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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성당 건축 이야기34: 슈파이어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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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05 ㅣ No.996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34) 슈파이어 대성당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성당 가운데 가장 거대하고 웅장

 

 

- 슈파이어 대성당 내부. 출처=Sebastian Berlin

 

 

잘리어 왕조 황제들이 건설하고 왕족 안치

 

‘로마네스크’를 정의하는 성당. 그런 성당을 하나 든다면 어떤 건물일까? 그것은 독일의 슈파이어 대성당(Speyer Cathedral)이다. 현존하는 로마네스크 성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기도 한 이 성당은 11세기와 12세기 유럽 전역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성당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성당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전회에서 다룬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성당이었음도 기억하자.

 

슈파이어 대성당이 있는 독일 남서부 라인란트팔츠주 슈파이어는 현재 약 5만 명이 살고 있는 작은 도시지만, 살리족(族)이 지배하고 있었을 때는 중세 독일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의 하나였다. 독일에서는 대성당을 돔(Dom), 때에 따라서는 뮌스터(Mnster)라고도 부르는데, ‘카이저돔(Kaiserdom, 황제의 대성당)’이라 불리는 성당은 마인츠, 보름스, 슈파이어 등 세 개다. 그중에서도 ‘카이저돔’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잘리어 왕조의 황제가 건설하고 네 황제와 세 황후를 비롯하여 왕족의 석관이 안치된 슈파이어 대성당이다. 그래서 공식 명칭이 ‘성모승천과 성 스테파노 제국 대성당(Imperial Cathedral Basilica of the Assumption and St. Stephen)’이다.

 

잘리어 왕조 출신의 첫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콘라트 2세(1024~1039 재위)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놀라운 성당을 짓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1041년에 동쪽 지하 경당을 봉헌했을 뿐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지하 경당에 묻혔다. 그 뒤를 이은 하인리히 3세(1039~1056 재위)도 완공을 보지 못하고 아버지 옆에 묻혔다. 결국 손자 하인리히 4세(1056~1106 재위)에 의해 1061년에 봉헌되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성당을 건축사에서는 ‘제1 슈파이어’라 부른다. 옛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동서 길이가 122m였는데 ‘제1 슈파이어’는 무려 134m였다. 제단 아래와 횡랑(transept) 전체를 넓은 지하 경당으로 만들었다. 높은 단 위에 놓인 반원 제단을 사각형의 두꺼운 벽이 둘러쌌다.

 

하인리히 4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지어진 지 불과 20년이 지나지 않은 1082년에 대대적인 개축을 단행했다. 이것을 ‘제2 슈파이어’라 부른다. 이 공사는 하인리히 4세가 세상을 떠난 1106년까지 횡랑을 포함한 동쪽 부분 전체를 높이가 7m나 되는 42개의 교차 볼트를 20개 기둥이 받쳐주는 지하 경당으로 바꾸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지하 경당인데 면적이 850㎡나 된다. 또 회중석의 목조 평천장을 교차 볼트로 바꾸어 천장을 5m나 높였다. 서쪽 정면도 높였고 쌍탑 등 6개의 탑을 세웠다. 회중석의 폭이 37.62m, 천장 높이가 33m로 로마네스크 성당으로는 가장 큰 거대한 성당이다. 그러나 기교가 전혀 없이 명쾌하고 기백이 있는 성당으로 완성되었다.

 

 

- 슈파이어 대성당 서측 정면과 남측면. 출처=Wikimedia Commons

 

 

 

- 슈파이어 대성당 동측면. 출처=Wikimedia Commons

 

 

대규모 건물 전체에 ‘난쟁이 갤러리’ 첫 사용

 

우선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자. 서쪽 정면에서는 회색 사암 바탕에 붉은 사암 띠를 두른 높은 문랑(門廊) 벽면이 광장 앞을 가로막는다. 세 개의 문이 있는 층 위에 세 개의 창이 있는 층이 있으며, 다시 그 위에는 좁은 통로를 둔 아케이드가 보인다. 이것을 ‘난쟁이 갤러리(Zwerggalerie, dwarf gallery)’라 한다. 이는 건물 높이를 시각적으로 조절하며 외관을 경쾌하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슈파이어를 비롯한 카이저돔의 특징이기도 하다. 문랑의 중앙에는 8각 교차부 탑이, 그 뒤로는 좌우에 높이 72m의 계단 탑이 있다. 교차부 탑의 상층을 ‘난쟁이 갤러리’가 장식하며, 계단 탑에는 위의 네 층에도 2련(二連) 아치를 두어 훨씬 가볍게 보인다. ‘난쟁이 갤러리’가 대규모 건물 전체에 걸쳐 사용된 것은 이 성당이 처음이다.

 

동쪽 외관은 명쾌한 볼륨으로 구성된 모습이 웅대하게 드러난다. 지하 경당 벽을 기단으로 삼고 벽에 붙은 반원기둥이 높은 아치를 그리며 거대한 반원 제단의 입체를 아주 가볍게 만든다. 그 위로는 ‘난쟁이 갤러리’와 반원뿔 지붕이 반원의 입체를 마무리한다. 그 뒤로는 박공지붕의 삼각형 벽면을 곡면으로 파낸 5개의 아치가 벽의 무게를 덜어내며 수직성을 강조한다. 다시 그 뒤로 교차부 탑, 높은 계단 탑, 크게 돌출한 횡랑이 차례로 배열되어 있다.

 

슈파이어에는 로마네스크를 결정해 준 두 요인이 나타나 있다. 하나는 기둥 사이의 구획(베이, bay)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두꺼운 시각 기둥(피어 pier), 벽에 붙은 기둥, 반원기둥의 두께와 돌출을 조정하며 내부 공간에 표현한 장대한 수직성이다. 이와 함께 1070년대부터 유럽 성당의 중랑에는 원통 볼트가 많이 나타났으나, ‘제2 슈파이어’를 개축하며 얻은 가장 큰 변화는 ‘로마네스크’의 핵심인 교차 볼트로 회중석 위를 덮은 것이었다.

 

‘제1 슈파이어’에서는 회중석이 베이가 12개였는데, ‘제2 슈파이어’에서는 두 베이마다 교차 볼트 하나를 얹었으므로 중랑은 6베이가 되었다. 이것은 대략 정사각형에 가까운 중랑의 1베이에 대하여 측랑의 2베이가 결합하는 시스템인데, 이후의 독일 로마네스크 성당에서 많이 쓰였다. 고딕 대성당에서는 구조적인 이유로 교차 볼트 평면이 직사각형이지만, 슈파이어에서는 정사각형 교차 볼트 때문에 웅대하고 대범한 인상을 준다. 이처럼 슈파이어 성당의 기둥 간격도 넓고 면적도 훨씬 큰 교차 볼트는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졌다.

 

이때 지하 경당도 교차 볼트와 기둥 그리고 벽이 명확히 분절되도록 다시 고쳤는데, 이 분절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발전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다. 이런 분절 방식은 중랑의 벽에도 적용되었다. 그래서 중랑의 좌우 벽면은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 중랑 벽의 변화, 왼쪽-‘제2 슈파이어’, 오른쪽-‘제1 슈파이어’. 출처=Smith Speyer 2016

 

 

교차 볼트로 회중석 위 덮어 수직성 강조

 

힐데스하임의 성 미카엘 성당에서는 수직성이 부족했다. 아케이드 위에 평탄하게 넓은 흰 벽이 있었고 아케이드 열과는 무관하게 창이 뚫렸을 뿐이다. 그러나 ‘제1 슈파이어’에서는 대(大) 아케이드를 받쳐주는 사각형 피어 뒤로 아치와 벽, 그리고 고창층이 아주 뚜렷하게 물러나 있다. 또 다른 높은 아치가 이것들을 에워쌌다. 이렇게 하니 위아래의 벽과 고창이 수직적인 틀 안에 묶이었다. 다만 피어의 폭이 넓어 높은 아치가 둔해 보였다. 이에 가늘고 긴 반원 기둥 모양을 피어에 덧붙였다. 여기에 천장 밑에 있는 벽 아래를 아치 모양으로 만들어, 마치 덧붙인 반원 기둥이 또 다른 아치를 가볍게 받치고 있는 듯이 만들었다. 그 결과 중랑의 측벽에 이전에는 보지 못하던 높은 수직성이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제2 슈파이어’에서는 목조 평천장을 교차 볼트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천장은 더욱 높아지고 베이마다 리듬이 생겼다. 또 교차 볼트 천장과 벽이 만나 생긴 아치 모양은 마치 바닥에서 시작하여 위로 솟아오른 또 다른 아치처럼 보였다. 이 아치는 피어의 반원 기둥이 만든 아치 두 개로 다시 분절되었다. 이렇게 하여 교차 볼트 천장 바로 밑에 벽이 남았고, 그것이 무겁게 보였으므로 그곳에 작은 창을 뚫었다. 쉽지 않은 수직성의 조형이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네스크 성당 내부에 대한 결정적인 변혁이었고, 이 수직성은 그대로 고딕으로 이어졌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9월 3일,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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