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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빵과 장미, 그리고 여성의 인권: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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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3 ㅣ No.1489

[경향 돋보기 - 빵과 장미, 그리고 여성의 인권]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요

 

 

최근 20대 여성들과 만났다.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더 이상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혼하지 않는 이유도 엄마처럼 될까봐 두렵다고 했다. 나도 과거에 그랬다. 그래서 아내와 엄마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살려고 버둥거렸다.

 

그런데 내 딸과 같은 또래인 20대들이 30년 전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엄마의 돌봄으로 성장했지만 그 돌봄을 벗어나고 싶단다. 또 그 돌봄을 자식들에게 주는 것이 부담스럽단다.

 

 

여성을 여성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회

 

이 사회는 결혼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20대 여성들의 의지를 잘 알지 못한다. 20대 남성들도 여성들이 이기적이라고, 권리만 주장할 뿐 의무는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냥 현실을 잘 모르는 응석받이 여성 정도로 간주하는 것일까? 아니면 천천히 변화하는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사회 변화를 유도하는 ‘프로 불편러’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여성의 공적 사회로의 진출은 무섭다. 1990년대 초 남아 선호 사상에 문제를 제기한 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오던 ‘후남이’ 세대를 거부하며, 계층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들의 대학 진출은 이미 남성과 비슷하거나 근소한 차이로 넘어섰다. 여러 통계 수치를 통해서도 여성들의 약진은 눈부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훌륭한 여성들이 사회 각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노력하면 될 것 같지만 ‘유리 천장’으로 많은 여성은 실망한다.

 

가끔 믿을 수 없어 인용하기도 꺼려지는 수치가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7년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성격차 지수가 136개국 가운데 118위, 여성 고용률은 5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25위다. 특히 한국의 고학력 여성의 고용률은 OECD 회원국 가운데 33위로 최하위 수준에 머물렀다. 성별 임금 격차 37.2%는 OECD 회원국 중 격차가 가장 큰 국가(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 인지 통계, 2017)로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은 거의 바닥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내 총생산(GDP)이나 무역 지수 등과 같은 경제 지표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상위권인데 왜 성 평등 지수는 거의 꼴찌 수준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수치를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영역의 실태 조사 결과는 여성이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맞벌이 부부의 가사 노동 시간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여덟 배나 많다고 하니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여성은 여전히 ‘제2의 성’, 곧 두 번째 성일 뿐이다.

 

또 친밀한 관계에서도 여성은 안전하지 않다. 2017년 서울에 거주하는 여성 2천 명을 대상으로 데이트 폭력의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열 명 중 아홉 명은 데이트 폭력을 경험하였고, 10%는 위협이나 공포심을 넘어 신체적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여성의 현실은 법 제도화의 마련과는 별개로 여전히 폭력을 경험한다. 신고해도 역차별이나 명예 훼손, 무고 등의 문제로 폭력 피해를 해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여성 폭력의 문제는 여성 비정규직 문제, 빈곤의 문제, 건강권의 문제와 연관되어 여성의 삶을 어렵게 한다. 이는 50년 전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잘 사는 한국의 낮은 성 평등 순위와 연동된다. 한국의 성 평등 지수가 꼴찌 수준인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전히 여성은 어머니, 아내, 딸의 역할에 따른 정체성을 잘 수행해야 여성으로 인정받는다. 나아가 ‘돈 잘 버는 능력 있는 여성’도 가정에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여성으로서 빛날 수 있다. 그렇지 않는 여성은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성매매와 여성 인권

 

최근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여관에서 성 매수를 거절당했다며 여관에 방화해 여섯 명이 사망하고 네 명이 중상을 입는 참담한 일이 일어났다. 이 여관이 성매매 집결지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반 숙박업소에서 성매매 알선을 당연하게 요구했다는 사실이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술 취한 상태에서 숙박업소에서 성매매를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거절되었다고 방화를 할 수 있는 사실은 2016년에 일어난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지나가는 여성이 지나가는 모르는 남성에게 둔기로 맞았다. 또 밥을 차려 주지 않는다고 아버지가 딸을 죽였다. 판사가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카메라로 찍었다. 이처럼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남성 피해자도 분명 있겠지만 더 쉽게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현실에서 여성의 위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로 선택되는 가장 취약한 여성들의 삶과 고통으로 여성 인권의 내용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성매매가 불법이라는 인식은 높아졌지만 한국 남성의 성 구매 경험률은 여전히 높다는 사실이다.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남성들이 여전히 성을 구매한다는 것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일까?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매매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일반 성인 남녀 2,134명(남 1,050명, 여 1,08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일반 남성 응답자의 50.7%가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성 구매를 한 경험이 있다고 했으며, 25.7%가 최근 1년간 성 구매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2013년(27.2%)에 비해 1.5%p 감소한 것이지만 여전히 매우 높은 성 구매 경험률이다.

 

여성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 곧 이 사회의 가장 약자인 성매매 여성을 돈으로 거래할 수 있다는 인식은 결국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여성이 잘 인지해서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과, 그래도 ‘성매매를 선택(?)하는 여성은 (선택했으니)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이 오늘날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의 수준이다.

 

이 사회는 자발로 성매매를 선택한 여성은 ‘여성’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물론 성폭력도 피해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인정하는 ‘합리적 여성’이 아니면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와도 같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의 성폭력은 인정받기 어렵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에 대한 이중 규범에서 시작한다. 여전히 더러운 여성과 정숙한 여성의 이분법이 존재한다. 물론 정숙한 여성이라는 과거의 범주는 소비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정숙하면서 섹시한’(분열적) 여성으로 변화한다. 그러다 보니 예쁜(섹시한)여성은 여성이지만 못생긴 여성은 여성이 아니라는 대중적 인식에 영향을 받은 10대 여성 청소년은 인형 같은 기형적 몸을 자발적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또 인형 같은 예쁜 몸이 아니거나 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을 갖추지 않으면 여성이 아니라는 현실에서 가해자들은 얼마든지 여성을 함부로 할 수 있다. 가정폭력의 원인인 성 역할의 부재, 곧 아내나 딸이 밥을 차려 주지 않거나 늦게 들어올 때, 예쁘게 단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데이트 폭력을 감행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결국 가정 폭력은 가출을, 가출은 성폭력(데이트 폭력)과 비인격적 대우와 만나며 가출 청소년은 생존을 위해 성매매를 선택하기도 한다. 분명 자발적 선택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발성 뒤에서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성매매는 여성 빈곤의 원인이자 결과로 여성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며 모든 여성 폭력의 시작이자 종착지이다. 성차별과 특정 성 혐오가 폭력의 원인이고 그 결과 여성 인권의 수준이 바닥이 된다. 여성의 인권이 고양되면 이러한 순환 고리를 단절할 수 있다.

 

 

함께 만드는 여성 인권

 

여성 인권을 이야기할 때 회자되는 아픈 말이 있다. ‘여성이 죽어야 여성의 인권이 지켜질 수 있다.’는 말이다. 여성이 죽었거나 주변 사람이 죽어야 변화가 있었던 역사를 고려하면 일정 부분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죽지 않더라도 개인적인 엄청난 희생이 따를 때 변화가 있다는 것은, 여성 인권뿐 아니라 당사자가 투쟁을 통해 쟁취했던 인권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당연한 권리라고 말하는 인권을 확보하려는 역사 뒤에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참 씁쓸하다.

 

여성 투쟁의 역사는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다. 다양한 인권 쟁취 사례가 있지만 오늘날 한국을 강타하는 ‘미투 운동’(#MeToo, 성폭력 생존자들이 누리소통망을 통해 자신의 피해 경험을 잇달아 고발한 현상)의 열풍을 들 수 있다.

 

미국발 미투 운동보다 훨씬 앞서 우리나라에는 여성들이 납득할 수 없는 피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역사가 있다. 1983년 ‘여성의 전화’ 핫라인 상담 전화와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 전화를 통해서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 인권을 고양하고자 하는 몇 가지 과제를 제안한다.

 

첫째,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법과 정책 등 제도가 여성의 삶을 돌보아 주기는 하지만 여성 인권을 고양하려는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 조건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일회적인 법적 처벌로 폭력이 방지되지 않듯 성차별과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여성의 인권을 고양하려는 사회 구조의 변화가 근본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당연하게 용인되는 여성성-성 역할, 가치, 통념, 제도 등의 변화가 요구된다.

 

둘째, 다양한 영역에서의 여성 인권의 고양은 여성뿐 아니라 여성과 함께 살고 있는 남성, 아동, 청소년, 노인까지, 곧 성별, 세대와 지역, 종교 등을 넘어 함께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여성 인권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시민으로 살아가려는 당연한 권리이자 지향으로 특별한 여성의 문제이거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요즘 새롭게 불을 지핀 ‘미투 운동’은 새로운 희망으로 우리에게 힘을 준다.

 

여성들이 분노를 넘어 행동하기 시작했다. 성폭력 피해뿐 아니라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여성들과 남성들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한국형 미투 운동의 연속선에서 서지현 검사가 드러낸 용기가 그 의미를 갖도록 우리는 끝까지 함께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자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미투 운동을 넘어서 전 국민적인 응원과 지지의 ‘위드유’(#WithYou), 그리고 ‘나부터 나서서 성폭력을 막자.’는 ‘미퍼스트’(#MeFirst) 성폭력 방지 운동 그리고 여성 운동을 통해서 우리는 여성 인권을 지켜내야 한다. 이러한 행동이 남녀노소 같이 하는 시민운동이 될 때 여성 인권은 고양될 수 있다.

 

* 변혜정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여성가족부자체 평가 위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성차별조정 위원을 지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소장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연구소 연구 교수를 지냈다.

 

[경향잡지, 2018년 3월호, 변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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