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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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믿는 이들은 자신의 생명이 하느님 손에 달려있음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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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08 ㅣ No.1276

[생명 사랑] 믿는 이들은 자신의 생명이 하느님 손에 달려있음을 압니다



이맘때가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분 계십니다. 저와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와 사목자로 만났던 분입니다. 그분의 세례명은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당시 35세 된 주부로 유방암 진단을 몇 년 전 받았고, 그때는 폐와 뼈로 전이된 상태로 하느님께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었습니다. 자매님은 남편과 어린 딸 셋을 두었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친정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어렵게 하였고, 신혼 초에 시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게 되자 그 병수발을 혼자서 다 들어야 했습니다. 20대 초반 어린 나이에 그런 고생을 다하면서도 잘 이겨냈습니다. 그런데 본인도 유방암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자매님은 언제나 남편과 아이들 때문이라도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투병 중에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막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아이를 떼어야 한다고 야단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고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자신보다 아기를 선택하였습니다. 분명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신기간 동안에는 병이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기를 위해 항암치료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쁜 아기, 어머니의 사랑으로 낳은 귀여운 아기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덕에 자매님의 병은 악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저와 만났습니다.


암 투병 중에 임신한 막내 하느님 사랑 믿고 낳아

저와 만남을 가지면서 자매님은 막내를 무척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사랑과 희생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아이가 이제 엄마 없이 어린 나이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제대로 한번 엄마로서의 사랑을 주지 못한 그 한(恨)이 그에게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잃지 않고 잘 지켜 나갔습니다.

자매님은 자신이 이제 시한부 삶이고, 한 달 후에, 두 달 후에 하느님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은 저에게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두었다고 용감하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눈에는 늘 막내에 대한 걱정으로 그늘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이들에게 볼품없어져만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자신에게 오지 못하게 하거나 아예 아이들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자신이 약해질 것 같았나 봅니다. 어쩔 수없이 자신은 세상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세상에 둔 채... 만남이 한 달여 지난 후 폐로 전이된 암은 마리아 자매님을 매우 힘들게 했습니다. 숨 쉬는 것조차도 어렵게 하고 있었습니다. 힘들게 말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살고 싶었던 같습니다. 아이들 때문에라도...


남은 사람들 모두에게 많은 선물 두고 떠나

그러나 암은 그 희망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 희망이 무너진 가운데 그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의 탑을 새로 세웠습니다. 그는 다시 한 달이 지난 후 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아직 불러주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답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늘나라에 이쁘고 아름답게 마리아씨 방을 꾸며주시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다”라고 말하며 서로 웃었습니다.

그는 분명 믿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하느님 곁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행복한 곳인지! 그리고 자매님은 저에게 루르드 성수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신부님, 이 성수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았어요. 아주 귀한 거래요. 신부님이 나 같은 다른 환자들 만나서 병자성사드릴 때 쓰시고 조금만 남겨서 제 병자성사 할 때 사용해 주세요.” 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제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마리아 자매님의 가족이었습니다. 병실에 들어선 저를 보자 자매님은 숨을 헐떡이면서도 얼굴에 미소 띠며 마지막 고백성사를 청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유언을 하듯 하느님께 용서와 자비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가 맡겼던 성수로 병자성사를 봉헌했습니다. 임종전대사도 드렸습니다. 그는 매우 숨차하면서도 “저는 행복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하느님께로 떠나가셨습니다.

자매님을 떠나보내며 냉담 하던 다른 가족들은 “지난주에 몇 년 만에 성당에 나가 주일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마리아 때문에 다시 하느님을 찾았어요.” 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저와 남은 사람들 모두에게 많은 선물을 두고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났습니다.

인간은 병들었을 때에도 그처럼 신뢰하도록 그리고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는 그 분에 대한 근본적인 신앙을 새롭게 하도록 부르심을 받습니다. 사람의 눈에 세상의 희망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일 때 그리하여 ‘저의 세월이 기울어가는 그림자 같고 저는 풀처럼 메말라 갑니다.’ 하고 외칠 수밖에 없을 때조차도 믿는 이는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앙 안에서 힘을 얻습니다. 믿는 이들은 자신의 생명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생명의 복음 46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2월호, 지영현 시몬 신부(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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