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중세 시대 생활 밀착형 성인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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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7-05 ㅣ No.1559

[세상 속의 교회읽기] 중세 시대 생활 밀착형 성인 공경

 

 

교회 전례력에 따라 7월20일에 기억하는 성인들 중 두 분 성녀의 삶은 퍽이나 흥미롭다. 빌제포르타(Wilgefortis) 성녀와 안티오키아의 마르가리타(Margaret) 성녀다.

 

- 성 빌제포르타.

 

 

포르투갈에서 이교도 왕의 딸로 태어난 빌제포르타는 결혼하는 대신에 동정을 서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의 의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제로 시칠리의 왕과 결혼시키려고 했다. 빌제포르타는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아버지가 정해 놓은 남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결혼할 수 없는 징표를 주시기를 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빌제포르타의 턱에서 수염이 돋아났다. 딸은 자신의 뜻을 관철했지만, 그로써 자기 계획이 틀어지고 만 아버지의 실망과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왕은 끝내 자기 딸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고 말았다.

 

성인의 이야기는 유럽 여러 지역에서 각기 다르게 전해진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이름도 슬픔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나온 ‘쿰메르니스’와 ‘쿠메라나’, 자유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나온 ‘리베라타’와 ‘리브라다’, 그밖에 ‘운쿰버’처럼 여러 가지로 불린다. 남편과 불화 중인 아내들은 으레 빌제포르타 성녀에게 의지하며 전구를 청한다.

 

마르가리타는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노 황제 시대에 안티오키아에서 이교도 사제의 딸로 태어나 그리스도교 신자인 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개인적으로 동정을 서원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자유로이 할 수 없었기에 유모와 함께 집을 나와서 양을 치며 살았다. 그러던 중 그 지방 권력자의 눈에 띄었다. 우연히 마르가리타를 보고 빼어난 용모와 지식에 반한 그 권력자는 아내를 버리고 마르가리타와 결혼하려고 하였다. 마르가리타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결국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무렵에 악마가 거대한 용으로 변신하여 나타나서는 마르가리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고 한다. 그런데 마르가리타가 늘 지니고 있던 커다란 십자가가 용의 목에 걸렸다. 마치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듯 십자가가 목에 걸리는 바람에 용은 마르가리타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마르가리타는 혹독한 고문을 숱하게 당한 끝에 목이 잘려 순교했다.

 

 

중세 시대에는 성인 공경이 매우 성행해

 

- 성 마르가리타.

 

 

‘마리나’란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성 마르가리타는 유럽에서 인기가 많았다. 훗날 프랑스의 성 잔 다르크에게 영감과 가르침을 준 여러 성인들 가운데 한 분이기도 하다. 또한 악마가 변신한 용을 물리치고 그 뱃속에서 살아서 나온 특이한 이력 때문인지 출산(또는 출산하는 임산부)의 수호성인이요, 마귀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는 성인으로도 공경을 받았다.

 

이렇듯 마르가리타 성녀가 자신의 독특한 삶의 이력 때문에 교회 안에서 특정한 부문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를 펼친 김에, 비슷한 곡절을 거쳐 공경을 받게 된 수호성인들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

 

중세 시대에는 성인 공경이 매우 성행했다. 이는 성인들이 현세의 인간과 하느님을 이어 주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고 본 신앙심의 발로였을 터다. 종교와 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라 당시 사람들은 온갖 크고 작은 일들에서 하느님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리 하느님이시라 하더라도 그 많은 일들을 일일이 헤아리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욱 신속하고 유효하게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 성인들에게 부탁하면 어떨까 하는 심리로 이어졌다. 좀처럼 만만치 않은 기도며 자선 행위를 혼자서 어렵게 실천하는 것보다는 누군가가 도와주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성인이라면 보통 사람으로서 어렵기만 한 일들에 대해 하느님께 전구해 줄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여기게 된 것이다.

 

특히나 무서운 역병이 번지거나 끔찍한 재앙이 닥치기라도 하면 그런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신앙에, 하느님께 간절히 의존했다. 그러고는 자신들은 부족한 만큼, 그 부분을 채워 주고 보태 달라며 성인들의 전구에 매달렸다. 오늘날에도 더러 그러할 테지만, 당시는 과학과 의료 기술이 발달하기 전이니 그런 일을 당하여 시달리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앞에서 살펴본 성 마르가리타를 포함하는 14분의 성인들이 각기 다른 질병을 관장하며 건강을 지켜 준다고 여겨서 각별히 공경하게 되었다. 그 시작은 14세기 독일 라인란트 지방에서부터였다.

 

 

질병과 재앙 닥치면 성인들의 전구에 매달려

 

이 14분의 성인들은 중세 시대에 당연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었고 또한 인기도 많았다. 그 중심에는 세 분의 동정 성녀, 곧 성 마르가리타, 성 바르바라, 성 가타리나가 있었다. 이 성녀들은 하나같이 고통 속에서도 박해자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끝까지 지키다가 마침내 당당하게 순교한 분들이다. 온갖 탄압과 결혼 강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켜내다가 순교한 분들이기에, 이들은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떠받들어졌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이름을 따라서 지을 정도로 선호했다.

 

그리고 이 14분의 수호성인들은 개별적으로도 공경을 받았고 공동으로도 공경을 받았다. 그래서 이 성인들에게는 각각 고유한 축일 외에 14 성인을 함께 기억하는 축일도 있었다(정식으로 선포된 축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는 이 성인들이 한 양치기에게 부탁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시토회 수도사들이 지어 봉헌한 성당도 있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허황된 관행인 듯이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다음 성인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공경하며 도움을 청했다.

 

성 아가티오: 두통 환자와 고난을 당하는 사람

성 바르바라: 열병 환자와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하는 사람

성 블라시오: 목에 질환이 있는 사람과 전염병에 걸린 동물

알렉산드리아의 성 가타리나: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하는 사람

성 크리스토포로: 여행 중에 질병에 걸리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

성 치리아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

성 디오니시오: 두통 환자와 마귀에 들린 사람

포르미애의 성 에라스모: 복통 환자

성 에우스타키오: 가족 간에 불화를 겪는 가정

성 제오르지오: 피부병 환자와 매독 환자

성 에디지오: 흑사병 환자

성 판탈레온: 암 환자와 결핵 환자

성 비토: 간질에 시달리는 사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7월호, 이석규 베드로(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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