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2015-1119.....연중 제3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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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5-11-19 ㅣ No.1915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 홀수 해

1마카베오 2,15-29          루카 19,41-44

2015. 11. 19. 이태원

주제 :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

세상에 사는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합니다. 그렇게 하는 질문들 가운데는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질문은 있지만 대답을 얻을 수 없는 경우나 얻는다는 대답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여 대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질문과 대답이 세상에만 관련되는 것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완전무결한 대답을 해 줄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세상의 차원을 넘는 신앙에 관련된 것이라면 경험할 수 없는 것도 알고 싶다고 하고,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없으면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예루살렘 성전이 다 파괴되고 난 다음의 모습을 예고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말씀을 하시면서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울고 웃는 것이야 사람의 감정이니까, 그 일에 대해서 선이나 악을 말할 수는 없지만, 만일 우리가 보이는 예상치가 서글픔을 자아내는 것이라면 나와는 분명히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고 난 다음의 경험이 이 내용 안에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만,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다만 그 말씀에서, 미래를 내다보신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미래를 훤히 본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미래가 그 사람이 본 대로 실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전하는 소리가 내 삶에 남길 수 있는 영향은 어떠한 것인지 우리의 자세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나에게 다가올 미래가 장밋빛을 띤 청사진이라면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현실이 그렇게 흐르지 않을 때나 내가 원하는 좋은 것과 반대의 결과가 생겼을 때가 문제일 뿐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따른다는 사람들이지만, 오늘 마카베오상권의 독서에서 만난 것처럼, 마타티아스와 아들들이 보인 열정은 아무나 드러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왕명에 따라 모데인제단에서 제물을 바치려던 사람은 무엇을 잘못한 사람이었을까요? 우리가 삶의 기준점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같은 일에 대해서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세상에서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은 그 세상이 약속하고 보장하는 행복을 피해서 살아간다는 말도 될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모두 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만, 그에 대한 자세를 물을 때 우리는 현실과 어떤 타협을 해야 할까요? 대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대답을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일을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행동하느냐의 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신앙인으로 세상에 산다면서 드러내야 할 올바른 자세를 여러분은 어떤 것으로 정하고 사십니까? 내가 항상 옳을 길을 갈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느님의 자비와 도우심을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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