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본당순례: 보석과 감초들이 있어 주님의 집 지키는 구암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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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23 ㅣ No.982

[본당순례] 보석과 감초들이 있어 주님의 집 지키는 구암동성당

 

 

여기가 빛이다

 

1986년, 86아시안게임에 이어 88올림픽을 맞이하느라 전국이 들썩일 때 그 아성에 걸맞은 구암동성당이 봉헌된다. 당시 구암동은 신 주거지역으로 부상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고 철도역과 시외버스터미널과도 가까워 주거지로서는 최적지로 손꼽혔다. 특히 마산과 창원에 이르는 전국의 고속버스가 반드시 동마산IC를 거치는데 신호 대기를 하는 동안 초입에 구암동성당이 시선을 사로잡아 방문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구암동성당은 서양의 중세 성당에서 사용하던 아치라는 건축방식을 현대적으로 활용한 모더니즘 형식이다. 건물 밖 대형 십자가는 전통적인 형식의 틀을 벗어나 콘크리트 기둥을 아치형 입면과 연결해 진입부터 경건한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1980년대 성당 건축물로서는 대단한 파격이다.

 

 

찬란함 속으로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중앙홀 넓은 벽면에 신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나무 블록에 새겨 바둑판처럼 끼워 놓았다. 남영철 신부가 사목하는 동안 손수 제작하였다고 하는데, 신자들을 향한 사제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한다. 계단을 타고 2층 성전에 들어서면 마치 성 베드로 성전을 방불케 하는 높은 높이와 이에 걸맞은 십자고상이 공간을 압도한다. 넓은 벽면에 십자가의 성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다양한 옵션을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수직성은 곧 성스러움의 상징이다. 성전 내부는 온통 수직이다. 그 수직 속에서 십자가의 수직이 돋보이는 것은 벽면의 질감이다. 좌우 창은 격자 모양의 나무를 덧대어 기도에 방해받지 않도록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의 밝기를 조정했다. 오후 4시, 수녀님 두 분의 성무일도를 바치는 모습이 성전의 경건함을 자아낸다.

 

 

지혜의 눈, 현실을 직면한다

 

인근에 있는 주교좌성당이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제약이 많았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가까이 구암동성당을 짓게 된 셈이다. 성전 규모가 커서 전 좌석이 꽉 차면 무려 천 명을 수용할 수 있기에 사제 서품식과 몬시뇰 서임식 등 교구 행사를 종종 거행하였다. 모태 본당인 양덕동성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마산교구의 대들보로 쑥쑥 자란 구암동성당은 한때 복사만 무려 60여 명이었다. 그러다가 시대의 직격탄을 맞았다.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이 빠져나가고 주거시설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전환되면서 선호도도 대로변보다는 산과 바다가 밀접한 곳으로 이동하다 보니 주택은 점점 빈집이 늘어나고 재건축도 번번이 심사에서 무산되었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의 대부분이 주택 거주자들이다. 누구보다 현실을 잘 파악하고 있는 신자들은 내적 신앙에 코드를 맞춰 외적인 열세를 극복해 나가기로 했다.

 

 

느리게 더 느리게

 

설립 25주년이 되던 해 신자들은 매월 교무금에 비례해 일정 금액을 납부하고 사제와 힘을 모아 성전 보수 비용을 마련했다. 성전 바닥을 전부 교체할 때는 기술적인 부분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보조 작업과 청소, 마무리는 전 신자들이 참여해 인건비를 줄였다. 남은 비용으로 신자들의 오랜 꿈인 성모동산을 짓기 위한 대지를 매입하는 데 사용했다. 2016년은 본당 설립 30주년을 맞아 일 년을 알차게 보내려고 힘썼다. 기념기도문을 만들어 기도하며 주님께 감사하고 영적쇄신을 꾀했다. 특히 본당을 거쳐 간 사제 여섯 분을 매월 한 분씩 초청하여 특강을 듣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큰 규모로 바자회도 열었고, 가수 김정식을 초빙하여 영성음악의 밤을 개최했다. 기념미사로 마무리하면서 본당 승합차2호도 마련하는 결실을 보았으며, 성모동산 조성을 위한 집 한 채를 더 구입했다. 올해 설립 37년 만에 본당 출신 1호 사제를 탄생시키기 위한 전신자의 기도가 결실을 맺었다. 이창범 라자로 새 신부에게 무한 사랑을 보냈다. 신자들은 서두르지 않는다. 사제와 호흡을 맞추며 때로는 가파르게 때로는 느슨하게 신앙의 줄기를 키워오고 있다.

 

 

조용한 위력, 꽉 찬 양심

 

코로나 팬데믹은 사제와 신자들의 시험대였다. 여느 때보다 사제의 통찰이 필요하고 그것을 신자들에게 깊이 스며들도록 하는 기술이 요구되었다. 박태정 토마스 아퀴나스 주임 신부는 환기가 잘되는 외부에 임시 고해소를 만들어 넉넉한 시간을 두고, 신자들을 기다렸다. 깊은 면담을 통해 신자들과 서로 교감하고 ‘잘한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라고 북돋우며 단 한 명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정성을 쏟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섬세하게 다독이며 모두에게 모든 것을 믿어주는 것이 박태정 신부의 사목이었고, 신자들은 이 무한한 선처에 양심으로 화답했다.

 

수도자들은 올해도 첫영성체에 정성을 쏟았다. 신앙의 잔뿌리가 형성되는 이 시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알기에 대상자가 적어 위축되는 것을 막고 재미와 의미를 심어주기 위해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가 파견된 양덕동성당과 창녕성당의 어린이들을 모아 공동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매주 토요일은 교리 공부를 하고, 주일에는 순교성지나 공소를 순례하며 6개월 과정을 진행했다. 주일학교도 성소 주일에 왜관수도원 방문을 하는 등, 비록 인원은 적지만 내용은 알차게 운영하고 있다.

 

이준홍 요한 사목회장은 구암동성당에는 보석과 감초가 있다고 자랑했다. 함께 자리한 몇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쳤다. 보석과 감초의 힘을 발휘하여, 꼭 ‘성모동산 조성’이란 본당 신자들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그에 필요한 집 두 채는 이미 사들였고, 계획한 대로 한 채 더 이루어지길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2023년 7월 23일(가해) 연중 제16주일(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가톨릭마산 4-5면, 조정자 이사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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