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성탄 전야 미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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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1998-12-24 ㅣ No.11

예수 성탄 대축일 (가해)-전야미사

 

        이사야 62,1-5  사도행전 13,16-17.22-25  마태오 1,1-25

     1998. 12. 24.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교우 여러분, 오늘은 우리가 구원의 모습을 보고, 그 기쁨을 서로에게 인사하는 기쁨의 날, 성탄 대축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밤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예절과 더불어 전야미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를 통해서 구세주를 기다렸던 그 만큼의 세월을 우리가 반복할 수는 없겠지만, 대림절을 지내고 우리는 기쁨을 서로 나누며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날입니다. 성탄의 기쁨을 옆에 계신 여러분들과 나누셨으면 합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기쁨을 즐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일생을 함께 살기로 약속하고 그 사랑의 열매를 기다리는 기쁨도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반복되지 않을 기쁨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하물며 인간의 탄생 근원지인 하느님에게서 구원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구유예절의 독서를 통해서 길게 들었지만, 인간이 하느님의 눈길을 무서워하며 살았던 것을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길다란 역사는 숨을 헐떡이며 살아가는 인간이 생각할 때 길었던 것이지, 사랑을 베풀려고 때만 바라보고 계셨던 하느님의 손길에서는 그 시간을 계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성서 시편 90,4에는 `당신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대림절을 어떤 마음으로 지내셨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한해를 정리하는 때와 더불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는 한 해를 제대로 마감하기 위해서는 꼭 내야 할 세금을 고지서와 같은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어렵다고 생각할 때,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도대체 하느님은 어디에 계신가?'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옛날 교리서에 하느님이 누군가를 묻고 응답하는 말에 `하느님은 만선만덕을 갖추신 순전한 신'이라고 정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神)이란 사람이 가진 작은 머리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게 이해하겠다고 덤비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신 하느님이 오늘 성탄대축일에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제는 우리의 작은 머리로 알아듣지도 못할 그런 무리한 질문을 해대고 헤매지 말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성탄대축일입니다. 오늘 이 순간 갖는 기쁨으로 올해의 끝까지,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게 될 새해에도 첫 마음으로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구유예절에서 인간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맞아들였습니다.  성상들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모셔놓으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의 생각들을 하셨습니까?  이렇게 보이는 모습으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난 4주간을 대림절이라는 이름으로 보냈고, 오늘 구유예절의 독서를 통해서는 하느님의 세상과 인간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 인간이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과정, 그 인간들을 하느님이 당신의 사랑으로 다시 찾아오시는 길다란 역사를 요약해서 들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다가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생각으로 하느님에게서 다시 멀어지지 않는 일입니다.  한번 멀어진 관계가 인간사이에서는 다시 회복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렇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살아있고, 우리의 의지가 하느님을 향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소리입니다. 만일 우리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죽어버린다면, 다실 살아날 수 없다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차가워져서 웬만큼 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하느님이 우리의 귀에 대고 아무리 큰소리를 치셔도 우리는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이 지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해마다 성탄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다짐해야할 삶의 자세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구유예절 복음과 미사 독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역사에서는 좀처럼 반복되지 않을 역사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굳은 탓도 있을 것이고, 요셉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겠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무딘 감정을 깨면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렇게 오실 하느님은 인간의 세상을 어떻게 보실까?  "사랑하는 나의 임, 내 아내"라고 부를 것이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노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음을 읽으면서 그 소리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보여주시는 사랑을 즐기면서 이웃을 향하여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오로 사도가 전해주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 년(시편 90,10)을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사람으로 이 세상에 남기면 무엇을 남기려고 애를 쓰겠습니까?  `당신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실 터인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입니다(사도행전 13,25)'라고 슬프기는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줄 알았던 세례자 요한이 깨달은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 눈에는 인형의 모습으로 누워있지만, 인간으로 오시는 하느님이 간절하게 바라는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미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어떤 사랑의 마음을 청하겠습니까?

 

어려운 시대를 효과적으로 잘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간청합시다.  우리 자신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도구가 될 수 있게 도움을 청하고, 우리의 가족들이 서로를 위할 수 있는 마음을 청하고, 우리 나라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서 멀어지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간청하고 우리도 그 삶의 실현을 위하여 노력할 수 있도록 다짐하는 것을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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