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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칼럼: 영화 벨파스트 - 지혜롭게 잘 나이 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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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19 ㅣ No.1302

[영화칼럼] 영화 ‘벨파스트’ - 2021년 감독 케네스 브래나


지혜롭게 잘 나이 들어야 합니다

 

 

벨파스트는 북아일랜드의 수도(首都)입니다. ‘수도’라고 해야 인구 29만 명(현재)의 작은 항구도시로 오랜 세월 인종, 종교, 독립의 갈등을 겪은 곳이기도 합니다. 영화 <벨파스트>는 그 아픈 역사가 시작된 1969년 그곳에 살았던 아홉 살 소년과 가족이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입니다. 소년의 이름은 버디(주드 힐 분).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케네스 브래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50년 전 벨파스트의 동네 풍경이라고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저녁 먹어.”라고 소리칠 때까지 공놀이와 전쟁놀이를 하며 골목을 뛰어다니고, 이웃들은 옆집에 접시가 몇 개 있는지까지 알고 지냅니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개신교인들이 돌과 화염병으로 천주교인들을 공격합니다. 골목에 바리게이트를 치고는 통행을 제한하고, 형제처럼 지내던 이웃이 하루아침에 ‘적’이 됩니다.

 

<벨파스트>는 그런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변화에도 아랑곳없이 동심을 잃지 않고 꿈과 사랑을 키워가는 소년을 지켜봅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애쓰는 소년의 아버지의 고민과 아픔, 정겹고 익숙한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이사하기를 주저하는 엄마의 모습도 그려냅니다. 물론 특별한 풍경은 아닙니다. 그 시절의 ‘나’와 ‘나의 아버지, 어머니’도 그랬습니다. 그보다 <벨파스트>를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은 버디의 할아버지(키어런 하인즈 분)와 할머니(주디 덴치 분)입니다. 부드러운 대화로 손자에게 사랑과 용기, 희망과 미래를 심어줍니다. 같은 반 여자아이인 캐서린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손자에게 인내심, 평화의 기도, 사랑의 용기와 정성을 일깨워줍니다. 영화에 빠진 손자와 같이 극장에도 가고 영화 얘기도 나눕니다.

 

억지로 가르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런던으로 가서 살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손자에게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네가 누군지는 나만 알면 돼. 넌 버디야. 벨파스트 출신이고. 온 가족이 널 위하지. 네가 어딜 가든 무엇이 되든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달나라로 가거라. 런던은 인간에게 작은 걸음일 뿐이다.”

 

버디의 아버지라고 다르겠습니까. 어느새 편 가르기에 빠진 버디에게 “우리 동네엔 누구 편 같은 건 없어, 전에도 없었고.”라고 말합니다. 버디가 종교가 달라 캐서린과는 미래가 없을 것 같다고 하자 “친절하고 올바른 아이 둘이 서로 존중한다면, 저 아이와 가족 모두 언제든 우리 집에 와도 좋다.”고 허락합니다.

 

그들이 거창한 삶을 산 것도, 대단한 지식이나 철학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할아버지는 석탄 광부로 살았고, 할머니는 가난으로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나보다 남을 더 많이’ 생각했고, 자신의 삶과 가족과 이웃의 평화를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그 시간이 비바람과 햇빛으로 숙성되어 삶의 지혜가 된 것입니다.

 

“나이를 잘 먹은 노인은 훌륭한 포도주와 같습니다. 지혜롭게 잘 나이 들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입니다. 쉽지 않지만 그래야만 합니다. 노인이 더 이상 주인공이 될 수는 없지만, 현재와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줄 수 있으니까요. 교황께서는 이것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사명이며, 진실하고 참된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2022년 9월 18일(다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서울주보 6면, 이대현 요나(국민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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