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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재속 3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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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8 ㅣ No.14

재속 3회를 아십니까?

 

 

그리스도교 신자는 누구나 완덕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겠지만 세상 안에서 살면서 특별히 소속 수도회의 정신을 따라 살고자 하는 평신도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재속회, 제3회, 재속3회, 이 세 가지 용어를 혼동하여 쓰는 사람이 많다.

 

재속회(在俗會)는 사제 또는 독신인 평신도들이 세속에 살면서 애덕의 완성을 위해 각 재속회의 회헌에 따라 혼자 또는 공동체와 함께 생활하는 '수도회'를 말한다(교회법 제710조 참조). 재속회의 시초는 17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창설된 '마리아 성심의 자녀회'이다. 비오 12세 교황은 맛교회헌장맜을 발표하면서 이전의 수도생활의 범위를 넓혀 수도회나 사도직회에다 재속회까지 포함할 수 있게 했다.

 

제3회(第三會)는 평신도들이 일상생활에서 해당 수도회의 도움을 받아 그 수도회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완덕을 향해 노력하는 단체이다(교회법 제303조). 이는 소속 수도회의 특성상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평신도뿐 아니라 교구 사제(재속 사제라고도 함)도 입회할 수 있다.

 

제3회 회원의 특성은 재속성에 있다. 현재의 신분을 바꾸지 않고 가정과 직장 안에서 완덕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기도와 정진으로 자신의 영성을 심화시켜 나가고 봉사활동으로 애덕을 실천한다. 특히 이들은 자신들이 소속된 수도회의 제1회의 수도자들에게 영성적인 도움을 받는다.

 

원래 제3회는 탁발수도회에서 정식으로 정결, 가난, 순명 서원을 하는 제1회(남자 수도회)와 제2회(여자 수도회)와 구분하기 위해 또는 순서상 사용되었다. 그러나 수도회가 다양해지면서 일부 수도회에서는 제3회가 평신도 단체가 아닌 수도자들의 단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게 되었다. 그런 수도회를 '수도3회'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이런 혼동을 줄이고자 '재속3회'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재속3회'의 의미는 교회법에 언급된 평신도들의 단체인 '제3회'를 말한다. - 편집부

 

 

또 다른 부르심

 

교회는 2천 년이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으면서도 끊임없는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까닭은 신자들이 세상일을 하면서도 교회일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앙에 대한 갈등과 마음 아픈 일들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반성하고 쇄신하려 힘쓴 것은 아마 하느님의 이끄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삶과 그 말씀으로 모든 인류를 구원으로 초대하셨지만, 올바른 인식과 분별력의 부족, 나약한 믿음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 중심보다는 인간 중심적인 삶을 누리고자 하는 때가 더 많았다. 이기주의와 끝없는 욕망, 현대 과학 문명이 발달할수록 이런 현상은 더 극대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절감한다.

 

가톨릭 신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나름대로 많은 아픔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복음적인 삶에 대한 인식과 열의의 부족, 복음과 삶을 함께 접목시키지 못하는 나약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재속3회가 복음적인 삶에 대한 인식과 열의의 부족을 채우고, 복음과 삶을 함께 접목시키는 데 완전한 답이 되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게 하고 더욱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은 분명하다.

 

교회법 제303조에서는 재속3회 회원의 신분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회원들이 재속에서 어느 수도회의 정신에 동참하여 그 수도회의 상급 지휘 아래 사도적 생활을 하고 그리스도교적 완덕을 향하여 노력하는 단체들을 제3회들이라고 일컫거나 다른 적당한 이름으로 불린다." 교회가 시대적 시행 착오로 갈등과 분열의 여정을 걸을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그 시대에 필요한 성인들을 보내시어 어둠에 가려져가는 복음을 다시 밝게 드러나게 하셨다. 성인들은 여러 형태의 빛으로 신자들을 이끌었다. 여기서 여러 형태의 빛이란 다양한 카리스마를 뜻한다.

 

한 성인의 삶은 세상의 근심과 잘라버릴 수 없는 인간적 고뇌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빛을 던져주었다. 이 신선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퇴색해 있던 마음을 복음의 정신으로, 교만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을 기도와 신심의 정신으로 돌릴 수 있었다.

 

성인들의 삶의 양식은 바로 수도생활 모습으로 구체화되었다. 다양한 수도회에 소속된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인 성인의 삶을 이 시대에 구현하려고 하는 이들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평소에 존경하고 좋아하는 성인을 가슴속에 품고 살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성인에게서 많은 위로와 지혜를 얻는다.

 

하지만 가난하고 억압받고 병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며 정결 / 청빈 / 순명 서원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생활은 수도자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부모 봉양과 자녀들 교육, 먹고 살아야 할 문제나 정치 활동 때문에 기도뿐 아니라 복음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게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영적인 삶보다는 사도직 활동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본당활동을 하다가 다른 사람 때문에 활동이 중단되거나 자기가 맡았던 직책에서 탈락될 경우, 표현하지 못할 허탈감으로 급기야 냉담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재속3회는 바로 충만한 영적 여정을 걷는 봉헌생활이다. 이 여정은 수도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 평신도 역시 복음의 길을 그대로 걸어갔던 성인들의 모범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 나보다 더 어렵고 곤란한 처지에서 복음적 완덕을 향해 나아간 성인들의 생애가 바로 나에게 새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인들의 다양한 카리스마이면서 동시에 평신도들의 다양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카리스마의 발견과 선택, 더 나아가 확신이 어떤 한 성인의 생애를 통해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이 성인의 유산을 그대로 본받아 살아가는 수도회의 영적 지도를 받으면서 풍요로운 복음적 삶의 여정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속3회는 또 다른 부르심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재속3회 회원의 신분은 수도자의 신분과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수도자들이 정결과 청빈과 순명 서원을 하고 독신을 지키면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재속3회 회원은 어디까지나 가정과 직장 안에서 완덕의 길을 가고자 하는 평신도의 신분이다. 결혼했으면 결혼한 대로 그 재속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재속3회의 특성이다. 간혹 다른 이들에게 수도자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물의를 빚은 적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는 수도회가 많이 있고, 그 가운데 재속3회를 가족으로 둔 수도회도 있다. 깊이 있는 영적 여정을 통해 가정생활을 더 풍요롭게, 직장과 일 안에서 기쁘고 보람있게,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랑의 삶을 신자들에게 권한다. 그 봉헌생활을 통해 세상 살맛 나는 기쁨을 누리기 바란다.

 

[경향잡지, 1999년 9월호, 윤석찬 프란치스코(작은 형제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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