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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명작 속 하느님: 허먼 멜빌의 모비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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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5 ㅣ No.230

허연 기자의 명작 속 하느님 (2) 모비딕 - 허먼 멜빌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좋아하는 책이 있다. 다름 아닌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 Dick)이다. 국내에서는 한동안 ‘백경’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던 이 작품은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걸작

‘모비딕’은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기에 그 해석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이 작품 아주 깊숙한 기저에는 매우 많은 성서적 상징이 등장한다. 일단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이 소설은 삶에 염증을 느끼고 신비스러운 고래를 만나기 위해 포경선에 오르는 이스마엘이라는 청년의 회상으로 구성돼 있다. 항구도시 뉴 베드퍼드에 도착한 이스마엘은 여인숙에서 기괴한 문신을 한 남태평양 출신 원주민 작살잡이 퀴퀘크를 만난다. 이스마엘은 문명의 위선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소박함과 위엄을 지닌 이 남자에게서 진한 인간애를 느끼고 그와 함께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한다.

승선하기 전 “바다에 도전하는 자는 영혼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매플 신부의 경고를 비롯해 불길한 징조가 여럿 있었지만 둘은 무시한 채 배에 오른다. 항해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그들은 그 유명한 에이허브 선장을 직접 만나게 된다. 한쪽 다리에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한 에이허브는 오로지 자신으로부터 한쪽 다리를 가져간 거대한 흰고래 모비딕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배에는 스타벅이라는 1등 항해사가 있는데 그는 에이허브와 대립되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들 앞에 경이롭고 신비스러운 괴물 모비딕이 나타난다. 등에는 무수한 작살이 꽂힌 채 욕망과 분노에 사로잡힌 인간들을 조롱하듯 모비딕은 바다의 제왕답게 쉽게 정복되지 않는다. 소설은 모비딕을 이렇게 묘사한다. “오, 세상에서 보기 드문 늙은 고래여. 그대의 집은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힘이 곧 정의인 곳에서 사는 힘센 거인이여. 그대는 끝없는 바다의 왕이로다.”

스타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에이허브와 모비딕의 싸움은 사흘 낮밤 동안 처절하게 지속된다. 첫째 날과 둘째 날 보트 여러 대가 파괴되고 선원들이 죽어갔지만 에이허브 집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 않는 흰고래여. 나는 너에게 달려간다. 나는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겠다. 지옥 한복판에서 너를 찔러 죽이고, 증오를 위해 나의 마지막 입김을 너에게 뱉어주마.”

결국 사흘째 되던 날 에이허브는 마지막 남은 보트를 타고 모비딕에게 작살을 명중시키지만 작살 줄이 목에 감겨 고래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피쿼드호는 침몰하고 소설의 화자인 이스마엘은 바다를 표류하다가 혼자 살아남는다.


성서에서 차용한 주인공들

소설 ‘모비딕’의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은 성서에서 가져온 이름들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선장 에이허브와 처음부터 끝까지 그 광기를 지켜보는 이스마엘은 물론 그들의 최후를 예언하는 예언자 일라이자 등 소설에는 성서적 상징을 지닌 주인공들이 다수 등장한다.

우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스마엘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이스마엘은 히브리인의 시조인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여종인 하갈에게서 낳은 아들이다.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하갈을 통해 대를 잇기로 한 것이다.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신은 들으셨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바람을 신이 들어주었음을 의미하는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적자가 되지 못했다. 하갈이 이스마엘을 낳은 직후 사라도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사라가 낳은 아이가 바로 이삭(Isaac)이다. 이삭은 이스마엘을 제치고 아브라함의 정통 후계자가 된다. 졸지에 후계구도에서 밀린 이스마엘은 하갈과 함께 추방된다.

소설 ‘모비딕’은 “날 이스마엘이라고 불러다오(Call me Ishmael).”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왜 멜빌은 이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했을까. 아마 사회에서 일탈해 포경선에 오르는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은유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장치인 듯하다. 자기가 살던 사회에서 일탈해 광야를 헤매는 성서 속 이스마엘과 도시를 버리고 도망치듯 포경선에 오르는 소설 속 이스마엘은 많이 닮았다.

에이허브(Ahab) 선장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폭군의 이름이다. 구약에는 ‘아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데 ‘에이허브’는 아합의 영어식 발음이다. 구약에서 아합 왕은 악녀와 결혼해 악행을 일삼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뜨렸던 왕이다. 멜빌은 거대한 고래에 집착하는 선장의 모습을 통해 우상숭배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내 보이려고 했던 것 같다.

또한, 소설에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죽을 것을 예언한 남자의 이름은 일라이저(Elijah) 다. 히브리식 발음으로는 엘리야다. 엘리야는 아합(에이허브)에게 박해받았던 구약성서 최고 예언자다. 소설에 구약시대 최고 예언자를 등장시킴으로써 멜빌은 소설의 결말을 미리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예언자의 말대로 소설은 진행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준엄한 경고

등장인물뿐 아니라 소설의 내용에도 성서적 상징은 종종 등장한다. 소설 초반부 이스마엘이 승선하기 전 장면에서 매플 신부의 대사가 나온다.

“더욱이 요나는 하느님께 복종하지 않는 죄를 범한 데다 하느님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온갖 조롱의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배로, 신의 힘이 미치지 않고 인간의 지도자만이 다스리는 나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 대사는 구약 12소예언서 중 하나인 ‘요나서’를 응용한 이야기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요나는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라는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고 타르시스로 도피하다가 풍랑을 만나게 된다. 선원들이 제비뽑기로 신의 노여움을 산 인물을 찾아내 바다에 던지기로 하는데 요나가 그 대상이 된다. 바다에 던져져 고래에게 먹힌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 사흘간 살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니네베로 가서 임무를 완수한다.

소설에서 요나 이야기를 거론한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느님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고 불행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소설 주인공들의 어리석음을 선험적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 ‘모비딕’은 방랑자 이스마엘과 우상숭배자 아합을 통해 절대자를 대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과 행태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 준다. 끊임없는 도전과 반역, 그리고 심판과 파멸, 그럼에도 다시 반역에 나서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어떤 문학 이론서에 보면 고래 모비딕을 악(惡)의 상징으로 놓고 이 소설이 악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냈다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고래 모비딕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동을 하고 먹이를 구하고 자신을 해치려고 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그들과 맞서 싸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섭리를 따르는 존재다. 고래 모비딕은 하느님이 정해준 섭리를 상징하는 존재이지 악의 상장은 아니다. 멜빌은 고래라는 상징물을 가지고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준엄한 문학적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영성의 가치 중시한 비운의 작가 허먼 멜빌

살아생전 빛을 보지 못한 작가들은 많다. 하지만 허먼 멜빌만큼 철저하게 어둠 속에 있었던 작가는 드물다. 멜빌의 대표작 ‘모비딕’은 출간 이후 오랫동안 서점의 소설 매장이 아닌 수산업 코너에 꽂혀 있어야 했다. 서점 직원들이 멜빌이라는 작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1891년 멜빌이 사망했을 당시 부고 기사에 ‘문단 활동을 했던 한 시민’이라고만 되어 있었을 정도로 멜빌은 처절한 무명이었다. 멜빌이 빛을 본 건 그가 사망한 지 30년쯤 지나 레이먼드 위버라는 저명한 평론가가 ‘멜빌 연구’라는 평론집을 출간하면서부터였다.

멜빌이 영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보적이다. 소설 한 편 안에 신과 인간의 관계, 상징주의와 자연주의, 진지한 철학적 탐구와 모험소설의 흥미를 모두 쓸어 담은 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멜빌만의 가치를 담고 있다.

13세 때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잡역부로 일하다 22세 때 포경선 선원이 된 멜빌이라는 이름이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건 ‘모비딕’이라는 불후의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모비딕’은 대립되는 갈등 요소들을 절묘하게 배치해 영성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뛰어난 신앙문학의 보물이다.

[평신도, 제44호(2014년 여름), 허연 바오로(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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