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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 삶은 연기(演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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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03 ㅣ No.1294

[영화칼럼]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 2021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삶은 ‘연기(演技)’가 아닙니다

 

 

연기(演技)는 배우만 할까요. 배우가 아니어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부러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말과 행동’인 연기를 하면서 삽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삶에서 배우로 변신하곤 합니다. 아우렐리우스도 <명상록>에서 “인생이 연극과 같다.”고 했지만, 그것은 다른 의미입니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무대에 나를 올린 자(하느님)의 각본에 의해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연기를 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상처와 두려움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서, 칭찬받기 위해서, 상대를 속여 이익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진짜 ‘나’는 아닙니다. “연기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선하고 아름다운 연기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까요. 왜 연기여야 하나요. 선하고 아름다운 삶 그 자체가 더 낫지 않나요.

 

배우의 연기는 다릅니다. 잠시나마 무대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 모습을 그럴듯하게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그게 직업이니까. 그런데 그가 무대에서처럼 삶에서도 연기를 한다면? 실제로 기자 시절 만났던 배우들에게서 종종 그런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2022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각본상 수상)의 주인공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기 분)도 그런 배우입니다. 아내의 외도를 알면서도 이별이 두려워 모른 척, 아무 일도 없는 척했습니다. 아내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녀의 마지막 외도 상대였던 젊은 배우와 함께 일하고, 아내와의 추억까지 이야기합니다. 둘의 관계를 모른 척, 연기를 합니다.

 

아내와 하게 될 이별이 두려워서였습니다. 절망과 배신감, 분노와 질투심, 상처와 후회를 감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연기를 하고 나면 싫더라도 ‘하지 못한 질문과 듣지 못한 대답’을 품고 다시 나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그전과 조금 위치가 달라져 있다.”고 했습니다. 진실과 용서, 치유에서 조금씩 더 멀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런 그가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배우들과 함께 소통의 벽을 넘어 안톤 체호프의 연극 <바냐 아저씨>를 준비하면서, 잠시 자신의 운전기사가 되어준 젊은 여성 미사키(미우라 토코 분)의 상처를 이해하고 쓰다듬으면서 삶에서 하던 연기를 그만둡니다. 연기로는 어떤 진실도 만날 수 없고,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를 모른 채 우리는 주님 앞에서까지 신앙을, 봉사를, 사랑을, 용서를, 기도를 연기하려 합니다. 누구도 “나는 아니오.”라고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님 앞에서 연기가 가능하기나 할까요. 아무리 뛰어난 연기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안’까지 보시는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삶에서 하는 연기는 진실의 문을 잠가버리고, 신앙에서 연기는 예수님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온갖 위선을 꾸짖을 때 말씀하셨듯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는’ 불행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2022년 7월 3일(다해) 연중 제14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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