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김연이 율리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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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8-17 ㅣ No.1345

[124위 시복 특집] 김연이 율리안나(?~1801년)


“너는 ‘사학매파’로 평민들을 가르쳐 유혹하고, 강완숙과 체결하여 주문모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폐궁을 왕래하면서 전염시켰다.”(김연이의 사형판결문에서)



김연이 율리안나는 양인 출신의 부인으로 한양에 살 때 한신애 아가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795년 이후에 여회장 강완숙의 집에서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김연이는 자주 교리 강습이나 미사에 참여하면서 신앙을 키워갔습니다. 박해자들은 이집 저집 신앙을 전했던 김연이를 두고 ‘사학(邪學)의 매파(媒婆 : 혼인을 중매하는 늙은 여자)’라 하였는데, 이로써 김연이가 선교에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김연이는 강완숙과 한신애, 그리고 이기양의 집과 더불어 ‘폐궁’이라고 불리던 양제궁을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당시 폐궁에는 왕실의 친족인 은언군(恩彦君)의 부인 송 마리아와 며느리 신 마리아, 그리고 궁녀 강경복 수산나 등이 살고 있었습니다. 김연이는 송 마리아를 주신부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도록 인도하였고, 폐궁의 사람들을 강완숙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김연이가 송 마리아와 신 마리아를 모시고 강완숙의 집에서 미사에 참례하던 흥미로운 광경을 다음과 같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몇몇 문초 기록에 따르면, 우선 주신부가 협실(夾室 : 안방에 딸려있는 방) 가운데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안방에서는 강완숙이 경문(기도문 혹은 성서 구절)을 외우며 모여든 사람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한편 1800년 12월 박해가 시작되자 김연이는 강완숙의 부탁으로 김계완 시몬을 자신의 집에 숨겨 주었습니다. 이어 다음 해 초, 황사영 알렉시오가 그녀의 집으로 피신해 왔고, 결국 이로 말미암아 그녀 자신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김연이는 마침내 송 마리아와 함께 미사에 참석한 일로 체포되었습니다. 이내 곧 포도청으로 압송된 그녀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밀고하지 않았으며, 조금도 약한 마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만 번 죽더라도 천주교를 믿어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던 김연이는 천주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고 강완숙, 강경복, 한신애 등 동료들과 함께 1801년 7월 2일 서소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 엮음 | 그림 박지훈, 124위 약전 ⓒ CBCK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2014년 8월 17일 연중 제20주일 서울주보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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