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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영화 벤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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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3-27 ㅣ No.712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영화 ‘벤허’


폭력은 폭력을 … 복수는 복수를 …



영화 ‘벤 허’(Ben-Hur) 스틸컷.


“The Race is not over!”(아직 경주는 끝나지 않았어) 사두마차가 끄는 전차경주에서 참혹하게 패배한 멧살라(스티븐 보인드)는 벤-허(찰톤 헤스톤)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며 다리를 절단하지 말아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한다. 마침내 벤-허는 피투성이가 된 멧살라를 찾아왔고 자신과 가족을 파멸에 빠트렸던 친구이자 적의 죽음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 때 멧살라가 벤-허의 어머니와 누이가 실은 문둥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말을 듣자마자 벤-허는 절규했고 그의 옷깃을 움켜쥐며 멧살라가 죽기 직전에 남긴 말이 바로 “The Race is not over!”였다.

<벤 허>(Ben-Hur, 윌리엄 와일러 감독, 극영화/역사물, 미국, 1959년, 210분)는 복수와 용서를 주제로 하는 영화다. ‘허’ 가(家)의 아들(벤)인 유다는 오직 복수를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멧살라를 향한 그의 증오심은 겔리선(船)에서 노를 저어야 했던 잔인한 시절을 견뎌내게 했고, 아리우스 장군(잭 호킨스)의 목숨을 지켜냈고, 고향에 돌아와 다시금 가문을 일으켜 멧살라와 대적하게 한다. 그에게는 복수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돈과 명예나 사랑하는 여인과 누리는 행복한 삶도 복수 앞에서는 모두 무력했다. 그런데 원수가 죽는 현장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복수가 실패했다는 참혹한 현실을 깨달았으니…….

<벤 허>는 남북전쟁영웅이었던 루 월리스 장군이 1880년에 쓴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의 주제를 보다 빛나게 만든 데는 단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공이 크다. 그는 소설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부분을 강조했다. 벤-허는 노예선으로 끌려가던 중 우연히 나자렛 마을을 지나게 된다. 그 때 예수님에게 얻어 마신 물 한잔이 그에게 힘을 주었고 그 만남은 십자가의 길에서 한 번 더 이루어진다. 상황이 바뀌어 이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고 벤-허는 자유의 몸으로 물을 건넨다. 그 때 예수님은 뒷모습만 나오지만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는 벤-허의 표정이 클로즈 업 된다. 벤-허의 표정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보라는 고급스런 연출이다. 그 후로 많은 영화들에서 예수님을 닮았다고 여겨지는 배우들이 등장해 잘생긴 풍모를 뽐냈지만 벤-허의 눈길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그 예수님이 벤-허에게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알려주신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복수는 언제나 복수를 불러올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이 세상은 복수가 난무하는 참혹한 땅이 될 것이다. 용서만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해 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8-39) 이천년 전 예수님의 말씀을 <벤 허>에서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복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를 파멸시키고야 말 악마적인 경주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
박태식 신부는 서강대 영문과와 종교학과 대학원을 졸업 후 독일 괴팅엔대에서 신학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23일,
박태식 신부(영화평론가, 성공회 장애인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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