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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환자를 통해 본 의료 윤리 (2-3) 줄기세포 치료나 비방 치료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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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17 ㅣ No.983

[생명의 문화] 환자를 통해 본 의료윤리 (2) 줄기세포 치료나 비방(秘方) 치료는 안전한가? (상)

신약 개발 가능성과 효용성 구분해야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 피부근염이나 다발성 경화증 등과 같이 현재 치료제나 방법으로는 완치율이 낮은 질환들을 난치성 질환이라 한다. 이런 난치성 질환을 앓는 환자나 그 가족들은 여러 해 동안 매일 약물을 복용해도 증상이 기대만큼 좋아지지 않고, 완치를 기대할 수 없는 치료에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국내 연구자들이 세계 최초로 특정 질환 원인이나 발병 기전을 찾아내 이를 바탕으로 치료가 가능하게 됐다거나 특정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이 개발됐다는 소식을 접하면, 환자와 그 가족들은 완치에 대한 희망으로 들뜬다. 그러나 기대했던 신약이나 치료법들은 시중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찌된 일인가? 기사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대부분이 신약 개발의 가능성만을 언급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의료계에는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아 왔다. 이는 모든 의학적 행위에는 근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의 중심에 임상시험이란 과정이 있다.

기존 약물에 비해 약효가 뛰어난 새로운 물질이 개발됐다고 해도 이 물질을 바로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된 모든 물질들을 신약으로 환자들에게 사용하려면 꼭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즉 안전성과 치료 효용성의 검증이다. 검증과정은 크게 전임상시험과 임상시험으로 구성돼 있다.

전임상시험은 새로 개발된 물질을 동물에 투여해 효능은 물론, 이 물질로 인한 독성이나 안전성을 시험하고, 사람에게 투여할 용량을 추정하는 검사과정이다. 안전성과 효능이 인정되면 이를 바탕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식약청과 임상시험을 수행할 의료기관내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에서 임상시험 계획을 사전에 검토, 승인받아야 한다. IRB는 의료전문가 외에 법률가와 종교인 등으로 구성되며, 임상시험 과정을 감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병원, 학교, 연구소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 과정을 검증한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은 사람을 대상으로 새로운 물질의 안전성과 치료 효용성을 검증하는 과정으로, 4단계 즉 1상, 2상, 3상, 4상으로 구분된다. 신문이나 병원 게시판에서 'OOO 치료제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이라는 안내문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새로 개발된 약물의 안전성과 효용성 검증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안내문이다.

임상시험 1상에서는 건강한 사람 20~80명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검증한다. 2상에서는 환자 100~300명을 대상으로 약물의 안전성과 효과 여부와 약물의 적정 용법 및 용량을 조사한다. 3상에서는 1000~3000명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약물이 기존의 약물에 비해 효과가 우수하거나 또는 부작용이 적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검증하고, 최적 용량을 확정한다. 3상 이후 시판이 가능하다. 4상은 시판 후 실시되는 임상시험으로, 치료 기간이나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 인종별 차이 등을 평가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 모든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1, 2, 3상 시험을 수행하는 연구책임자는 참여자(피험자) 모두에게 새로운 물질 투여 시에 예상되는 작용과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야 한다. 또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보상 계획도 상세히 설명한 후 참여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임상시험 참여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이 동의서는 성인의 경우에는 본인이 직접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19살 미만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의사 표시가 가능하면 본인은 물론 보호자의 동의가, 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어린 아이는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

피험자에게는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대가로 어떠한 보상도 주어져서는 안 된다. 단지 실비 보상 차원에서 교통비, 식비, 숙박비 정도가 지급될 수 있다. 자원자는 신약의 임상시험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환자들의 치료 및 의학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임상시험이 시작된 후 연구자는 항시 유해한 부작용의 발생에 주의해야 하며, 발생 시에는 즉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IRB에 보고해 임상시험 지속여부를 심사받아야 한다. IRB는 발생한 부작용을 심사해 피험자들의 건강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임상시험을 중단시킬 수 있다.

임상시험의 승인심사나 시험과정이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이유는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피험자와 장래에 이 약제를 사용하게 될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임상시험의 검증과정을 거치는데 5년 이상 걸리며, 검증과정을 통과해 신약으로 인정받을 확률도 0.1 ~ 0.01%로 매우 낮다. [평화신문, 2012년 11월 18일, 김중곤(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생명의 문화] 환자를 통해 본 의료윤리 (3) 줄기세포 치료나 비방(秘方) 치료는 안전한가? (하)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 곧 자살행위


이번 호에서는 임상시험과 관련된 진료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례 1 : 6년째 루푸스를 치료 받아오던 B씨가 느닷없이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러 외국에 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치료가 잘 되고 있는데 왜 그러냐고 묻자 "치료기간이 길고 완치된다는 보장도 없고 해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줄기세포치료 회사의 연구소 견학을 벌써 다녀왔고, 여러 유명 인사들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시술은 3~5회 하며, 그때마다 외국으로 가서 3~4일 머물고, 치료비용은 항공료와 호텔비를 포함해 수천만 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괜찮겠지요?"하고 물어왔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2005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난치성 질환 치료의 광풍을 기억할 것이다. 임상시험의 전단계인 전임상시험은 커녕 제대로 된 연구실 시험관내 실험조차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2만 여명의 환자들에게서 임상시험 등록을 받았고, 결국은 사기극으로 밝혀져 많은 환자와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아직도 줄기세포 치료 효능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갖고 우리나라보다 의료수준이 낮은 외국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가는 환자들을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치료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국내에서는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시술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검증 체계가 소홀한 외국으로 환자들을 비공개적으로 접촉해 데리고 가는 것이다. 줄기세포가 난치성질환 치료제로서 환자에게 사용되기에는 그 효능이 아직 불확실하며, 암 발생과 같이 해결해야 할 부작용들이 남아있다. 치료를 받고 좋아진 환자가 있다는 선전만을 믿고 외국으로 따라나서는 것은 자살행위라 할 수 있다. 검증되지 않은 해외 줄기세포 치료의 안전성에 대해 국민들의 올바른 인식이 요구된다.

사례 2 : 지난 1년간 피부근염을 치료받고 있는 C씨가 구토와 황달이 나타나 응급실에 왔다. 불과 3주전 정기 외래진료 때에 병의 경과가 좋았는데, 갑자기 응급실에 온 것이다. 그간 얘기를 들어보니 "친척이 병문안을 와서 주위에 똑같은 병을 앓던 사람이 XXX에서 지어준 비방(秘方)약을 먹고 나았다고 권해 그 비방약을 10일 동안 먹었다"는 것이다. C씨는 결국 독성 간염으로 진단받고, 1주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필자에게 오랜 기간 치료받아오던 환자 중에 갑자기 예상치 않은 증상들이 나타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개 신문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특정 질환에 대한 자신만의 비방 치료법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성분이 확인되지 않은 약을 복용한 경우들이다. 그 바람에 본래의 병 치료는 뒤로 미루고 부작용으로 얻은 병을 치료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비방약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는 비방치료법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치료법에 사용되는 치료제는 대부분 식물에서 추출한 것으로 단일물질이 아닌 여러 생리활성 물질이 섞여있는 복합물질이다. 또 채취 시기나 방법 등에 따라 그 성분이 달라질 수 있어 이 치료제가 사람마다 어떤 효과와 부작용을 나타낼지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환자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비방약도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용성이 검증돼야 한다.

약물에 대한 임상시험을 할 때 성인과 소아에 대한 임상시험을 분리해 시행한다. 성인과 달리 소아는 성장과 발육과정에 있고 약물에 대한 반응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시험 결과 소아에겐 사용이 금지되고 성인에게만 사용이 허가된 약제들이 있다. 

그러나 환자의 안전을 위해 도입된 임상시험제도로 인해 도리어 아이들이 좋은 신약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일례로 수년 전부터 시판되고 있는 새로운 관절염 치료제가 16살 미만 아이들에게는 금지약물로 지정돼 있다. 이 약제는 기존 관절염 치료제가 갖는 위염, 위궤양, 위출혈 등과 같은 위장장애 부작용을 최소화시킨 신약이다. 그러나 소아 환자에게는 위출혈이 반복돼도 이 신약으로 대체할 수 없다. 

이렇게 성인에겐 사용 허가된 신약이 소아에는 허용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제약회사가 소아에서 이들 약제 안전성에 대한 근거자료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임상시험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도 많이 들고, 규모도 작은 소아 시장보다 성인 시장이 더 매력적이어서 소아 임상시험을 기피한다. 어린이들을 보호한다는 뜻에서 소아에 대한 별도 임상시험을 하도록 한 제도가 오히려 아이들이 신약을 접할 기회를 막는 꼴이 됐다. 기업의 윤리적 사명 의식이 요구된다. [평화신문, 2012년 11월 25일, 김중곤(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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