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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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해설46: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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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06 ㅣ No.730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46)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갈등 받아들일 때 일치의 길 열린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언제나 갈등과 긴장과 대립이 존재한다. 이와 같은 불편함을 잘 조절하는 것을 ‘정치’라 한다.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 기술자들을 ‘정치가’라 한다. 멋진 정치가가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늘 일치와 평화로 분쟁과 갈등이 잘 조정됐으면 좋겠다.


타협에 서툰 사람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일치와 평화로 서로의 분쟁과 갈등이 잘 조정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언제나 자신들의 주장만 옳다고 소리치기 때문이다. 상대의 생각과 주장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타협에 아주 서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상생하기가 쉽지 않다. 죽기 살기로 타협의 장소에 나온다. 그곳에서는 서로 같이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나는 살고 상대는 죽어야 한다고 외친다. 어찌 타협할 수 있겠는가. 가끔 타협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상당히 많은 사람이 이와 같은 타협을 패배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분열되어 또다시 갈등과 긴장과 대립이 형성되고, 그들의 일부분은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아주 골치 아프다.

어떨 때에는 서로가 이와 같은 갈등을 아예 무시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때도 있다. 외양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나, 속은 그렇지 않다. 갈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언젠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이때에는 격한 싸움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 결국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도 힘들게 된다. 좋은 태도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와 같은 갈등 상황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어 도저히 일치할 수 없게 한다. 대화와 타협 없이 무조건 자신들만의 생각과 주장이 옳다고 소리친다. 사법기관의 판단에 최종적으로 맡겨지나, 그 결과도 수용하지 않는다. 그 어떤 타협도 불가능하게 한다. 거의 생떼 쓰기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너무도 유치하다. 다 큰 사람들이 이렇게 어린애 모습을 보일 때에는 모두가 우울해진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갈등을 받아들이고 해결책 모색해야

교황은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는 원칙을 말하며, 갈등을 무시하거나 덮어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현 상황이 갈등 상황이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226항). 이처럼 상황을 수용하고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새롭게 형성된다. 이는 보다 밝고 평화로운 미래를 지향하는 새 출발점이 된다. 교황은 이를 새로운 ‘진전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라 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마태 5,9).

교황의 생각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예수회에서 책을 한 권 냈다.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라는 단행본으로 2013년 밀라노에서 출간되었다. 거기에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이야기한 4가지 원칙을 언급하였다. 특히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를 설명하면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인용하였다. 교황 권고에는 없으나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유다인들과 갈등관계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이 유다인을 돕는다. 강도 만나 사경을 헤매는 유다인의 착한 이웃이 되어준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의 애덕 행위는 인간에 대한 근본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도를 만난 사람이 유다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관계없었을 것이다. 애덕을 지닌 사람으로서 용기 있는 사람만이 가능하다. 갈등을 초월하여 애덕을 실천한 것이다. 갈등을 초월한 애덕 행위는 두 사람 사이의 평화와 일치라는 새로운 관계를 가능케 할 것이다.”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갈등 밖으로 용기 있게 뛰쳐나와 다른 이들을 그들의 심오한 존엄성 안에서 바라보는 훌륭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228항). 진정 타인을 존경하고 나은 미래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서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갈등은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일치를 통해 다양성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된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6일,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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