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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평신도: 세상 안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평신도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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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6-18 ㅣ No.70

[지금 여기 평신도] 세상 안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평신도 영성

 

 

가정과 일터에서 분주히 하루를 보내는 동안 하느님을 마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잠시 기도하는 순간에도 수많은 잡념이 오가는 현실을 반복하다 보면,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오로지 하느님과 마주하고 싶다는 갈망을 품게 된다. 많은 신자가 피정이나 기도 모임, 영성 관련 책이나 강의에 관심을 두는 이유일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교회 전통에서 완덕을 추구하는 영적 갈망은 늘 있었다. 하느님의 모든 백성은 사랑의 실천과 증거의 삶으로 성덕에 이르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직분을 맡았든 성덕의 소명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각자의 자리와 상황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는 ‘세속의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는 데 집중하는 수도자와 같은 삶’으로 영성을 이해했다.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평신도의 자리와 소명을 새롭게 조명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수도 영성과 다른 고유한 평신도 영성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세상, 평신도 영성의 자리

 

교회 안에 다양한 직분이 있지만, 세례를 받은 모든 이는 거룩해지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 가운데 평신도는 특히 가정과 사회라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신원으로, 그곳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평신도 영성은 특별하게 마련된 시간과 공간에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초대받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세속적’ 성격이 고유하고 독특하며, 평신도의 임무는 자기 소명에 따라 현세의 일을 하며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교회 헌장, 31항 참조).

 

공의회 이전에는 성스러움과 속됨을 이분법적으로 나눠, 기도나 전례 등 영적인 삶은 성스럽고 세속적인 일상의 삶은 거룩하지 않은 것처럼 여겼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교회의 직분에도 고스란히 연결되어 ‘교회 안에서 성사를 집전하거나 축성 생활을 하는 사제와 수도자는 거룩하고, 세속에서 일상을 사는 평신도는 거룩하지 않다.’는 오해를 일으키기도 했다.

 

교회는 믿는 이들의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일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고자 하는 구원의 표징이 되는 성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공의회는 세상을 성화할 소명이 바로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에게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평신도가 일상을 사는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성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이 때문에 평신도가 영성 생활을 이유로 가정을 돌보지 않거나 세상에서 맡은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가르친다(평신도 교령, 4항; 사목 헌장, 43항 참조).

 

 

세상에 대한 신앙 감각과 평신도 영성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거룩함을 추구하는 것이 평신도 영성이라면, 평신도 영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 신학을 전공한 인천교구 송용민 신부는 이렇게 말한다.

 

“신앙 감각은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개별적인 또는 공동체적인 신앙의 능력으로,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살아 있는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며, 이를 공동체 안에서 함께 발견하고 보존하며 증거함으로써 하느님의 거룩한 신비에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영적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표징을 읽고 해석하는 이런 ‘신앙 감각’은 하느님 체험의 중대한 요소이다.”

 

이냐시오 영성에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찾기’라는 표현이 있다. 신앙 감각은 이처럼 우리 일상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전례에 참여하는 것은 모두 이런 신앙 감각을 키우려는 이유이다. 하지만 평신도 영성은 이와 더불어 특별히 우리가 사는 현실에 관한 신앙 감각이 더 요구된다.

 

그리스도교가 형성되던 초기에도 사도들은 결혼과 성 윤리(1코린 6,12-7,40; 에페 5,21-33; 콜로 3,18-25; 1베드 3,1-7 참조), 정치 생활과 시민 생활(로마 13,1-7; 1베드 2,13-17 참조), 돈과 재정(2코린 8-9장 참조) 같은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를 다루며 신자들에게 이런 일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답게 살지를 가르쳤다. 책임감 있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사회 교리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세계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신앙인들이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제시한다.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가톨릭 사회 교리를 배우도록 요청하는 것은 바로 세상에 대한 신앙 감각을 키울 수 있게 초대하는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평신도 영성

 

신앙 감각을 통해 일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평신도 영성은 구체적인 ‘신앙 행위’로 나아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가 현세 질서의 개선을 고유 임무로 받아들여 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시민으로서 책임감을 지니며 모든 일에서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평신도 교령, 7항 참조).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그 풍요성을 드러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실천에서 중요하다고 말한다(사목 헌장, 21항 참조).

 

공의회의 정신으로 한국의 평신도론을 정립하고자 한 양한모 선생은 「신도론」에서 평신도의 신앙 자세는 개인의 영혼만을 구원하려는 신앙의 ‘사사화’(私事化)를 버리고, 세상 안에서 신앙과 생활을 일치시키는 ‘생활화’(生活化)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상의 현실을 버리고 이상으로 도피하거나 내세를 지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야 한다는 말이다.

 

부모가 자녀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로 여기며 소중히 대할 때, 일터에서 만나는 이들을 존중하고 친절히 대할 때, 배고프고 목마른 이웃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줄 때,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할 때, 부당한 현실을 바꾸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이들과 연대할 때 등 한마디로 말해 일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착한 이웃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 평신도의 영성이 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셨다(마태 22,37-40 참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평신도의 실천적 영성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세상으로 변화시킨다. 평신도는 세상 안에서 기쁜 소식과 희망을 전하도록 파견된 선교사다.

 

 

일상에서 시작하는 평신도 영성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를 새롭게 반포하여, 특별히 세상 한가운데 사는 평신도들이 거룩함으로의 부름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초대한다.

 

교황은 이 문헌에서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고, 인내와 사랑으로 경청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같은 작은 일을 통해서도 거룩함이 성장한다고 말한다.

 

이 문헌에서 평신도 영성이 성장하도록 제시한 두 가지 식별 방법이 있다. 바로 경청과 양심 성찰이다. 경청은 주님과 다른 이들,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세상의 현실에 귀 기울이는 것이고, 양심 성찰은 날마다 주님과 참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양심을 돌아보는 것이다.

 

기도하고, 복음을 읽으며, 성체를 모시고, 양심 성찰을 하는 등 우리의 모든 영적 활동은 세상 안에서 더욱 겸손하고, 자비로우며,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일상에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 기쁨 안에서, 평신도는 거룩함으로 나아간다.

 

* 이미영 발비나 - 평신도 신학자로서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가톨릭 평론」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같은 연구소 연구실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6월호, 이미영 발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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