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2016-08-11.....연중 제19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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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8-11 ㅣ No.2127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 짝수 해

에제키엘 12,1-12          마태 18,21-19,1

2016. 8. 11. 이태원. 클라라동정기념일

주제 : 우리가 듣는 상징에 관한 생각

세상의 삶에는 본보기가 될 만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일들을 대하면서 그 일들에서 본보기를 알아보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서 본보기를 찾아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인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현실의 자기 삶이 바빠서 찾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우리들의 삶에 일어나는 본보기는 무엇일까요? 어떤 일을 보면서 우리는 본보기를 생각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이렇게 말할 때, 본보기는 좋은 일인 경우보다는 그렇지 못한 일, 우리 삶을 칭찬하는 일보다는 우리의 삶에 경고를 주는 일일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좋은 일은 말 그대로 개인이 누리면 되는 것이지만, 나쁜 일이나 경고를 담는 것은 한 사람에게만 적용될 문제가 아니라 많거나 여러 사람에게 적용되는 얘기입니다.

 

예언자가 사람들이 쳐다보는 장소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묘한 일을 합니다. 유배의 상징이라고 다음부분에서는 해석합니다만, 삶이 무딘 사람들은 그 일이 내 삶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을 것이고,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니 예언자가 바라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됩니다.

 

용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얻어야 하는 용서는 그 횟수가 아주 적은 것이지만, 내가 베풀어줘야 하는 용서는 아주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일반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그러니 내 것을 주는 것은 싫고, 다른 이에게서 받을 것은 적은 법입니다.

 

일곱 번으로 만족할 일이 아니라, 일흔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만, 그 횟수를 계산해서 실천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예수님의 비유이야기에 등장한 종이었습니다만, 자신의 빚이 탕감된 금액에서 6십만분의 1도 실천하기가 싫은 것이 사람이라는 얘기는 우리를 서글프게 합니다. 개개인의 마음이나 생각을 조사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세상에서 그렇게 살고 있는지, 더 달라질 상황을 만들 수는 없는지 찬찬히 돌아봐야 합니다.

 

6십 만분의 1의 분량도 실천하기를 거부했던 그 노랑이(속이 좁고 인색한 사람의 별명) 종은, 자신이 처음에 탕감되었던 빚이 살아납니다. 결정을 번복한 임금이 문제일까요? 자기의 삶을 찾아온 그 축복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노랑이 종이 문제일까요? 다른 사람의 얘기이니까 우리가 이런 소리를 합니다만,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그 세상이 나에게 반응하는 모습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만 변화해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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