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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ㅣ구역반

소공동체 활성화 우수사례 수상작: 사귐으로 가득 채워진 그릇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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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107

[소공동체 활성화 우수사례 수상작] ‘사귐’으로 가득 채워진 그릇들

 

 

구역장직을 그만두게 되자, 총구역장님이 그간의 체험사례를 써 달라고 부탁하셨다. 뭔가 쓸 것이 있을 것 같았는데 뒤돌아보니 발로 뛰어다닌 것 외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난 주일미사 때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 보았다. 그런데 “주님이 제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제 술잔 넘치도록 가득하외다.”라는 영성체송을 따라 할 때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내 앞에 음식이 가득 차려진 상이 보인 것이다. ‘아, 저렇게 상을 잘 차려 주셔서 내가 2년간 행복했던 지냈던 것을 몰랐구나. 극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나를 위해 넉넉하게 차려주신 그릇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여러 체험이 있을 테고 그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이 놓여있는 그릇에는 우리 가족이 보였다. 우리 부부가 구역장을 맡았을 때 남편은 두 번째 직장에서 임기를 1년 정도 남겨두고 있었다. 남편은 연임이 안 될 거라고 했지만, 나는 내심으로 열심히 성당 일을 하면 하느님이 어떻게 봐 주실까 하는 기대를 조금 했다. 그런데 예정대로 남편이 퇴임했을 무렵 우리 가족은 지난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평온했다. 우리만 느낄 수 있는 은총을 여럿 받았고, 하느님이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제대하고 복학한 아들은 지하철 카드 요금이 찍힐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했다. 아들이 실제로 그렇게 절약해 산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아이에게는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 된 것 같아 감사했고, 그 말이 나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남편은 그전에는 구역모임에 잘 나가지 않았는데, 구역장을 맡은 이후 구역 일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형제님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구역모임을 더 활성화시키겠다는 바램을 비쳤고, 구역 모임과 연도 가기를 좋아했다. 성당이 친숙해져서 좋다고 했는데 자연스레 집에서도 성당에 관한 대화가 많아졌다. 남편보다 나이는 적지만 성당생활을 먼저 한 남성 총무님의 성실한 협조도 좋은 윤활유가 되었다. 남편은 동창모임에 가면 구역장을 맡았노라고 자랑스레 알리곤 했는데, 직장이란 산속에만 살던 산골소년이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과 접하면서 신나하는 모습이었으니 나는 속으로 ‘처복도 많아’ 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우리 본당은 부부구역장 체계이고 대체로 자매들이 역할을 맡으면 형제님들이 따라서 하신다.)

 

구역장을 맡고 각오를 다지려고 토요일 새벽미사를 가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딸이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꼭 깨워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새벽, 남편도 깨워 셋이 함께 새벽미사를 드리고 있으려니 뭉클한 감동이 일었다. 그래서 “주님, 제게 베풀어주신 많은 은혜에 감사드리며 당신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제 노고에 대해 상을 주시려면 이번 몫은 이 아이에게 주십시오.” 하고 성서구절을 흉내내어 기도를 드렸다.

 

주위에서 나에게 성당 일을 즐겁게 한다는 말을 가끔 들었는데, 아마 내 마음 바닥에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나의 수고가 딸을 위한 기도가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가족 그릇의 뒤편에는 구역 식구들을 담은 그릇이 보인다. 힘든 일을 겪으셨던 형제, 자매님들이 한 분 한 분 떠오른다. 안면 부위에 아주 미세한 수술을 받아야 했던 형제님이 그 분야의 최고 의사를 만나 치료받은 일, 제대한 아들이 원인모를 배탈이 났을 때 걱정이 태산이던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며 제발 무사히 지나갔으면 했던 바램, 아주 위험한 지경에 놓였던 자매님과 이제 그 고비를 넘겨 환하게 웃으시는 형제님을 보면서 안도했던 마음, 봉성체하고 계신 젊은 자매님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기도를 하곤 했는데 이제 희망을 되찾아 밝아진 모습을 대하는 기쁨, 어려운 일을 당한 아들을 위해 자신을 던져 기도하고 계시는 자매님이 떠오른다. 교중미사 봉사에서 제병제주를 부탁하면, 영광스런 기회를 늘 자기들에게 줘서 고맙다며, 다른 분께 먼저 권해보시고 없으면 맡겠다던 자매님, 그 밖에 입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소망을 오늘도 내일도 품고 사는 우리 교우들, 이 모두 주님 식탁에 함께 앉아 있는 소중한 식구들이다.

 

아직은 구역원 중 아는 분보다 모르는 분이 더 많고, 함께 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우리 구역 식구들은 모두 힘든 일을 이겨내고 잘 지내셨으면 하는 욕심이 나서 주님께 그렇게 해 달라고 떼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연도나 장지에 가면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주님께 부탁드렸다. 어릴 때 시골풍습으로 망자에게 산 이들의 병을 가져가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보곤 했다. 그래서 돌아가신 분에게 저승에 가서 하느님께 청을 드려달라고 부탁드리는 버릇이 생겼다. 미신이긴 하지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옹기종기 앉아있는 반장님들 그릇도 보인다. 반장은 구역장의 가장 큰 빽(배경)이자 자산이다. 하지만 반이 11개로 많아 좀 벅찼고 처음에는 반장님들과 소통이나 단합하기가 쉽지 않았다. 월례회의 후에 점심을 함께 하려해도 약속있는 분들이 좀 있으면 단체행동으로 몰고가는 것이 조심스러웠고, 성격이 소심하여, 덤벙대며 일 처리하는 모습이 어설퍼 보일까봐 마음에 걸렸다.

 

청소와 미사봉사나 성당행사를 치르는데 혼자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반장님들께 항상 부탁을 드려야 했고, 그럴 때 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참여자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묘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더도 덜도 아니고, 무척 적당한 수준으로 일을 마치게 해주시는 것이었다. 처음에 내 속에 욕심이 있었던것 같고, 그 다음에 내 한계를 인정하게 되면서, 내가 노력하여 되는 일보다는 하느님 계획에 참여하는 것 까지가 내 몫이란 걸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구역 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 줄어들고, 그 만큼 일이 수월해졌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를 이해해주고 따뜻한 격려의 눈길을 보내주신 반장님들이 고맙고, 좋은 관계가 형성되도록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지금은 반장님들께 무엇이든 편안하게 부탁할 수 있고, 구역장 역할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역할을 계속 맡고 싶지는 않다. 하느님은 내가 무엇을 자신만만하게 하려고 할 때는 멈추게 하시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서 이끌어주시는 분임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문자메시지가 소복히 담긴 그릇도 보인다. 총구역장님의 문자를 받아 전달하고 헤쳐 모이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반장과 구역장들은 든든한 동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렵게 보이던 일들이 하나씩 성사되어 가곤 했다.

 

그 옆에는 구역장들이 모여 있는 그릇이 보인다. 구역장들은 동료이고, 우리는 좋은 친목단체에 속한 느낌이 든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움직이다 보면 서로 배우고 존중하게 되고, 그래서 만나면 늘 반갑다. ‘사귐과 섬김과 나눔으로서 한 형제되어’ 란 구절의 맨 앞에 있는 ‘사귐’의 의미를 구역장을 하면서 제대로 깨달았고, 이제는 ‘사귐’을 ‘섬김’ 이나 ‘나눔’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 ‘사귐’은 공동체의 기초요, 하느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구역장들이 부활절, 사제서품일, 성탄 전야 등의 잔치 때 하는 일을 보면 놀랍다. 까칠한 도시의 중년남녀들이 이날에는 마당쇠와 무수리로 변신한다. 국수그릇 1,500개를 비롯한 총 3,000-3,500여 개의 그릇을 꺼내, 씻고 차리고 서빙하고 거둬서 설거지를 해서 다시 집어넣고 뒷마무리를 하려면 아침 9시에 출동하여 다음날 새벽 2시경에 끝난다. 다들 개미처럼 바쁘게, 기계처럼 실수 없이 요리사, 청소부 등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다. 그런데 힘든 일을 하고 지쳐 쓰러지거나 불평하는 분들이 없다. 특히 남성구역장님들이 진심으로 즐겁게 국수 삶고, 짐 나르고 하시는 걸 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일 끝내고 신부님이 따라주시는 막걸리 한잔이면 피로가 다 달아난다. 운이 좋아(?) 몇 시간 후에 미사봉사를 하게 되는 구역도 있는데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함께 함’, ‘일치’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스타탄생’의 경험도 잊지 못한다. ‘일치의 날’ 행사에서 전통적인 ‘구역 장기자랑’ 대신에 남녀 구역장들이 춤을 준비하여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기로 했다. 2009년에는 성당 자매님의 안무로 ‘장윤정의 트위스트’를 준비했는데 남성구역장님들의 퇴근에 맞추어 밤 8시부터 성당에 모여 연습했다. 행사날 빨간 미니스커트를 갖춰 입고 관중들 앞에 나섰는데 신자들의 호응이 무척 좋았다. 앵콜을 받으니 스타가 된 것 같았는데, 이후 양천지구 구반장 송년행사때도 나가서 히트를 쳤다. 잘 하기 보다 신나게 추기로 방향을 잡았던 탓에 장내가 흥겹게 어우러져서 유명가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춤이 어렵긴 했지만 함께 모여 웃어가며 연습하면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고 ‘사귐’을 돈독히 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쌓이자 그 다음 해에는 4-50대 아줌마들이 감히 소녀시대의 ‘Oh’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여성구역장들만 참여했는데 만만치 않은 곡이라서 무더운 날씨에 두달 동안 거의 매일 연습하였다. 핑크모드의 유니폼으로 무장하고, 어려운 동작에는 정확성은 무시하고 그냥 열심히 추어 열광적인 반응을 받았다. 무대 뒤에서 앵콜을 기다렸건만 사회자가 야속하게 배반하는 바람에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잠시, 아이돌 스타가 된 기분이었는데.

 

구역장들간의 사귐은 구역일을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구역에서 초상이 나면 막상 장지 갈 사람이 귀하다. 반장들은 자녀가 어리고, 초상은 갑자기 나는 것이라서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 참석할 수 없다. 언젠가 다른 구역에 연도가 났을 때 그 구역장의 청을 받고 간 적이 있다. 얼마 전 우리 구역에 연도가 났을 때는 그 구역장이 장지까지 동행해 줘서 참 좋았다. 또 상을 당한 교우는 평소 미사봉사때 적극 도와주신 분이라 내 임기 내에 보답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럴 때 당신의 방법으로 잘 조절해 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낀다. 세상 떠난 분을 배웅하는 일은 의외로 평화롭고 배울 점은 많고 보람이 있다.

 

구역장의 그릇 옆에 있는 내 영성이 담긴 그릇은 아직도 거의 비어 있다. 마음은 잘 흔들리고, 필요없는 걱정을 하고, 사귐은 까다롭고 나눔과 섬김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은 인색하다. 그래도 구역장을 하면서 이런 믿음이 생겼다. ‘채워 주실 분은 하느님이시니까 나는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된다고. 그렇게만 하고 있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하느님의 식탁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체험들이 있다. 부활절이 끝나면 부부구역장 피정을 갔었고, 신부님을 모시고, 때로는 여성 구역장들끼리 여행도 여러 번 갔었다. 구역, 반장들의 노고를 인정하시는 주임신부님들의 배려로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지난해 11월에 105명의 구반장 수학여행(성지순례)단이 나카사키 성지순례를 다녀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행사는 그 자체도 좋았지만 10명의 반장이 참가한 우리 구역에는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지난 9월로 구역장 임기가 끝났는데, 시작 당시 후임으로 정해두었던 분이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새 구역장을 찾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다. 가능성이 있는 몇 분께 부탁드렸다가 서로 어색해지기도 하고, 남편은 그런 상황에 큰 실망을 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이 의외로 쉽게 풀렸다. 나가사키로 가는 배 안에서 반장님들과 대화 중 자연스레 후임 구역장 이야기가 나오고, 그 자리에서 후임자가 떠 올랐다. 그 분은 반쯤 승낙하고, 귀국 후에 형제님과 상의한 후 결정을 내리셨다.

 

함께 모여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일을 계기로 반장들간의 단합은 더 돈독해지고, 차기 구역장은 물론 2년 후의 구역장까지 정해졌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분들도 책임감을 느껴, 차례가 되면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남편과 내가 구역장을 넘기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차기 구역장과 다음 순번의 구역장까지 자연스레 정해지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우리 구역, 좋은 구역’이라는 긍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사귐’을 통해 공동체를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구역식구 모두 함께 느꼈으리라 믿는다.

 

지난 2년 4개월은 내 생애의 가장 뜻 깊은 날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하느님의 식탁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사귀고, 즐기면서 하느님 가르치심을 실천해보려고 노력했고, 한편으로 내 앞의 부족한 그릇들을 채워가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주님, 감사합니다.

 

[소공동체 길잡이, 2011년 6월호, 목5동 성당 안경랑 마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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