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성미술ㅣ교회건축

가톨릭 신앙의 보물: 성화로 본 예수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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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12-24 ㅣ No.195

[가톨릭 신앙의 보물] <5> 성화로 본 예수님의 탄생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참된 선물은?



성화와 성상은 단순히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언어와 사고방식이 다른 이들에게 주님의 말씀, 즉 성경의 내용과 교리를 오류 없이 전달하고자 생겨났다. 가시적인 형태로 성경과 교리를 더 생생하게 내 안에 각인시켜 신앙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성탄 이콘과 그 안에 상징을 통해 '강생구속'의 참된 의미와 정신을 살펴보자.
 
강생구속의 교리가 담겨 있는 이콘 '예수 탄생'.


성화에 담긴 성탄의 의미

예수 탄생 성화<그림>를 보면 붉은 천 위에 누운 성모를 볼 수 있다. 붉은 천은 자궁을 뜻하며 이는 성모가 교회의 어머니 되심을 드러낸다. 검은 동굴은 마구간을 묘사한다. 해마다 성탄을 앞두고 우리 정서에 맞게 초가를 얹은 말구유를 꾸미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 시대 마구간은 마을 인근에 있는 천연 동굴이었다. 예수님은 동굴로 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그림에서 검게 묘사된 동굴 입구에 예수님이 놓여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드러낸다.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말구유의 모양 역시 나무 구유라기보다는 돌로 만든 관에 가깝다. 아기 예수를 감싼 천 역시 흔히 보는 포대기보다는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이를 염하는 천을 떠올린다. 이는 예수님이 훗날 죽음을 맞이하고 돌관에 묻히는 예표를 보여주는 것이다.

동굴 위 오른쪽에는 천사가 보인다. 천사들은 중앙 부분에 있는 목자를 향해 주님의 성탄을 알리고 있다. 왼쪽 위를 보면 목자들과 반대로 동방의 세 박사가 별을 보고 주님을 찾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동방박사는 두 가지 상징을 담고 있다. 교회에서는 성탄 구유를 꾸밀 때 이들 중 한 명은 꼭 흑인으로 하는데 이는 흑인, 황인, 백인 세 인종을 나타낸다. 주님께서 온 세상 만민을 위해 오셨고 또 온 세상 만민이 그분께 경배함을 드러낸다. 두 번째는 이들이 가지고 온 예물인 황금과 유향, 몰약이다. 황금은 고귀한 왕을 상징하고 유향은 하느님께 살라 바치는 향이며 몰약은 죽은 이를 염할 때 사용한다. 예수님이 왕 중의 왕이며,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성화 오른쪽 구석에는 여인 둘이 아기 예수를 씻으려고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예수가 진정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준다. 전승에 의하면 이 여인 중 살로메라고 불리는 이는 베들레헴 지역의 산파였다고 한다. 마을로 가 산파를 구한 요셉은 아기 예수가 성령으로 나온 거룩한 아이라고 말했지만, 산파 살로메는 이를 비웃었다. 순간 살로메의 팔이 말라 비틀어졌고 그 손에 아기 예수의 손이 닿자 회복됐다고 한다. 살로메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인 신자라고 전해지고 있다.


아기 예수께 사랑의 선물을 전하는 성탄 되기를

성화 왼쪽 아래 금색 옷을 입고 턱을 괴고 고민하는 이는 요셉이다. 요셉의 번민 앞에 지팡이를 든 이는 요셉을 유혹하는 이다. 요셉이 그랬듯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아기로 태어나셨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역시 믿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강생 교리는 더 이상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일 것이다.

성화 중앙의 또 다른 상징을 살펴보자. 아기 예수 주위를 보면 예수님을 향한 소와 나귀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성탄의 장소가 마구간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동시에 말 못하는 짐승인 소와 나귀도 먹이를 주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우리는 생명을 주신 주인이 오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한 우매함을 꼬집는 것이다.

구약시대부터 수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아 잉태를 예언했고 온갖 시련 속에서도 그분이 오신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그러나 정작 메시아가 눈앞에 왔음에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메시아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인간의 욕심으로 그분의 참모습을 바라보고 깨닫지 못했다. 2000년 전이나 오늘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투르(tour)지방에서는 매년 11월 11일, 성 마르티노의 선행을 기억하며 성탄을 준비했다. 마르티노는 미신자로 평범한 군인이었다. 몹시 추운 겨울날 성문 앞을 지나갈 때 헐벗은 걸인을 보고 돕고 싶었지만 그는 가진 게 없었다. 그래서 자기가 걸친 망토의 반을 잘라 걸인에게 주고 숙소로 돌아갔다. 그날 밤, 망토 반을 걸치신 예수님이 나타나 그를 칭찬했다. 그는 신앙을 받아들였고 투르 지방의 주교가 됐다. 그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지나치는 어려운 이웃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피고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참된 뜻인 강생을 몸으로 실천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예수님 만나고 또 놓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안에 이미 계심에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 때문이다.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의 주님이 그분의 참된 모습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분이 다시 세상에 오셔도 우리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우려를 범할지 모른다.

성탄이다. 이제는 반짝 선행과 선물로 기억되는 이미지를 벗고 성탄의 참된 정신과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무슨 선물을 받을까"가 아니라 "어떡하면 주님께 참된 선물을 드릴까" 고민해야 한다. 성당에 꾸며진 성탄 구유를 보고 단순히 2000년 전 오신 예수님을 떠올리는데 그치지 말고 진정한 신앙을 행동에 옮겨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3년 12월 22일,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정리=백영민 기자]
 
※ 방송은 수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방송되며, 지난 회는 누리방(http://web.pbc.co.kr/tv)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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