 하나의 입양 센터이다.  버려진 아기들과 어린이들이 이곳에서 가정을 찾는다.  불구가 되었다거나 눈이 멀었다거나 정신지체된 가정을 찾지 못한 어린이들은 계속해서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과 더불어 삶을 살아 나가기도 한다.

 

   캘커타에 있는 동안 마크는 수녀들이 두 소녀의 결혼식을 준비시켜 주는 것을 보았다.  "수녀님들께서는 소녀들에 양장을 입히고 손톱을 손질하여 주신 후 인디안식 화장과 분을 그들의 얼굴에 발라 주고 발에는 헨나를 입혔다.  그들은 붉과 하얀 결혼식 사리를 입고 금을 입힌 보석을 달았다.  수녀님들께서는 각각의 소녀에 5,000 루피씩을 쓰셨다.  결혼식은 벵갈식과 가톨릭식이 혼합되었다.  후에 마더 데레사께서 그들을 축복해 주셨다.  사람들이 많은 선물을 가져왔다."

 

 

 

 

 

 

   가장 비이기적인 방식으로 주는 것이 바로 마더 데레사께서 최상으로 알고 계신 바입니다.  그녀의 삶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면, 마크는 그녀의 행적을 가리킵니다.  마더 데레사는 1910년 유고슬라비아 스코페에서  아네스 곤샤 보야스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12살때 그녀는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인식했고 18세에 다르질링에서 수련 수녀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19세기 갈멜회 수녀이자 지극히 겸손되이 하느님의 일을 실행함에 대해 글을 쓴,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를 따라 마리아 데레사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사랑의 선교 수녀회 초창기에 수녀님들은 탁발을 해야 했지만  -- 그것은 도움을 얻는 방식에 있어서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 그리고 겸손의 상징으로서 충분했다 -- , 마더 데레사께서는 더 이상 기금을 촉구하시지 않았습니다.  마더 데레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합니다.  주님께서 그 수단을 제공하십니다.  건물들로부터 담요와 자원봉사의 손길에 이르기까지 모든 거룩한 도움을 언제나 주십니다."

 

   오늘날 마더 데레사는 언제나처럼 활기에 차 계시고 유모로 가득하며, 가난한 이들에 대해 전적으로 헌신하십니다.  마더 데레사는 기도를 믿지만, 행동없는 기도는 전혀 아무런 기도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이 여러분에 달려 있는 듯 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드리십시오"

 

 

--Harriet Heyman

 

 

 

 

 

 

 

 

 

 

 

 

 

 

 

 

 

우리말 옮김 : 김 신 베드로

 

http://www.gargaro.com/mother_teresa/

기타 첨부파일: 041lgpicteresa.gif, 040mt04.jpg, 039her_mt.gif, 038mother.gif, 037gallery7.jpg, 036gallery6.jpg, 035gallery5.jpg, 034gallery4.jpg, 033gallery3.jpg, 032gallery2.jpg, 031gallery1.jpg, 030funeral8.jpg, 029funeral7.jpg, 028funeral6.jpg, 027funeral5.jpg, 026funeral4.jpg, 025funeral3.jpg, 024funeral2.jpg, 023funeral1.jpg, 022mothert.jpg, 020mother.jpg, 019mt13.jpg, 018mt12.jpg, 017mt11.jpg, 016mt10.jpg, 015mt09.jpg, 014mt08.jpg, 013mt07.jpg, 012mt06.jpg, 011mt05.jpg, 010mt03.jpg, 009mt02.jpg, 008mt01.jpg, 007title.jpg, 006teresa.jpg, 005teresa1.jpg, 004teresa1.jpg, 003mt1.jpg, 002teresa1.jpg, 001apmother.jpg, 021m1_t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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