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강론자료

2015-1022.....연중 제29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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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0-22 ㅣ No.1891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홀수 해

로마 6,19-23          루카 12,49-53

2015. 10. 22. 이태원

주제 :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사람은 삶에서 저마다 좋은 것을 찾을 줄 압니다. 물론 어떤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람이 다르게 생각할 수는 있어도, 시작은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좋은 것으로 생각한 것이 정말로 그의 삶에 끝까지 좋은 것으로 남을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은 힘겨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만한 일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들은 복음말씀은 듣는 입장에 따라서 거부감이 있을 내용이기도 합니다. 흔히 종교와 신앙...하면, 우리는 좋은 소리를 듣고 무조건 격려해주고, 삶이 피곤한 사람들에게 이유는 있겠지만, 무조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소리를 하기가 쉽습니다. 정말로 그러할까요? 이렇게 물으면 사람의 대답은 당연히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종교와 신앙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말씀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요? 예수님의 말씀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신앙을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말대로, 예수님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교회공동체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제 맘대로 편집한 것일까요?

 

애석하게도 신앙에 관한 것은 내가 원하는 순간에 그 진실과 허위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의 것도 그와 비슷한 면은 있지만, 신앙의 것은 진실과 허위를 가리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난 다음에, 그것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내 일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도박이 필요한 셈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것은 평화라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삶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그것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두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평화는 쫓아내려고 하고, 오로지 내가 하는 일만 제대로 된 길을 가는 것이라고 우기고 싶은 모습을 봅니다.

 

이러한 사정을 바오로사도의 말씀에 비춰 해석하면, 우리가 부지불식(不知不識,=생각지도 알지도 못함)간에 영원한 생명은 멀리하고 죄의 종으로 살기를 원하고 그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을 붙잡고 불으면 절대로 그렇게 인정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무슨 표현이 가능하겠습니까?

 

노예나 종이라는 표현이 요즘 시대에 맘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떤 기준에 맞춰 내 삶이 드러나도록 애쓰고 있는지 하느님의 지혜를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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