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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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왕 죽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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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2-10 ㅣ No.701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왕 죽어가다’


죽음 앞에 생은 찬란하다



연극 ‘왕 죽어가다’의 한 장면.


원작 외젠 이오네스코, 번역 이정은, 각색 김덕수, 연출 유환민
· 공연 일시 : 2013년 11월 1일 ~ 12월 15일
· 장소 : 가톨릭 청년회관 CY 시어터
 

우리 인생살이에는 여덟가지 고통이 따른다지. 우선 생(生). 그들에 따르면 사는 것부터가 고통. 이런 ‘고통’의 생에 있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고통들.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 -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수와 만나는 고통 -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고통 - 구부득고(求不得苦), 욕망의 불길이 날로 치성해지는 고통인 오온성고(五蘊盛苦). 그리하여 고통 중에 늙어가고(老), 고통 중에 병(病)들며, 결국 고통의 죽음(死)을 향한다. 내 생이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니 슬프고 슬프도다. 더욱이 안타까운 까닭은 죽음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삶이 고통인가. 어찌 죽음이 아픔이란 말인가. 난 저들의 이야기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왕은 죽어간다. 세상을 호령하며 그가 곧 법이며, 법보다 위에 있는 존재로서의 왕은 저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는다. 무엇인가 다를 것만 같았던 저 이의 죽음을 향하는 여정은 여느 인간의 마지막 결단을 향해 나아가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거부하고 솟구쳐 오르다가 다시 주저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결국 죽음의 금빛 왕좌에 말없이 좌정한다. 이를 통해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의 5단계에 이르는 죽음의 수용을 여실히 극화하여 표출한다.

그리하여 이제 남겨지는 자들은 냉철한 첫 번째 부인 마가렛 왕비와 지극히 사랑스러운 둘째 부인 마리 왕비, 시의와 시종 줄리엣, 그리고 경비병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저들은 모두 한 인물 안에 존재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봐도 무관해 보인다. 곧 여럿의 목소리이나 한 사람의 갈라진 마음의 무늬일 뿐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 이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것도 여느 사람과는 구별되는 한 임금의 죽음. 하지만 생에 의미를 지어주는 죽음 앞에서 구분과 구별은 무의미 할 뿐, 다만 반드시 통과하여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문으로써 모든 존재 앞에 놓여진 죽음일 뿐이다. 재밌게도 저 죽음의 이야기는 무대 위에서 발설되어 귀가를 울리는 문장들을 통해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어떤 대사들, 또 어떤 장면들은 그 의미가 모호하여서 단지 커다란 의미의 틀 안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 자체로 느끼고 나누고 파악해 볼 뿐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죽음의 이야기는 삶의 이야기로, 떠나는 자의 이야기는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로 다시 메아리친다.

죽음 앞에 생은 찬란하다. 하느님께서 죽음을 허락하신 이유이다. 누가 삶을 비루하다 하였는가. 누가 삶이 지루하다 하였는가. 거울에 비추어 보듯 매일 같이 준비하는 마음으로 5분씩 죽음을 마주하고 들여다 보면 생이 주는 기쁨으로 순간 가득 차오를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의 내 삶이 미지근한 삶의 진흙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 볼 일이다.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

깨친 사람은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는 법이다. 비로소 인생의 팔고(八苦) 마저도 하늘을 향한 발판임을 깨닫는다. 삶에 지치고 어려울 때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르길. 결국 늘 내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을 우러르는 일도 개똥 밭에서만 가능할 뿐. 종종 잊고 사는 저 하늘의 푸르름이 언젠가는 그리울 탓이다.

*
유승원 신부 -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2004년 서품을 받았다. 현재 성균과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협동과정 재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4년 2월 9일, 유
승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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