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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21세기 새로운 칠죄종6: 낙태 - 낙태허용법 제정, 그리스도인의 침묵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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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7-01 ㅣ No.1074

21세기 새로운 칠죄종 (6) 낙태 - 낙태허용법 제정, 그리스도인의 침묵 때문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를 일곱 가지 죄악의 근원 곧 칠죄종(七罪宗)이라고 가르쳐왔다. 2008년 3월에 교황청 내사원은 “1. 환경파괴 2.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는 유전자 조작 3. 과도한 부의 축적과 사회적 불공정 4. 마약거래와 복용 5. 윤리적 논란을 낳는 과학실험 6. 낙태 7. 소아성애”를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칠죄종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다달이 한 가지씩 다룬다.


2013년, 금년은 모자보건법이 제정 공포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모자보건법은 얼핏 모자의 건강을 위하여 제정된 법처럼 보이나, 제14조에서 자(子) 곧 태아의 생명침해를 허용하고 있는 법이다.

정부는 이 법을 인구억제 정책의 도구로 삼아왔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략 2,000-3,000만 명의 태아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그 결과 오늘의 우리 사회는 낙태만연은 물론이고 극심한 저출산과 자살 등 인간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시달리고 있다.


낙태를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들은 낙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낙태를 그저 혹을 떼어내는 수술의 일종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거나, 윤리적으로 나쁜 행위이지만 태어난 사람들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자위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낙태를 여성의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곧 여성이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하여 낙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모성애 대신 태중 아기를 살해하는 것이 여성의 권리라고 주장하니 기막힌 일이지만, 그런 생각 이면에는 여성들의 아픔과 상처도 많았을 것이다.

어떻든 종교인이 50%도 넘는 이 땅에서 낙태만연이라니 안타까운 일이고, 종교인도 비종교인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러한 신앙과 생활의 괴리 저변에는 신앙이나 계명도 아랑곳하지 않는 지독한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과연 낙태란 무엇인가? 낙태란 난자와 정자가 수정(임신)되어 출산되기까지 태중에서 인위적으로 초기 인간생명을 제거하는 행위다. ‘낙태’를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으나, 낙태란 단순한 수술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다.

낙태를 정당화하려고 착상되기 전이나 태중의 아기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나, 많은 생물학자들과 의학자들은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여 각 인간의 생명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단언한다.

우리 선조들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아기의 존재를 인정하여 태어나면 한 살로 여겼다. 그리고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 (임신)되는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엄한 존재로서 어느 단계에서든지 일관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하느님의 금령에 정면으로 거슬러 인위적으로 태중의 생명을 의약품이나 외과의술로 제거하는 낙태를 “가증할 죄악”으로 여긴다(「생명의 복음」, 58항). 흑인이나 백인을 차별할 수 없는 것처럼, 유다인이나 게르만족이나 차별할 수 없는 것처럼, 태어날 사람과 태어난 사람을 차별할 수 없는 것이다.


낙태문제에 침묵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구 소련은 1920년에 낙태를 합법화하였고, 미국은 1973년 1월 22일에, 우리나라는 같은 해 2월 8일에 제한적이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법이라는 힘을 빌려, 태어난 사람들이 태어날 사람들을 차별하여 처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 미국과 한국 모두는 빠르게 낙태가 증가하였다.

흑인노예 시대에는 흑인들이 차별에 항거하였고, 유다인 대량 학살 시에는 유다인들이 저항을 계속하였지만, 태아들은 소리를 낼 수도, 거리로 나설 수도 없어 침묵으로 절규할 뿐이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는 나치의 인종차별주의 정신과 공산주의 유물론 사상이 녹아있지만, 민주화와 인권을 그토록 외치는 우리 한국사회는 모자보건법에 대해서만은 왜 그리도 침묵하고 관대한 것일까?

1985년, 매년 낙태가 150만 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접하고 필자는 충격을 받았고, 그 이후 낙태문제에 침묵할 수가 없었다. 오늘날, 아이 한두 명이 차에 치어 숨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거나, 하루에 3-4명이 자살하면 온 사회가 난리인데, 하루 1,000여 명의 존엄한 인간 생명이 태중에서 희생되는 낙태에는 왜 그리도 침묵하는 것인가?

생명과 관련하여 살인, 자살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없겠으나, 낙태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아나 태아 문제는 인간생명 문제의 출발점이자 가장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인간생명 문제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배아연구와 낙태를 외면한다면 결국 인간생명의 마지막 단계에까지 생명경시 풍조가 파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975년 미국 주교회의 생명운동지침서와 2010년 한국 주교회의 생명운동지침서에도 분명히 ‘낙태와 안락사’를 우선적인 문제로 다루고 있고,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도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낙태와 안락사 문제에 우선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생명운동이 낙태문제에만 치우친다고?

가끔 필자는 “한국의 생명운동이 너무 낙태에 치우치는 것 같다.”는 말을 듣는데, 말 그대로 제대로 낙태에 치우쳐 활동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천주교회에서 두 번에 걸친(1992년, 2000년) 낙태반대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였지만, 날마다 거듭되는 태아들의 절규에 비하면 그저 작은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2006년 미국 생명운동 현장을 방문하고 매우 부러움을 느꼈다.

미국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는 8명의 박사급 전문 인력이 200만 달러 규모의 예산으로 생명운동을 이끌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1,000여 개의 생명수호 단체들이 우선적으로 낙태문제를 해결하려고 애를 쓰고 있고, 이들 단체 중 국제생명수호회는 연간 300만 달러의 예산으로 26명의 직원이 생명수호운동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1973년 낙태허용 판결 이후 매년 1월 22일 전후 수십만 인파가 워싱턴 국회의사당 인근에 모여 생명대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우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는 2003년에 설립된 뒤 생명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 전담자는 없다. 최근 서울 · 광주대교구, 청주 · 인천 · 수원 · 의정부 · 마산 · 전주교구 등에서 생명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전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와 여성연합회 그리고 레지오 마리애 단체가 생명운동에 협력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일선 본당에까지 생명운동이 확산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회에서 10년 전부터 프로라이프 의사회 · 청년회 · 변호사회 · 교수회 등이 설립되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이분들의 노고로 미국보다 39년 늦은 작년에야 비로소 이 땅에서 생명대행진이 시작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태아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러면 이 지구상에서 낙태의 위협을 받고 있는 태아보다 더 가난한 사람이 있을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태아를 가난한 사람들 중의 가난한 사람이라 하였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더 데레사는 1994년 2월 3일 워싱턴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3천여 명의 정관계인사들에게 “낙태야말로 가장 큰 폭력”이라고 역설하였고, “낙태야말로 하느님을 죽이는 행위입니다.”라고까지 표현하였다. 그런데도 낙태문제에 관심을 가져도 되고 갖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최근 미국의 한 낙태 옹호자는 “낙태허용법이 제정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침묵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였다. 옳은 말 아닌가?

펠릭스 3세 교황님(재위 : 483-492년) 말씀처럼 “거짓을 보고도 반대하지 않으면 거짓을 인정하는 것이요, 진리를 옹호하지 않으면 진리를 억압하는 자다.” 생명은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이고, 낙태가 이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면,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반복되는 1,000여 건의 낙태에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된다.

* 송열섭 카시미로 - 청주교구 복음화연구소 소장 신부로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총무를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송열섭 카시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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