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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아! 어쩌나: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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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8 ㅣ No.625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203)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상)

 

 

Q. 요즘 드라마를 보면 노상 사랑 타령입니다. 볼 때마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고, 왜 저렇게 사랑에 목을 맬까 하고 한심한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게 ‘사랑 사랑’하다 결혼해서는 이혼 타령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머리가 빈 것들’이라고 느낄 정도로 짜증이 나고요. 그런데 성당에 가도 신자들이 사랑 타령입니다. 참 지겹습니다. 뒷전에서 서로 험담하고 미워하면서 앞에서는 사랑 타령을 하는 꼴들을 볼 때마다 역겹다는 마음이 들어 성당에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드네요.

 

또 신부님들이 강론 때마다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하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도 않습니다. 사랑이란 것이 그런 힘이 있다는 생각이 안 들고 사랑 타령은 무기력한 사람들, 회피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만든 가짜 감정이란 생각이 드네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

 

 

A. 형제님이 가진 생각은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 한꺼번에 답을 줄 수는 없는 내용입니다. 하나씩 풀어가지요. 우선 드라마에서 사랑 타령을 하며 사랑이란 감정에 목을 매는 등장인물들은 대개 심리적으로 건강치 못한 사람들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은 대개 ‘분리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의 특징이지요. 부모가 자기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으로 사는 아이들은 찰떡처럼 부모 옆을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른이 돼서는 상대방에게 달라붙어 불안감을 달래려고 합니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사랑 타령을 하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은 편안함인데, 만약 그런 사랑이 아니고 목매고 매달리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병적 집착일 가능성이 높으니 형제님이 보기에 지겨울 만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왜 내가 드라마의 사랑 타령을 보면서 지겨워하는가 하는 자기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 보면 되는 드라마를 보면서 ‘저것들은 노상 저 모양이야’ 하고 지겨워하고 화를 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형제님은 그런 것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본인의 감정은 들여다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개 다른 사람이 죽네사네하는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감정을 갖는 것은 자신만의 트라우마, 마음의 상처나 병적 콤플렉스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심보라고나 할까요. 내가 해보지 못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그런 식으로 없애려 하는 것인데, 바람직하지 못한 해소 방법이지요. 여자 친구가 생긴다면, 그리고 지금 연애하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하기가 어렵지요. 드라마를 보지 말든가, 그 시간에 다른 여러 가지 생산적 일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혼을 사랑 타령과 결부시키는 해석 방법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한 마디로 무지막지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혼은 단순히 사랑이 식어서 생기는 문제라는 생각은 적절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이혼은 상호 간 복잡미묘한 심리적 갈등이 오랫동안 첨예하게 부딪치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싸잡아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성당에서 신자들 간에 생기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은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마음의 병원이지, 건강하고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형제님 논리대로라면 ‘왜 병원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아’ 하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끔 형제님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당 사람들이나 바깥사람들이나 똑같아’ ‘아니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아’ 하는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일명 ‘종교 무지렁이’라고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대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들인데, 사람에 대한 실망감과 좌절감 때문에 종교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됐건 형제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본인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거나 풀 수 없는 복잡한 구조로 돼 있는데, 형제님은 단순한 논리로 칼질하고 있으니 수술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려잡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생각이 짧고 얄팍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들은 선동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을 일시적으로 혹하게 할 수는 있는데 시간이 가면서 내적 빈약함이 드러나 결국 소외를 당합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자기 감정을 잘 들여다보고, 삼류 드라마 보면서 자신이 대단한 심리학자인 양 하지 말고, 심리학 관련 책을 읽으며 자기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나이 든 이들 중에 동네에서는 잘난 척, 아는 척 하는데, 밖에서는 아주 기가 죽어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형제님도 지금 공부하고 깊이 생각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 ‘주책바가지’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으니 자기 반성 잘 하시고 인생길 잘 걷기를 바랍니다.

 

남이 가는 길 보지 마세요. 잘못하면 ‘너나 잘해’라고 욕을 먹습니다.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은 다음 기회에 해드리지요. [평화신문, 2013년 6월 2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204) 사랑 타령이 지겨워요 (하)

 

 

Q. 신부님들이 강론할 때마다 사랑 타령을 하는데, 과연 사랑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사랑을 외치는 사람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또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무기력해 보입니다. 힘이 없어 사랑이란 도피처를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A.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가진 존재여서 몸의 음식 이상으로 마음의 음식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심리적 음식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고,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합니다. 이처럼 사랑은 종교적 계명 차원이 아닌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심리적 영양소입니다.

 

돌아가신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 어린이 보호시설에 들렀다고 합니다.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적대국 사이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늘 외침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아주 슬픈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전쟁고아가 많습니다. 이곳의 어린이 시설을 방문한 수녀님은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커야 할 아이들이 성장이 멈춘 상태로 있는 것을 목격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성장을 멈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와 어머니 사이에 주고받아야 할 사랑이 없어 그저 시간표대로 애정없이 주어지는 음식을 먹고 자란 것이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즉,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은 뇌하수체 분비선에서 성장호르몬을 생산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람 육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정신적 성장에도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 애착 관계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리적 성숙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발달심리학은 아이는 부모와 애착 관계를 통해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긍정적이고 일관된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현실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고 합니다. 사랑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이웃 사랑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사랑을 받아봐야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돼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랑도 일종의 학습을 통해 얻는 것인데, 그런 사랑의 학습 과정이 없는 아이들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기에 어른이 돼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어렵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가끔 ‘나를 왜 사랑해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대사들이 있습니다. 대개 이런 대사들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르는 사랑 결핍증 환자들이 주로 말하는 것들입니다. 소위 ‘사랑에 걸신들린 상태’에서 하는 말이지요. 배가 고프니 밥 달라는 말과 같은 것인데, 내가 배고파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외치는 것이 사랑타령입니다. 이런 사랑은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감정으로 맺어진 커플은 오래가지 못하고, 서로 질리고 싫증나서 헤어지기 일쑤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어린 시절 부모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학습 행위는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하기에 우리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사랑타령을 하는 것입니다.

 

토끼는 관상동맥 체계가 사람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 토끼를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동맥경화에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사람 역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관심 받으면, 마음과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수많은 약을 먹고 또 육체적 병에 걸리지 않으려고 온갖 식단을 짜서 몸의 건강을 지키는 데 온 힘을 다합니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더 많은 질병이 생기고 더 많은 사람이 병으로 죽어가는 것은 약이 모자란 것도, 음식 때문도 아닙니다. 마음의 외로움이 깊어 가면서 병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홀로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돈을 주고 외로움을 더는 방법들을 찾는데, 문제는 비용을 내고 주고받는 관계가 사랑을 주고받는 인간적 관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들은 상생하기 위해 그리고 자기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주님 가르침을 따라 서로 자기 몸처럼은 아닐지라도 챙겨주고 챙김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히 성당에 가는 사람들만의 삶이 아니라 나의 건강한 생활을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성경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루카 10,27)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생존방법입니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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