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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우리 곁의 보물: 중림동약현성당의 순교자 현양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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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8-25 ㅣ No.564

[우리 곁의 보물] 중림동약현성당의 '순교자 현양탑'

 

 

중림동약현성당은 1892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벽돌조 서양식 교회 건축물입니다. 약현(藥峴)은 이 언덕에 약초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명동대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1891년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완성하였습니다. 중림동약현성당 아래에는 서소문 밖 네거리로 사형장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1801년 이후에 100명이 넘는 교우들이 순교하였습니다. 그분들 중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 남종삼 요한을 포함한 마흔 네 분이 한국 천주교 200주년이 되던 1984년 5월 6일에 시성되었습니다.

 

서울대교구와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84년 12월 서소문 순교 성지에 현양탑을 건립했습니다. 탑의 조각은 미술가 임송자(릿다,1940~)가 하였습니다. 그러나 1996년 서울시의 자원재활용처리장 시설공사를 위해 철거되었다가 1998년에 중림동약현성당의 동산 자리에 재설치 되었습니다. 원래 탑의 윗부분은 삼각형 꼭짓점처럼 뾰족하였지만 지금은 그곳이 잘려나간 상태입니다. 다행히 탑에 있던 부조 작품들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복원된 순교자 현양탑은 신자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탑에는 박해 시기에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 공부와 성사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은 신앙 선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세 면의 대리석에는 7개의 고부조가 붙어있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7은 칠성사를 상징합니다. 순교자 탑의 외적 형태와 부조를 보면 칠성사를 통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부조에 새겨진 작품을 왼쪽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승훈이 이벽에게 세례를 주는 장면’과 ‘명도회의 교리 공부’, ‘서소문에서 순교한 동정 순교자 성 김효임 골룸바와 김효주 아녜스 자매’, ‘순교자들의 고문 장면’, ‘어머니와 아기가 생이별하는 모습’,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고해성사 집전’, ‘옹기촌에서 묵주기도 하는 신자들’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순교의 현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아기와 생이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다른 여인의 품에 안긴 아기는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한없는 슬픔과 고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박해를 피해 산 속에 들어가 옹기를 구워 팔며 살던 사람들이 묵주기도문을 담은 매괴경(玫瑰經)을 펼쳐 놓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임송자 작가는 “순교자 현양탑의 부조는 우리나라 교회 역사 중 박해를 받았던 100년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탑을 한 바퀴 돌면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탑 주변을 낮게 만들었고 부조도 사람들의 눈높이에 두었습니다”라며 제작 때를 회상했습니다. 순교자 현양탑의 부조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선조들의 무수한 기도와 희생을 통해서 이어져 왔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믿음을 증언해 주신 신앙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그분들의 굳은 신앙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 탑 앞에서 다시 깨닫게 됩니다.

 

 

[2018년 8월 26일 연중 제21주일 서울주보 4면,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 유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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