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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빵과 장미, 그리고 여성의 인권: 교회와 여성, 그리고 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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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3 ㅣ No.1490

[경향 돋보기 - 빵과 장미, 그리고 여성의 인권] 교회와 여성, 그리고 모성

 

 

현시대는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 협력하고 발전하며 구체적인 변화를 이루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따라 교회도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2005년에 내놓은 「한국 천주교회 여성 사목 방향 정립을 위한 의식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여성 신자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되며, 여성에게 지도자로서 활동할 기회와 여건을 평등하게 제공하지 않는 기존의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알린다. 또한 이 보고서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성들이 지도자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적극적으로 배려하기를 권장하며, 아울러 여성 사목의 핵심 과제로 ‘여성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의 개발과 교육’을 제안하고 있다.

 

아쉽게도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교회의 분위기를 볼 때 지도자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일하는 협력자 또는 봉사자가 ‘여성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교회의 현대화에 발맞추는 여성의 지위와 역할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교회의 현대화’(Aggiornamento)라고 말하는 이유도 교회가 현대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세상에 문을 열어야 하며, 교회가 쇄신하여야 한다는 바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은 초대 교회 공동체처럼 성령 중심의 교회, 친교를 이루는 교회,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교회, 하느님 백성으로의 귀환이다. 여기서 하느님 백성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를 말한다. 이처럼 교회는 어떤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구체화 된다. 곧 우리 모두가 교회인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고백한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기존의 성직자 중심의 수직적 교회 구조를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수평적 교회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린 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교회는 공의회에서 말하는 이러한 모습과 닮았을까? 여성의 시각으로 이에 관해 다시 한번 살펴본다.

 

1994년에 발표된 교황 교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에 관하여」에 드러난 가톨릭교회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가톨릭교회는 매우 근본적인 이유로 여성의 사제 서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직 남자들 가운데서만 당신의 사도들을 뽑으셨다는 성서의 기록, 오직 남자들만을 선택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를 지켜 온 교회의 관례, 여성의 사제직 금지는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일치한다는 것을 일관되게 견지해 온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입각한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제도 교회의 위계적이며 남성 중심인 수직적 구조를 탈피하여 수평적이고 평등한 교회 구조로 쇄신하는 것을 복음화의 과제로 삼고 있지만, 사제품만은 여성에게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교계의 지도자로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교회 내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른 역할이 주어진다.

 

가톨릭교회는 여성의 특별한 역할을 ‘모성’에서 찾는다. 특히 여성의 모성은 생명의 신비 안에서 발견된다. 곧 여성은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서 고유한 본능으로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하며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생명의 신비를 마주한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모성에 근거한 생리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과정을 겪지만, 모성은 단순히 생물학적 생리학적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의 본질적인 의미, 곧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창조적인 능력에 동참하는 여성의 특별한 소명과 깊이 연결된다. 아이를 잉태하고 낳는 과정에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줌으로써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진리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성을 여성의 특별하고 고유한 영역으로 규정하면, 여성의 역할은 폭넓은 모성의 내용과 의미에 밀접하게 관련될 수 있다.

 

 

모성을 바라보는 교회와 페미니즘의 시각

 

여성을 모성과 연결시켜 여성의 소명감을 일깨우는 이러한 가톨릭 사상은 여성주의자의 관점에서 볼 때 단지 ‘모성 신화’로 비추어질 요소가 많다. 모성 신화란, 여성은 어머니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며, 모성을 통해 여성은 자기희생적이며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으로 이해되는 것을 말한다.

 

근대 페미니즘에서 모성은 ‘모성 신화’ 또는 ‘모성 이데올로기’로 강하게 비판받았다.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여성주의 관점에서 모성이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장애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모성 담론에서 여성의 역할은 ‘어머니 역할’(mothering)을 충실히 실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모성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제한하고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남성보다 불평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가부장적 여성 통제의 핵심 기제로서 작용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모성이 임신과 출산, 수유 같은 생물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양육과 이데올로기라는 사회적 요소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곧 가정이 여성에게 자기희생과 소외의 장이 되고, 모성은 여성의 억압을 은폐하면서 여성에게 어머니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 이른바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이다.

 

근대를 비판하는 페미니즘에서 과거 여성의 덕목으로 칭송받았던 모성이 이처럼 평가 절하되었고, 여성의 자율성과 권리, 그리고 개인의 자기완성이 더 높은 가치로 인정받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런 페미니즘의 주장과는 다른 가톨릭 사상을 세상에 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한 방법으로 1995년 ‘베이징 세계 여성 대회’에 즈음하여 가톨릭교회의 공식 견해를 밝혔다. 교황은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며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 당시 세계 여성 대회의 의제인 ‘평등, 발전, 평화’보다 더욱 중요한 일임을 상기시켰다.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참여를 주장하던 당시의 정황에서 여성의 모성적인 역할을 강조하였기에 페미니즘과 가톨릭교회는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띠었다.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21세기 사회로 접어들면서 페미니즘의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모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여성 리더십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생겨났다. 근대 모성의 한계를 벗어나 여성 리더십의 원천으로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지닌 여성을 억압하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여성의 고유한 역할과 실천 속에 형성된 모성적 가치가 여성 리더십의 원천으로 재발견되었다.

 

모성이라는 양식에 축적되어 온 ‘돌봄’(caring)이라는 가치가 여성주의적 윤리 시각으로 다루어지면서 모성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시작되었다. 곧 모성은 혈연관계에서 오는 이기적 가족주의의 틀을 벗어나며, 모성의 실천으로 형성된 사회적 속성이 여성 리더십과 상호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모성 리더십이 새롭게 거론되고 있다.

 

‘생명을 보호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역할을 강조하는 가톨릭 사상이 이 시대가 요청하는 여성 리더십과 만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회적 모성 리더십

 

가톨릭 사상은 여성 특유의 역할을 모성에서 찾는데, 그러한 모성의 영역은 교회와 맞닿아 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혈연관계의 가족 공동체 범위를 넘어선다. 교회의 원형은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관계에서 재발견된다.

 

아들을 찾아간 어머니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3.35).

 

또한 군중 가운데 한 여인이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라고 어머니를 칭송하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7-28) 하고 응답하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혈연관계의 가족 범주를 벗어나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신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새로운 공동체 건설에서 마리아는 첫 번째로 응답하는 신앙인이었다. 마리아의 소명감은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갈라 4,4)라는 「성경」 말씀을 통해 전해진다. 마리아는 믿음의 응답을 통하여 자유로운 의지로 행하였고, 자신의 긍정적 응답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진정한 주체가 되었다.

 

마리아의 모성은 하느님의 새로운 구세사 창조에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응답(루카 1,38)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성서의 마리아는 아들 예수를 품속에 감싸 안고 있거나 아들의 명성으로 칭송받으려는 여인이 아니었다.

 

마리아는 오히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자신을 온전히 내건 신앙의 여인이었고, 아들의 길을 곁에서 지켜 준 든든한 후원자였으며, 하느님의 일을 이어 간 여인이었다. 마침내 하느님의 새로운 자녀들을 양육하는 ‘교회의 어머니’가 되었다.

 

여기서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와 자녀 관계를 넘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수 있는 새로운 부모와 자녀 관계가 설정된다. 마리아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아들 예수를 낳음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마리아의 모성은 단지 아들의 몸이나 인성만이 아니라 모든 위격, 곧 신적인 차원과 연관된다.

 

마리아의 모성은 혈연관계의 육적 모성에 국한되지 않고, 신앙의 관점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의 집합체인 교회의 영적 모성을 일컫는다. 마리아는 육적으로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어머니로서 영적 어머니 역할을 수행한다.

 

교회의 어머니로서 마리아가 보여 주는 사회화된 모성은 이 세상을 당신 뜻대로 보전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려는 인간의 품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교회의 여성 영성은 모성에 바탕을 두지만, 그 영역은 지구촌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오늘날 여성의 소명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간성 상실을 막는 것’이며, 그러한 여성의 역할은 가족을 넘어 사회적 모성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사회적 모성은 사랑과 돌봄, 자애, 희생, 지혜, 희망이라는 특성을 포함한다.

 

* 강영옥 루치아 -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강사. 서강대학교에서 교의 신학을 전공했으며, 저서로 「사회적 모성 리더십」, 「열린 교회를 꿈꾸며」 등이 있다.

 

[경향잡지, 2018년 3월호, 강영옥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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