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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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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2-20 ㅣ No.1223

[빛과 소금]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해설


기후 위기, 인류의 책임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1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세계 기후 위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관련 자료들, 특히 유엔 산하 기구인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최신 보고서를 주로 인용하신다. 이를 통해 “기후 변화의 표징들은 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지고”(『하느님을 찬미하여라』 5항, 이하 출처 동일) 있음에도 그것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회의론에 맞서 기후 위기가 인간 활동으로 야기된 실존하는 위기이며, 이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강조하신다.

 

지구의 기후가 화산 분화 등과 같은 자연적 요인 때문에 냉각기와 온난기를 오가며 변화한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변화는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서 점차적으로 일어났다. 이에 반해 현재의 기후 변화는 “확인하는 데에 수백수천 년이 아니라 그저 한 세대면 충분할 정도의 속도로 온난화가 이례적으로 가속화한다는 사실”(6항)에서 차이가 있다. 실제로 우리는 계절이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이미 체감하고 있으며 폭염과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이 더욱 잦고 심해졌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 기온 상승의 가속화는 인류의 산업 발전으로 인한, “특히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온실가스 배출의 급속한 증가”(13항)로만 설명할 수 있다고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신다. 19세기까지 300ppm 미만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로 인한 탄소 배출이 늘면서 높아지기 시작해 2023년 6월에는 423ppm을 기록했다. 두 세기가 다 지나기도 전에 약 123ppm이 높아진 것이다. 이 중 23ppm은 2015년 『찬미받으소서』가 쓰이던 무렵에 기록된 400ppm에서 8년 만에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이산화탄소 농도의 가파른 상승으로 지구 평균 기온 역시 급속히 상승해 현재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1℃ 더 높아졌다. 과학자들은 현재 추세라면 IPCC에서 지구 기온 상승의 한계치로 권고한 1.5℃마저도 10년 안에 넘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심지어 지구 기온 상승이 가져온 피해 중 빙하의 해빙과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 바다의 산성화와 같은 일부 문제들은 이미 앞으로 상당 기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이제는 그러한 문제들의 진행 속도라도 늦춰서 더 큰 피해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의식 있는 각계각층에서 시간이 얼마 없다고 경고함에도, 기후 위기에 책임이 큰 경제 강국들은 여전히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능한 한 짧은 기간에 최대의 이윤을 얻는 데에”(13항) 집중하고 있다. 교황님께서는 이제 경제 발전만 취하지 말고 이러한 위기를 몰고 온 우리의 책임을 인식할 것을 촉구하신다.

 

“우리는 발전의 경이로움에 감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세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다른 영향들에도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남길 유산에 대한 특정한 책임입니다.”(18항) [2024년 2월 18일(나해) 사순 제1주일 인천주보 3면, 이다한 스테파노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빛과 소금]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해설


윤리, 도덕, 영성의 부재

 

 

기후 위기를 포함한 지구 환경 문제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다소 뜬금없는 생각 한 가지가 스쳐 지나간다. 바로 ‘지금보다 과학 기술이 덜 발전했던 과거,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 환경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조선시대는 지금보다 과학 기술적으로 낙후했지만, 환경은 훨씬 깨끗했고 기후 위기, 미세먼지, 방사능 오염수 같은 문제들도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물론 그 시대에도 나름의 환경 문제는 있었겠지만 ‘위기’라고 표현할 만큼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없거나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기후 위기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선시대 생활로 돌아가야 할까? 이는 ‘인간이 문제의 주범이니 인간이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처럼 너무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이며 교회의 가르침에도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3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기술 발전으로 인간이 여러 폐단을 개선하고 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기술의 긍정적인 면들을 인정하신다. 문제는 기술 발전이 기후 위기, 파괴적인 전쟁 무기의 개발과 같은 부정적 결과 또한 초래했고, 그것이 계속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적 이유는 윤리와 도덕, 영성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교황님께서는 지적하신다.

 

“엄청난 기술 발전에 인간의 책임과 가치관과 양심의 발전이 함께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 한계를 정하고 자제력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건전한 윤리와 문화와 영성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찬미받으소서』 105항;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24항에서 인용)

 

가톨릭교회는 기술 발전이 올바른 윤리와 도덕, 영성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무시한 채 기술만이 전부이며 그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맹신, “인간이 아닌 실재는 그저 인간의 힘을 키우는 데에 이용되는 자원”(22항)일 뿐이라는 생각, 기술 발전이 가져올 성장만 낙관하는 세태가 만연하다. 특히 인공 지능과 같이 “인간에게 한계가 없다는 발상에서”(21항) 비롯한 최신 기술 발전으로 그러한 면모는 더욱 커졌다. 이에 기술 발전이 초래할지도 모를 파국적 결과에 대해 염려하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신다.

 

“우리는 인상적이고 놀라운 기술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매우 위험한 존재가 되었으며 많은 생명체의 생명과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28항)

 

그래서 교황님께서는 기술과 성장이 전부라는 발상에서의 전환, “기술 지배 패러다임의 공세에 대항하는 다른 시각, 사고방식, 정책, 교육 계획, 생활 양식, 영성이”(『찬미받으소서』 111항) 우리에게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신다. [2024년 2월 25일(나해) 사순 제2주일 인천주보 3면, 이다한 스테파노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빛과 소금]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해설


‘기후 위기’라는 십자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생태환경’이라는 주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발표 전과 그 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찬미받으소서』는 가톨릭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찬미받으소서』 발표 이전에 생태환경은 인권, 평화, 인간 생명 등의 주제들에 비해 다소 부차적이거나 덜 주목을 받는 감이 있었다. 하지만 『찬미받으소서』 발표 이후에 생태환경은 그 주제들과 동급의 핵심적인 주제로 인식되었으며, 교회 안에서 관련된 언급과 활동 역시 많아졌다. 개인과 가정, 수도회, 본당, 교구 등 차원에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동참하면서 생태적 회개를 위한 여러 실천을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하느님을 찬미하여라』에서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실천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 협력하도록 우리 모두를 초대하신다. 하지만 오늘날 기후 위기는, 물론 텀블러 사용 같은 개인의 실천이 의미 있고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정치의 역할이다. 교황님께서도 이점을 인정하시며 말씀하신다.

 

“저는 개인적인 노력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국내와 국제 정치의 위대한 결정들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69항)

 

세계화 시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세상의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온 지구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19항) 절감한 시대에, 기후 위기 같은 전 세계적 문제는 어느 한 국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교황님께서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3장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자주의 곧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질서와 그 안에서 활동하는 국제기구들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 동시에 교황님께서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 시민 사회 단체와 그 조직들의 역할에도 주목하신다. 그들이 국제기구들의 미흡한 활동을 보완하며, 특히 상위에 있는 정치권력을 통제하고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압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압력이 기후 위기와 관련해서도 필요하다고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신다. 곧 기후 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 그리고 정치권력이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지 감시하는 시민들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시민들이 국가와 지역과 지자체의 정치적 권력을 통제하지 않으면 환경 피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찬미받으소서』 179항;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38항에서 인용)

 

일자리, 저출산, 물가 등 각종 사회 문제가 산적하지만, 기후 위기 역시 정치권력과 시민들이 다 함께 관심을 두고 짊어져야 할 또 하나의 십자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십자가의 무게에 공동의 집 지구와 우리 모두가 쓰러지지 않고 마침내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부활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는 사순시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2024년 3월 3일(나해) 사순 제3주일 인천주보 3면, 이다한 스테파노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빛과 소금]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해설


구호 대신 이행을!

 

 

『하느님을 찬미하여라』가 발표되고 두 달 가까이 지난 뒤인 2023년 11월 30일부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예정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비록 건강 문제로 인해 참석이 취소되었지만, COP28을 기회로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유엔 기후 총회 참석을 계획하셨을 정도로 이 회의에 큰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5장은 그러한 교황님의 기대와 관심, 당부를 담고 있으며 그에 앞서 4장은 지난 유엔 기후 회의들에 대한 교황님의 생각을 담고 있다.

 

‘제28차’라는 총회 차수가 나타내듯이 국제사회의 기후 회의는 약 30년에 걸쳐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그 시간이 무색하게도 처음 회의가 시작되었던 90년대보다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몇몇 회의는 결실 없이 끝났다. 중요한 합의를 맺은 회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합의조차도 각 나라들이 내세운 자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리고 쉽게 감시하고 위반 시 제재할 수 있는 장치의 부재 때문에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5년 총회에서 채택된 ‘파리 협정’은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제한하고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를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케 한 의미 있는 합의였다. 하지만 각 국가에 자발적으로 감축 목표를 세우도록 하는 등 재량의 여지를 많이 남겼고, 준수하지 않았을 때 제재하는 규정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에 몇몇 나라들이 소극적으로 목표를 제시했는데, 현재 각국의 감축 목표로는 ‘파리 협정’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 더 과감하게 화석연료에서 탈피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결단이 필요한 때이지만 “현실에서 아직도 화석 연료가 세계 전체 에너지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화석 연료 사용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50항)

 

교황님께서는 제28차 당사국 총회가 화석연료에서 벗어나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셨다. 교황님의 기대와 비슷하게 많은 기후 활동가는 이 회의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합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유국과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들의 반발로 COP28에서는 ‘퇴출’ 대신 ‘전환’이라는 말을 써서 10년 안에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가속한다는 합의로 막을 내렸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번 회의도 실패했다고 규탄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화석연료에서 벗어난다는 목표가 처음으로 명시된 것은 그나마 성과가 있었다고 평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퇴출’이든 ‘전환’이든 구호보다는 실제로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 아닐까. 교황님께서는 “실질적인 변화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용기는 지니지 못하는 그런 논리를 극복하여야”(56항) 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각자 그리고 누구보다도 정치 및 경제 지도자들에게 그러한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2024년 3월 10일(나해) 사순 제4주일 인천주보 3면, 이다한 스테파노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빛과 소금] 교황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해설


참된 믿음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과 그분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해 말하며 피조물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피조물도 하느님 및 인간과 관련해서 신앙의 중요한 주제임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6장에서 그 회칙의 몇몇 가르침을 상기시키신다. 바로 이 땅 곧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인간은 지구에 존재하는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다양한 피조물은 인간을 위한 자원에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하느님의 풍요를 드러내는 장(場)이라는 것, 예수님께서 사랑과 경탄으로 자연과 피조물을 바라보시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찾고 가르치셨다는 것, 그리고 부활하신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하느님 안에서의 충만, 완성으로 이끄실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교황님께서는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과 별개가 아니라 그것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행동이라는 점을 일깨우신다.

 

아울러 교황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다시 강조하신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과 구분되는 독특하고 중심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이 하느님과 같은 절대적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면서 동시에 창조된 하나의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우리의 생명은 동물과 식물, 이 지구 덕분에 유지되고 지탱됨을 인식하며 이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그들과의 공생 공존을 지향해야 한다.

 

“이제 스스로 존재하고 전능하며 한계가 없는 인간 존재의 개념에 마침표를 찍읍시다.”(68항)

 

이러한 미래를 위해 교황님께서는, 쉽게 쓰고 버리며 지구와 우리 후손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생활양식에서 생태적인 새로운 문화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신다. 특히 개인과 가정, 공동체의 변화가 바로 그러한 전환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 각자의 변화가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강조하신다.

 

“덜 오염시키고 쓰레기를 줄이며 현명하게 소비하려는 가정들의 노력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습니다.”(71항)

 

참된 믿음은 기도를 많이 하고 성당에 열심히 다닌다는 자기만족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변화와 결부되는 것이다. 곧 삶 전체의 변화, 하느님과 이웃 및 피조물과 맺는 관계의 변화로 이어지고 그것을 통해 이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지향하는 게 올바른 믿음인 것이다.

 

“참다운 신앙은 …언제나 세상을 바꾸고 가치를 전달하며 이 지구를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물려주려는 간절한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83항)

 

우리가 실천하는 생태적 회개가 그러한 열망에 부응하며 참된 믿음을 살아가는 길이 되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해본다.<끝> [2024년 3월 17일(나해) 사순 제5주일 인천주보 3면, 이다한 스테파노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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