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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성사] 성체신심에 대한 전례사적 고찰과 현대적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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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43

성체 신심에 대한 전례사적 고찰과 현대적 조망

 

 

1. 들어가는 말

 

2000년이라는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한 지도 어느덧 수개월이 지났다. 교회는 새 천년의 시작을 대희년으로 선포하였고 이를 지난 수년간 준비하여 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교회는 이 대희년의 뜻을 "나눔의 축제"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1) 사실 나눔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선성(善性)을 계시를 통하여 나누어 주시는 과정이 구세사이며 이러한 나눔은 마침내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를 통해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그리스도를 통한 결정적 계시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체의 신비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유효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나눔은 성체의 신비 안에서 영속화되며 완성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 대희년의 중심에서 로마 세계 성체 대회를 개최(2000년 6월 18-25일)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세계 성체 대회를 눈앞에 두고 성체의 의미에 대한 이해의 틀을 넓혀 가기 위하여 성체 신심에 대한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살펴보겠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한국 교회 성체 신심의 현실을 조망해 보며 성체 신심의 방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논해 보고자 한다.

 

 

2. 성체 공경에 대한 전례사적 고찰

 

성체에 대한 흠숭과 존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표현되었다. 성찬례에 참석한 신자들은 성체를 집으로 모셔 가기도 했고 또 노자 성체를 위해 정성껏 보관하기도 하였다.2)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성찬례 밖으로 성체를 모셔 갈 때 무릎을 꿇거나 부복을 하였는데 이러한 공경의 형식은 오늘날 서방 전례뿐만 아니라 비잔틴 전례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3) 그러나 신자들의 조배를 위해 성체를 일정한 장소에 현시하거나 성체께 특별한 예식을 올리는 일은 14세기 이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초대 교회 당시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각 가정 안에서 성체를 보관하여 사용하기도 하였고 또 성당 안에서도 성체는 노자 성체를 위해서 준비된 눈에 띄지 않는 견고한 장소에 따로 보관되었다.4) 초대 교회 건물은 신자들이 일정한 시간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단순한 용도로 이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로 신자들이 자유로운 시간에 기도하러 오는 장소가 되었고 특히 수도원의 부흥과 더불어 성당은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중세 이전에는 성당의 중심은 제대였고 감실은 성체 보존을 위한 단순한 장소로 여겨졌다.

 

이후 중세에 이르러 교회 내에서 성체 신심은 매우 급속한 속도로 번져 나가기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첫째는 전례가 쇠퇴함으로써 신자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여러 가지 신심이 널리 퍼져 나가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체 신심이다. 서방 교회가 라틴어 사용을 고집함으로써 라틴어로 거행되는 전례를 대다수의 신자들은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5) 결국 이 신자들이 자신들의 종교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전례 이외의 신심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는데 이것이 성체 신심, 성모 신심, 성인 유해 공경 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성체 신심은 10세기 이후에 서방 교회 고유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며 널리 확산되게 된다.6) 성체 신심의 확산에 기여한 두 번째 요인은 성체 안의 그리스도 현존에 대한 논쟁이었다. 11세기 이후 성체 안의 그리스도 현존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하여 교회 안에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7) 이들에 대한 반발로 성체 신심은 더욱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신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체를 특별히 공경하여야 할 열의를 마음에 심어 주었고 그래서 성체는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로 집전하는 미사에서보다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체의 현시와 그를 통한 개인적인 묵상 등 미사 밖의 신심 행사에서 더욱 큰 흠숭과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8)

 

이렇게 성체는 보이지 않는 중개자 그리스도의 볼 수 있는 표징이 되었고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키는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환자들을 위해 성체를 보관하던 제의방 안에 자리했던 간단한 형태의 감실이 9세기 말엽부터 성당 제단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9) 이렇게 성체 신심이 점차 발전하면서 11세기 말에 클뤼니 수도원 등에서는 감실 앞에서 절을 하는 관습이 생겨났고 더 나아가 감실을 장식하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하는 등불을 감실 곁에 켜 두기 시작하였다.10)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체 신심이 확장되면서 12세기경에는 성체 공경을 위한 고유 예절이 생겨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성체 공경 신심이 중세 중기를 지나 더욱 발달함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감실이 만들어지고 중앙 제대 위에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노출되었기 때문에 감실과 성체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는 감실을 잠글 수 있는 장치를 하라고 명하기에 이른다.11) 이러한 감실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을 거쳐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성당 제단 앞에 탑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감실을 모셨으며 금속 재료와 유리를 함께 사용하여 성체가 보이게끔 제작되었다.12)

 

성목요일에는 제대 위에 모셔져 있던 성체를 다음날까지 밤샘 기도를 하기 위한 방으로 옮겨 모시는 의식이 있었는데 11세기 말부터 이러한 의식은 매우 장중하게 거행되었고 이것이 예식화한 성체 거동의 첫 번째 형태로 보인다. 중세 중기에 이르러 성체가 그리스도 현존의 가장 확실한 표징으로 널리 경배되면서 팔마 주일(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도 성체를 모시고 행렬을 하는 예절을 거행하였다.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가 전 교회에 성체 축일(Corpos Domini)을 지낼 것을 회칙 Transiturus de hoc mundo를 통하여 명하였고 이 성체 축일은 성체 신심 고양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14세기 초반부터 독일 쾰른 지방에서 시작된 성체 축일의 새로운 형태의 성체 행렬은 곧 전 독일과 프랑스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 행렬은 신자들에게 성체를 보여 주기 위한 성체 보관함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성광(Ostensorium)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체 축일의 성체 거동의 집전은 더욱 장려되어 14세기 말에는 독일의 여러 지방에서 대축일을 장엄하게 지내기 위한 예절로 큰 축일마다 성체 거동이 집전되게 되었다.13) 이후 중세와 종교 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성체 거동은 신자들이 함께 행렬을 이루며 참여하는 신심 행사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거리를 지나서(per vias) 시가지와 마을을 통과함으로써 성체의 신비에 대한 경배를 공적으로 선포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성체의 본질적인 의미, 곧 인간을 위해 쪼개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이 약화되고 맹목적인 경배의 대상으로 성체가 잘못 이해될 소지가 상존하고 있었다.14) 이 시대에 나타난 성체에 대한 다양한 신심 행사 중에는 역시 성체 축일(Corpos Domini)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독일 지방에서는 성체 거동을 한 후 성체를 현시해 놓고 성무일도를 드렸으며 미사까지 봉헌하기도 하였다. 1372년 독일의 브란덴부르크 주교는 서방 교회의 6대 축일(성탄, 부활, 성령 강림, 성체 축일, 성전 봉헌 축일, 모든 성인의 날)에 위와 같은 성체 공경을 명하였다.15) 또한 성녀 도로테아의 삶에 관한 1394년의 기록을 보면 매일 아침 성당에 가서 성광에 모셔져 있는 성체를 바라보며 기도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아 이러한 성체 현시의 관습은 연중 다른 날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16)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지방에서는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계셨던 시간을 상징하여 40시간의 성체 조배가 유행하였고 이러한 성체 현시와 조배는 16세기에 이르러 성체 강복으로 끝을 맺게 되었는데 1600년의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예식서 Ceremoniale episcoporum은 성체 축일의 성체 거동 후에 Tantum ergo를 부르고 천상 양식(Panem de caelo) 후렴 뒤에 강복 기도문(Deus qui nobis)을 바치며 이어서 성광을 들어 강복을 하는 전통 형식이 확정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17)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종교 개혁자들이 성체의 실체 변화에 반대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성체 신심은 한층 강화되었고 그리스도 현존의 상징이 되는 감실은 더욱 화려하게 장중하게 치장되었으며 성당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감실이 세워지게 되었다. 성 가롤로 보로메오(+1584) 주교 이래 성체 신심의 중심지였고 반 프로테스탄트 운동이 강했던 이탈리아 밀라노의 경우 교구 내 성당들이 돌아가면서 한 시간씩 성체를 현시하기도 하였다.18) 이후 바로크 시대를 중심으로 성체 신심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체 공경이 활발하게 펼쳐졌고 이와 같은 성체 신심은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이러한 성체 신심의 지나친 발전은 오히려 영성체를 소홀히 하고 미사의 공동체성과 미사 안에서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제사에 관한 신비 신앙을 저하시키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지나치게 남용되는 듯한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에 대한 우려로 영성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가르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러한 글들은 한결같이 잦은 영성체를 강조하고 있다.19)

 

그럼에도 계속하여 성체 조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851년 교황 비오 9세는 '지속적인 성체 조배 운동'을 추천하였고 이 운동은 유럽과 영국, 캐나다, 미국 등지로 널리 확산된다. 이러한 성체 신심 운동은 20세기 전례 운동을 통해서 다른 신심 행위들과 함께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토양 아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회는 이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게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이었던 1965년에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신앙의 신비]를 통해서 성체 조배의 중요성에 대하여 역설한다.20)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 공경과 같은 신심 행사가 전례와 조화를 이루고 신자들을 전례로 인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고(전례헌장, 13항) 성체 신심에 관한 예부성성(현재 경신성사성)의 Eucharisticum Mysterium이 반포되었다.21) 이 훈령의 제3부에서는 성체 신심의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반복적으로 미사가 거행되는 성당에서는 적당한 숫자의 신자들이 참석할 수 있다면 1년에 한 번 장엄하게 성체 공경을 위한 현시를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63항). 또한 성체 공경과 성체 성사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체 신심을 위한 여러 가지 다른 지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성체 성사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성체 현시 중의 미사 집전을 금지하고 있다(61항). 이 훈령의 내용에 맞추어 1973년에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가 출간되는데 이 예식서는 전례사에서 나타난 성체 신심의 여러 줄기들을 통합하여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예식서는 우선 총지침(Praenotanda)에서 미사 없는 성체 신심과 미사 성제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는 생명의 빵이시며 파스카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일치가 미사 성제를 통해 이루어지므로(1-4항) 성체 신심이 영성체를 통해 완결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13-15항). 이 예식서는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분배 예식뿐만 아니라 성체 현시와 성체 강복, 성체 행렬, 성체 대회 등 미사 밖에서의 성체 공경에 관한 예절을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성체 공경의 중요성과 성체 보존 및 현시의 규정들은 이후 1980년에 반포된 경신성사성의 Inaestimabile donum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었다.22) 여기서도 이전의 훈령이나 예식서의 지침처럼 성체 신심과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성체 신심 예식서의 규정 준수를 상기시키면서 성체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사와 미사 밖의 성체 공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목자들이 성체에 대한 올바른 신심을 가지고 신자들을 이끌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교회와 세상이 성체 조배를 필요로 함을 역설한다.23) 그리고 또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성목요일 모든 사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회 안에서 성체 조배가 계속될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쏟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24)

 

 

3. 성체 공경에 대한 현실과 전망

 

최근 들어 서방 교회 전체 지역에서 성체 성사의 거행은 매우 강조되었으나 미사 밖에서 성체 신심의 거행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개정된 미사 경본과 성체 신심 예식서에서 쉽게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예식서들은 한결같이 성체성사가 모든 교회 생활의 중심이 되며 그 본질은 단순한 성체 신심 예식의 참여가 아니라 영성체(Communio)를 통한 하느님 신비에 참여(Pascha)하는 데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25) 우리가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듯이 중세 이래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신심은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었다. 전례 언어에 대한 몰이해와 그에 따른 신심의 고갈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신 신심 운동(Devotio moderna)에 따라 9세기경부터 신심 생활의 중심 자리를 성체 공경, 성인 공경, 유해 공경, 마리아 신심에 넘겨 주었고 11-13세기에 성체의 그리스도 현존성에 대한 논란으로 성체 공경은 더욱 널리 확산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져 16세기 이후에는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의 성체의 실체 변화에 대한 거부로 가톨릭 교회 안에 성체 공경은 더욱 확산되어 갔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예식서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자리잡기 이전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성체 신심 행사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대략 1980년경을 고비로 성체 거동이나 성체 대회의 거행 횟수는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여 현재 한국 천주교회에서 거행되고 있는 성체 신심을 살펴보고 전례사적인 측면에서 더욱 바람직하게 평가될 수 있는 성체 신심의 미래적 전망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한국 교회가 현재 집전하고 있는 성체 신심의 유형은 다음의 4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1) 특별한 성체 신심 행사

 

이 유형의 성체 신심은 각 교구나 본당에서 행하는 특별한 행사를 말한다. 예를 들어 1984년 행했던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행사 또는 각 교구의 교구 설정 기념 성체 대회, 또 본당별로 특별히 기획된 성체 신심 행사가 그것이다. 이러한 행사들은 어떤 특정한 시점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거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성체 신심은 전례사적인 관점에서 몇 가지 주의하며 거행되어야 할 것이다. 전례사를 돌아볼 때 이러한 유형의 성체 신심은 성체에 대한 오해를 갖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음이 분명하다. 어떤 특별한 성체 신심 행사에서 행해지는 성체 공경이 일상의 미사에서 행하는 영성체보다 더 특별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체 신비의 핵심은 성체와 합일함으로써 하느님의 친교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성체 신심 행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성체를 영하는 것이다. 중세 시대에 다양하게 발전된 특별한 성체 신심의 확산은 성체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영성체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을 확대시켜 많은 신자들이 영성체를 회피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행사는 어떤 특별한 일을 공동으로 경축하거나 기념할 때 성체 안에서 친교를 누림으로써 그 경축과 기념이 성체의 신비와 더욱 가까운 곳에 있음을 선포하는 차원에서 집전되어야 할 것이다.

 

2) 전례 주년에 따른 성체 공경

 

전례 주년에 따른 성체 공경은 주로 성목요일의 수난 감실(현양 제대)과 성체 성혈 대축일을 중심으로 거행되는 전례 주년의 성체 신심을 의미한다. 성목요일의 성체 신심은 최후의 만찬 기념 미사와 맥을 같이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성목요일은 초대 교회 때부터 사순절 단식을 마감하며, 공개적으로 추방되었던 죄인들을 다시 교회와 화해시키는 중요한 날이었다. 이러한 성목요일 전승은 곧 화해성사를 집전하고 성유를 축성하는 정오 예절과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며 세족례를 거행하는 만찬 미사로 구분되게 된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오면서부터 만찬 미사 후에 성체를 수난 감실에 옮겨 모시고 수난 감실 앞에서 밤샘 기도를 드리는 전통이 생겨났다. 이러한 성체 신심은 13세기에 들어서서 더욱 발전하는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1247년 벨기에 리에즈의 몽꼬르니용의 아우구스티노 수녀회의 율리아나라는 수도자의 간청으로 처음 성체 축일(Corpos Domini) 미사가 집전되었다고 한다.26) 이것이 우르바노 4세 교황에 의해서 로마 교회 내로 퍼지게 된 것이다.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성체 신심을 바탕으로 하여 이 성체 성혈 대축일에는 다양한 성체 공경 행사가 개최되었는데 많은 성체 신심 예절들이 이 축일의 전례에서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전례 주년에 따른 성체 공경은 매우 중요한 전례적 의미를 담고 있다. 성자 그리스도와 관련된 다른 축일들과 마찬가지로 성자께 향한 특별한 신심을 기억하는 날들이 성목요일과 성체 성혈 대축일이기 때문이다. 성목요일은 특히 성체성사가 제정된 날로 성체성사의 신비를 직접 묵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날은 수난 감실을 화려하게 잘 꾸미고 많은 신자들이 참여하여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다. 또한 성체 성혈 대축일은 그날의 부속가가 확인해 주듯이 성체가 전하는 사랑과 희생의 뜻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는 날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이날을 기점으로 어린이들의 첫영성체가 거행되기도 하였다. 이 전례 주년 안에 자리잡은 두 성체 공경 축일은 정성껏 보존되고 거행되어야 할 것이다.

 

3) 주기적인 성체 공경

 

주기적인 성체 공경은 각 본당에서나 수도원에서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성체 강복이나 성시간 등을 의미한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많은 본당에서 주기적으로 성체 강복과 성시간을 행하고 있다.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는 이 주기적인 성체 공경의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이 예식서의 제3장에는 성체 현시와 성체 강복, 성체 행렬, 성체 대회 등 미사 밖에서의 성체 공경에 관한 예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예식서에 따르면 우선 성체 강복은 단순히 강복 그 자체만을 위해서 거행해서는 안 되며 성체 현시와 조배,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바치며 잠잠한 묵상을 계속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89항)라고 규정한다. 또한 성체의 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이기에 성체 성사의 의미를 흐리게 할 지나친 장식은 하지 않을 것(82항)을 권고하는데, 성체는 성광이나 성합을 이용하여 현시할 수 있으며 장식으로는 초(4-6개)를 켜 두며 향을 사용할 수 있다(85항). 이와 같은 성체 조배와 함께 성체 강복이 거행되는데 이 때 "신자들의 보다 깊은 기도를 도와 주기 위해 성경 독서와 함께 성체 신비를 더 잘 묵상할 수 있도록 해설이나 짧은 훈시를 겸할 것"(95항)을 권고한다. 그리고 성체 현시가 길어질 때 성무일도는 바칠 수 있다(96항). 성체 조배를 끝맺을 때 비로소 강복을 위한 분향을 하고 강복 전 기도문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본기도문, 또는 예식서의 다른 기도문 중의 하나를 집전자가 바친 후에 성광을 들어 신자들에게 십자표를 그으며 성체 강복을 하게 된다. 성체 강복은 성체를 다시 감실로 옮겨 모심으로써 끝맺는다.

 

새 예식서는 전통적인 성체 강복 예식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전의 성체 강복 예식서와는 달리 집전자가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사항을 준수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예식을 구성하여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이 새 예식서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성체 현시와 강복의 집전자로 사제뿐만 아니라 부제까지 예절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으며 집전시 복장으로는 장백의와 흰색 영대, 흰색 카파와 어깨보를 사용할 것을 지시한다. 또한 만약 사제나 부제가 없거나 또는 있어도 다른 이유로 거동할 수 없다면 시종직을 받은 사람이나 성체 분배권을 받은 사람도 성체를 현시하거나 다시 감실로 옮겨 모실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성체 강복을 줄 수는 없다.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의 차원에서 생겨난 성시간 역시 성체 현시와 함께 거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콕과 요한 에우데스가 17세기 후반에 설정한 예수 성심 축일로 이에 대한 신심은 더욱 확산되었다.27) 일반적으로 이 성시간은 예수 성심에 대한 묵상으로 시작하여 성체 강복으로 끝맺는다. 이러한 주기적인 성체 공경은 신자들에게 성체 조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성체의 의미를 묵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신심 행사가 될 것이다.

 

4) 지속적인 성체 조배 운동

 

19세기 중엽 유럽을 거쳐 미국 캐나다에서 지속적인 성체 조배 운동이 일어난다. 이 새로운 형태의 성체 신심 운동은 20세기에 이르러 성체 신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하겠다. 지금까지의 성체 신심이 행사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지속적인 성체 조배 운동은 성체에 대한 신심을 우리의 삶 안에서 지속시켜 나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주었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20세기에 들어와 본당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우리 나라에도 메리놀 수도회를 통하여 1983년에 들어오게 된다. 인천교구 부평 2동 성당에서 500명이 입회식을 함으로써 처음으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시작하는데 명칭을 '가르멜산 성모 성체회'라고 하였다. 이 운동은 한국에서 꾸준히 발전하여 명칭을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로 바꾸었다. 현재 전국 규모의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성체 조배]라는 정기 간행물을 발행할 정도로 성장하였고 2000년 3월 2일 현재 9개 교구 146개 본당 14개 공소의 23,331명의 신자가 회원으로 가입하여 본당별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를 실시하고 있다. 본당의 성체 조배실을 중심으로 회원을 모집하여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성체 신심 운동은 두 가지 면에서 매우 밝은 성체 신심의 미래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첫째, 여타의 다른 성체 신심 운동이 일회적 성격을 띠는 데 비해서 이 운동은 지속적인 성격을 띰으로써 성체를 일상 생활화하는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둘째, 성체 조배회라는 공동체적 구조를 가짐으로써 성체가 지닌 통교적 측면(koinonia, Communio)이 잘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성체 조배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몇 가지 난제들도 있는데 성체 조배실을 따로 꾸며야 하고 심야에도 안전하게 성체 조배를 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성체 문화를 가장 밀도 있게 삶 안으로 침투시킬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성체 신심 운동으로 지속적인 성체 조배 운동을 평가할 수 있겠다.

 

 

4. 맺는 말

 

이상으로 간략하게 전례사적인 관점에서 성체 공경의 역사를 살펴보았고 한국 교회 안에서 현재 거행되고 있는 성체 신심을 개괄해 보았다. 성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느님의 구세 경륜의 결정적인 표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성체 안에는 우리 교회가 기념하는 모든 파스카의 신비가 함축되어 있으며 하느님의 구원 행업이 완전한 형태로 담겨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톨릭 신앙 행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체 신심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영성체이다. 영성체로서 영혼은 생명의 양식을 얻고 그를 통해 구원의 신비 안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이 이야기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 생활은 "장례 영광의 보증을 주는 파스카의 잔치"(47항)인 이 성체성사 안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희망의 대희년 2000년을 보내면서, 또 곧 다가올 로마 세계 성체 대회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성체를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가지런히 해야 할 것이다.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다 내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느끼며 우리 또한 그분께 온전히 맡겨 드릴 수 있는 성숙한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학교가 성체 신심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신앙의 유산인 여러 종류의 성체 신심을 올바른 방법으로 활성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모든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이러한 성체 신심을 적절히 가질 수 있도록 사목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온 교회가 성체의 사랑으로 충만함을 누릴 때 우리는 저 성체 '나눔'의 충만함 속에 머물게 될 것이며 이러한 나눔의 삶은 곧 우리가 '대희년의 사람'임을 증명해 줄 것이다.

 

 

1) 한국 주교단 공동 사목 교서 [대희년을 바라보며], 7-3항.

2) 유스티노, [호교론], 1권, 67(Enchiridion Patristicum, 127-129항); 히폴리토, [사도전승], 32(Sources Chretienne, 11권).

3) R. Cabie, "L'eucharistie", L'eglise en priere, A. G. Martimort 편, 2권, Paris, 1983년, 262면.

4) G. Rapisarda, "La Custodia eucaristica", Gli spazi della celebrazione rituale, Milano 1984년, 89-102면.

5)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의 사용 이외에도 미사를 봉헌할 때 집전자가 신자들을 등지고 봉헌한다든지, 더 이상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없게 되었다든지, 또 누룩 없는 빵으로 빵이 교체된 것 등도 모두 전례 신심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J. Aldazabal, "Eucaristia", La celebrazione nella Chiesa, D. Borobio 편, 2권, Torino, 1994년, 308-309면.

6) 이 성체 신심은 중세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로"(Ad Patrem per Filium)라는 정식에 맞춰서 유행하게 된 성자와 대화를 나누고 성자를 따르려는 신심 형태에 의해 더욱 발전하게 된다. R. Cabie, 앞의 책, 263면.

7) 이에 대해서는 J. de Montclos, Lanfranc et Be셢enger. La contraverse eucharistique du XIe siecle, Louvain, 1971년 참조.

8) 이 시기에 이르러 성체 성사는 더욱 왜곡되는데 예를 들면, 영성체보다 성체 조배가 더 중요시 여겨지게 되었고 감실이 제대보다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공동체의 미사 집전보다 개인적인 성체 신심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J. Aldazabal, 앞의 책, 411면.

9) G. Rapisarda, 앞의 책, 97-100면.

10) Bernard, Ordo Cluacensis I, 35 : R.Cabie, 앞의 책, 264면에서 재인용.

11)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 대해서는 J. D. Mansi, Sacrorum Conciliorum nova et amplissima collectio, 22권, Firenze-Venezia, 1757-1798년, 1107항 참조.

12) R. Cabie 앞의 책, 264면.

13) H. Leclercq, "Procession", DACL, H. Marrou 편, 4권, 1895항.

14) R. Cabie 앞의 책, 268면.

15) Silverio Mattei, "Esposozione del s.mo sacramento", Enciclopedia Cattolica, 5권, citta del Vaticano, 1948년, 613-614항.

16) H. Leclercq, "Benediction du Saint Sacrement", DACL, H. Marrou 편, 5권, 346항.

17) Silverio Mattei, 앞의 책, 613-614항.

18) H. Leclercq, 앞의 책, 348항.

19) 프랑스의 De Segur의 지극히 거룩한 영성체(La tres sainte communion, 1860년), 이탈리아에서도 Frasinetti의 하느님 사랑의 잔치(Il convito del Divino Amore)라는 책이 널리 유포되었다. 또한 당대의 성인 돈보스코와 교도권에서도 잦은 영성체를 강조하였다; 김희중, "세계 성체 대회의 생성 배경 및 의의", [사목] 129호(1989.10.), 45-48면 참조.

20) 바오로 6세, 회칙 [신앙의 신비](1965.9.3.):AAS 57(1965년), 753-774면.

21) 예부성성,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 "Eucharisticum mysterium"](1967.5.25.):AAS 59(1967년), 539-573면.

22) 경신성사성, [성체 신비 공경 규정에 관한 훈령 "Inaestimabile donum"](1980.4.3.):AAS 72(1980년), 331-343면.

23)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인간의 구원자](1979.3.4.):AAS 71(1979), 257-324면.

24) 요한 바오로 2세, 교서 Dominicae cenae(1980.2.24.):AAS 72(1980년), 113-148면.

25) [미사 경본 총지침],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9년, 제1장 1-6항;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7년, 2.13-15항.

26) P. Jounel, "La liturgie et le temps", Martimort 편, L'eglise en priere, A. G. 4권, Paris, 1983년, 118-120면.

27) 위의 책, 120-122면.

 

[사목, 2000년 6월호, 이완희(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전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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