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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 - 누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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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20 ㅣ No.1299

[영화칼럼]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 - 2015년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


누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들려 하는가?

 

 

제목만 보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잔인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물이 아닙니다. 동화를 섬뜩하게 변주한 스릴러물도 아닙니다. ‘미디어, 그 위험하고 무책임한 선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입니다.

 

이야기는 살인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백설공주’란 브랜드를 붙인 비누를 만드는 화장품 회사의 여직원이 살해당합니다. 범인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디지털 세상만큼이나 사건은 빨리 왔다 갑니다. 미디어도 사람들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한 사람, TV 추적프로그램의 조연출 아카호시 유지(아야노 고 분)만이 이 사건에 매달립니다. 그는 희생자의 동료 여직원인 시로노 미키(이노우에 마오 분)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불확실한 추측과 자신의 상상만 있을 뿐, 확실한 근거는 하나도 없지만 유명해지고 싶은 그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편집으로 방송을 합니다. 동시에 트위터 광(狂)인 그는 취재 과정까지 실시간으로 SNS에 올립니다.

 

두 곳 모두 신이 납니다. TV에서는 수사와 심리 전문가를 자처하는 미디어꾼들이 추측과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프로듀서는 시청률을 위해 그들에게 엉터리 분석과 진단까지 강요합니다. 멋대로의 상상과 억측, 확증 편향에 빠진 트위터리안들은 익명으로 마구 욕을 퍼부으면서 마녀사냥을 시작하고, 신상털이로 사냥감을 발가벗깁니다. 아카호시 유지는 “나 혼자 사건의 핵심에 다가갔다.”고 자랑하고, 트위터리안들은 ‘이런 경우 범인’, ‘치정’이란 댓글로 호응합니다.

 

진실은 숨어있던 시로노 미키의 ‘당신의 방송은 모두 거짓말’이라는 편지와 그녀의 어릴 적 친구의 증언으로 밝혀집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실 확인이나 죄의식 없는 방송과 SNS의 비양심, 윤리 의식 부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사적 자유와 공적 책임을 혼동하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조롱합니다.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간 인격 살인을 저지르고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통해 관계없는 분을 용의자처럼 다룬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는 한마디로 끝내버리는 방송. 신상털이를 하고 온갖 모욕을 퍼부어놓고는 그 책임을 방송에 떠넘기면서 이번에는 아카호시 유지를 사냥감으로 삼는 잔인하고 뻔뻔한 짓을 서슴지 않는 SNS.

 

의도된 것이냐 아니냐,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익숙하고 과몰입하는 세대의 죄의식 없는 행동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새로운 미디어들로 가득하고, 엉터리이건 말건 SNS까지도 ‘미디어’라고 부르고 있으며, 누구나 그 미디어의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이렇게 누구나 미디어를 자유롭고 다양하게 이용하고, 참여할 수 있는 세상일수록 언론인을 포함한 미디어 종사자들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는 것 아닐까요. 8월 15일~18일 서울에서 열린 시그니스(SIGNIS,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 세계총회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여러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워 건전한 비판적 감각을 개발하고 정의를 위한 활동, 사회적 화합,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신 것도 이런 이유일 것입니다.

 

[2022년 8월 21일(다해) 연중 제21주일 서울주보 4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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