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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영화 브로커 - 태어남이 축복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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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04 ㅣ No.1301

[영화칼럼] 영화 ‘브로커’ - 2022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태어남이 ‘축복’이라면

 

 

어느 교회 복지 시설에 있는 ‘베이비 박스’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불가피하게 키울 수 없는 장애로 태어난 아기와 미혼모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아래 손잡이를 열고 놓아주세요.’ 공식 기록으로 이 별난 상자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198년입니다. 이탈리아의 테베레강에서 익사한 영아의 시신이 계속 발견되자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원치 않은 임신으로 낳은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안한 것입니다. 그것이 9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있습니다. 여전히 출생의 흔적도 없이 버려져 목숨을 잃는 아기들이 있고,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주시리라.”(시편 27,10)는 믿음으로 그 생명을 지켜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브로커>에서 베이비 박스가 있는 복지 시설에서 일하는 동수(강동원 분)는 아기를 몰래 버린 소영(아이유 분)에게 “어떻게 버릴 생각을 하지, 버릴 거면 낳지를 말든가.”라고 비난합니다. 그런 동수에게 소영은 “낳아서 버린 것보다 낳기 전에 죽이면 죄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져?”라고 쏘아붙입니다.

 

그 반대일 것입니다. 지난 칼럼의 영화 <기브뎀>에서 보았듯이 아예 한 생명의 존재를 넘어 다른 생명의 미래까지 없애버리는 낙태야말로 ‘원치 않은’, ‘불가피하게’란 것이 이유가 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물론 낳아서 베이비 박스에 버리면 그만인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양육권 포기 각서가 없으면 정식 입양이 불가능한 제도 때문에 아이들은 엄마가 언젠가는 데리러 온다는 믿음과 기적을 꿈꾸며 보육원에서 고아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온 동수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 분)이 베이비 박스에 놓아둔 소영의 아기를 빼돌려 돈을 받고 다른 가정에 팔려고 합니다. 아이에게는 ‘고아보다 따뜻한 가정이 낫다.’는 말로 불법 인신매매를 합리화합니다. 아기를 다시 데려가려고 온 소영도 처음에는 그들을 비난하지만 ‘원치 않은’, ‘키울 수 없는’ 아이의 양부모 찾아주기에 동의합니다. 그렇게 네 명, 나중에 보육원에 있던 여덟 살 고아 해진까지 다섯 명이 떠나는 울퉁불퉁한 여정에서 그들은 서로의 삶의 흔적을 확인하고, 상처와 결핍을 마주하면서 ‘어색하고 이상한 가족’이 되어갑니다. 보육원 출신인 동수는 소영에게서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봅니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면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이사 49,15)

 

처음에는 돈 욕심으로 연기를 한 상현도 자신의 가족에게서는 사라져버린 따스한 감정들을 만나면서 진정으로 아기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길을 찾아주려 합니다. 이런 모습들에서 그동안 자포자기와 자기학대로 살아온 소영은 아기는 물론 상현, 동수, 해진의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소리칩니다. 그 감사의 기도는 해진이가 대신 소리쳐준 소영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브로커>는 그들의 미래를 열어두면서 태어남의 축복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지키면서 믿음과 나눔, 새로운 변화와 선택에 의해 자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022년 9월 4일(다해) 연중 제23주일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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