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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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아! 어쩌나: 새 술은 새 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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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9 ㅣ No.651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 (231) 새 술은 새 부대에?

 

 

Q. 성경에 관한 질문입니다. 루카복음을 묵상하다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5장 33-39절인데요, 단식에 대한 주님과 율법학자들 사이의 논쟁도 어렵지만, 주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도 어렵습니다. 아직 제가 신앙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경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A. 율법학자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단식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실 제자들보다는 주님을 더 나무라고 싶었던 것이지요. 제자들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가르치는 선생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주님께 직접적 모욕을 준 것보다 더 심한 모욕을 준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첫째는 단식하는 행위가 자신들의 ‘위장기제’였기 때문입니다. 내적 성장을 못 한 사람들, 내적 정체성을 상실하거나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내적 공허감을 감추기 위해 외적인 것에 온 신경을 다 기울입니다. 예를 들어 화려한 옷을 입어 권위를 높이려 하거나, 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의 신앙심이 깊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혹은 율법학자들처럼 다른 사람들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심한 단식을 함으로써 존경을 받고 싶어합니다.

 

이렇게 기도와 단식을 수련이 아니라 자기를 위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때 미성숙한 자기도취에 빠져서, 단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 기도를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단식하는 삶이 즐겁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마음이 커집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유난히 비난이 심한 분들은 신앙생활을 통해 행복감, 즐거움을 얻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내 인생이 즐거우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해집니다. 그러나 내 신앙생활이 참 기쁨을 주지 못한다면 마음이 불편함으로 가득 차 다른 사람들에게 잔소리하거나 짜증을 내게 됩니다.

 

율법학자들이 주님과 제자들에게 나무라는 말을 한 것은 그만큼 자신들이 하는 단식이 그리 즐겁지 않고 의무적이거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 행위란 것을 입증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이 거는 논쟁이 별로 의미 없다 생각하시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그렇다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심리치료의 관점을 빌리자면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치료에서는 내담자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가진 가치와 태도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합니다.

 

특히 비합리적 생각, 자기비하적 생각, 절대주의적 관념, 파국적 생각 등을 찾아내고 그런 생각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장애물인지, 이런 생각들이 비생산적이고 역기능적 삶을 살게 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완전하게 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실패자입니다’라든가, ‘내가 실수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좋지 않게 여길 것입니다’ 등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이 있으면 인생에서 성공하고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만들고 싶어도 자기 마음 안에서 ‘네가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어. 하다 말거나 실패할 거야’ 하는, 마치 저주와도 같은 소리가 떠나지를 않고 걸어가는 발목을 낚아채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머릿속에 입력된 병적 생각들을 제거하고, 생산적이고 희망적인 생각으로 채워야 합니다.

 

주님 당대 율법학자들은 사람들 마음을 죄의식으로 채워서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들은 헌 부대에 비유하시고 진정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려면 그런 병적 생각을 뽑아버려야 한다는 의미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가진 병적 신념들이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망가뜨리고 병들게 하는지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마음 안에 마치 전염병을 퍼뜨리듯 병적 신념을 뿌려댄 주범이 당시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임을 아시고 당신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그들과의 목숨을 건 논쟁을 멈추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성장하려고 하면 마음 안에서 성장 욕구가 올라오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왜 그런 삶을 살려고 하는 거야. 그냥 예전처럼 살아’ 하면서 발목을 잡는 소리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이것을 심리치료에서 ‘저항’이라고 하는데, 이런 내적 저항들은 내 안의 미성숙하고 병적 자아들이 벌이는 것들이기에,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주님 말씀을 구호처럼 외치면서 저항을 이겨내야 합니다. 만약 저항에 무너진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성숙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일생을 마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전화는 받지 않습니다.

 

[평화신문, 2014년 1월 5일,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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