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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목] 노동절 기획: 교회 가르침으로 살펴보는 현대인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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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04 ㅣ No.1288

[기획] 노동절 기획 - 교회 가르침으로 살펴보는 현대인의 노동


눈앞의 이익에 파묻힌 권리 회심과 형제애로 존엄성 되찾아야

 

 

- 2019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봉헌된 ‘노동자들의 평화를 바라는 미사’ 모습. 가톨릭교회는 이윤 논리에서 벗어난 노동 가치를 추구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성경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인 창세기로부터 시작한다. 창세기는 곧 하느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위해 일하신 모습을 담고 있다. 창세기뿐만 아니라 구약과 신약성경 모두가 하느님과 예수님의 노동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세상 만물에 대한 사랑의 기록이다.

 

노동절(5월 1일)은 일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 인간이 노동을 통해 인간존엄을 실현하고 정당한 대우와 대가를 받으며, 부당한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상기하는 날이다. 올해 노동절을 보내며 성경에 드러난 노동관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노동이 처해 있는 현실과 가톨릭 시각에서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노동의 가치를 알아 본다.

 

 

성경 속 노동

 

성경은 인간의 일과 활동을 모두 하느님과의 관련 안에서 본다는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창세기 1장 26-28절은 성경 전체에 내포된 인간 노동의 심오한 본질을 드러낸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어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26-27절), 사람에게 복을 내리며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하고 명령하신다. 인간은 노동을 하는 가운데 창조주의 활동에 참여해 그 활동을 발전시키고 완성한다는 의미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노동자 요셉의 아들이면서 자신도 노동자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당신 생애에 목수로 일했고(마르 6,3; 마태 13,55), 노동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아픈 환자들을 고쳤다. 예수님의 모든 활동이 노동이었고 신약은 곧 ‘노동의 복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활의 많은 기간을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조건에서 사셨다. 그것은 외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는 일상적인 생활, 육체노동의 생활, 하느님의 율법에 순명하는 유다인의 종교 생활, 공동체 안에서의 생활이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531항)는 말에서 ‘노동자 예수’의 모습은 분명하게 조명된다.

 

회심한 사도 바오로는 땀 흘려 천막을 만드는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사도 18,3)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냉철한 말로 노동을 실천하라고 강권한다.(2테살 3,10) 본지에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세상의 빛’을 연재 중인 서울대교구 이주형(요한 세례자) 신부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은 인간과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며, 노동에 대한 대화도 여기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강생하신 예수님을 포함해 성경 속 모든 인물들은 우리처럼 노동자였다”고 말했다.

 


현대인에게 노동은

 

하느님과 예수님의 인간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핵심인 성경 속 노동 개념과 현대의 노동 개념은 같다고 할 수 없다. 2000년이라는 시간 간격만큼이나 교회와 세상의 가치관은 다를 수밖에 없어서다.

 

교회는 시대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하는 노동 현실에 대응해 최초의 사회 회칙으로 불리는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189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노동하는 인간」(1981년), 「백주년」(1991년)은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2013년),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년), 「모든 형제들」(2020년) 등에서 현대 노동의 비인간성과 비윤리성을 지적해 왔다. 이주형 신부는 “노동에 관한 교회 문헌들이 시대별로 다양하다고 해서 교회가 노동에 대해 새로운 가르침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며 “교회의 가르침은 변할 수 없는 것이고, 교회는 현대사회의 변화된 노동 환경에 일관되게 ‘회심’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상생’을 거부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세태를 현대 노동 문제의 가장 큰 병폐로 꼽았다.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양성일(시메온) 신부 역시 「모든 형제들」 14항 “역사의식, 비판적 사고, 정의를 위한 투쟁, 통합의 길을 약화시키는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중요한 단어들의 의미를 공허하게 하거나 변질키시는 것입니다”는 구절을 인용한 뒤 “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노동은 생존의 도구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비정규직, 최저임금, 하청구조 등 온갖 이익 중심의 기업 운영방식들은 노동을 통해 자기완성으로 나아가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노동의 종류에 따른 계급화와 차별, 혐오로 현대인에게 노동의 의미는 변질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노동의 본래 가치가 가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부는 현대사회의 노동 가치와 개념 변질에 대해 교회와 신앙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종교와 신앙이 일상의 노동, 사회 활동과 너무나 유리돼 있어 교회 가르침이 노동 현실에 투영되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노동 가치는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노동은 인간에서 비롯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을 지향하며 인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간추린 사회교리」 272항)

 

「살며 배우는 사회교리」 저자 황창희 신부(알베르토·인천 계산동본당 주임)는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노동하도록 불림을 받았으며, 노동은 결국 인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비록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두 손으로 직접 일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427항은 노동은 선물을 주시고 재능을 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구원과 성화에 이르는 과정이자 그리스도의 정신을 세상사들 안에 불어넣는 방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이 노동의 주인이며 목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조항이다.

 

이와 같이 가톨릭교회가 제시하는 노동 가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물질만능주의, 유물론, 심지어 무신론적 경향에 깊이 잠식돼 가는 현대인들에게 인간존엄성을 회복하고 회심하는 나침반이 돼 준다.

 

이주형 신부는 “사회적 약자와 인간소외, 고통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는 노동 현실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 상황만을 가중시킨다”며 “상생을 이루는 노동 가치를 회복할 때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하느님 사랑을 신앙의 울타리와 국경과 국적을 넘어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찬미받으소서」 217-221항에서 생태적 회개와 회심을 촉구하며 ‘모든 피조물과 이루는 숭고한 형제애의 증진’을 강조한 데서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상생과 인간존엄을 지향하는 노동 가치를 지켜야 함을 발견할 수 있다.

 

교황은 지난 1월 12일 교황청 바오로 6세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서도 노동이 한낱 이윤의 논리에서 벗어나 인간의 기본권이자 의무로 한 사람의 존엄을 표현하고 드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가톨릭신문, 2022년 5월 1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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