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3: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손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3-23 ㅣ No.1000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손


- 에게 해 방향에서 지중해로 들어온 필리스티아 인들(해양민족).


성서 족장 시대가 끝나고 요셉 시대가 되어 이스라엘은 기근을 피 해 이집트로 내려갔고,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러나 요셉의 공적을 잊은 파라오가 왕위에 오르면서 이스라엘은 혹독한 핍박을 받았고, 이집트 왕자로 성장한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은 기원전 15-12세기 무렵 이집트 탈출을 했다.

40년의 기나긴 광야 방랑 이후 모세는 가나안을 보지 못한 채 느보 산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모세의 후계자로 키워진 여호수아는 예리코를 기점으로 가나안을 정복했다. 그리고 각 지파에게 영토를 적당하게 분배하고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판관기로 접어든다.

‘판관’이란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시절 시대적인 필요에 따라 하느님의 영을 받아 추대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말한다. 유일한 여자 판관으로는 타보르 산의 전투로 유명한 드보라가 있고, 강한 육체를 지녔으나 도덕적 · 감성적으로 유약했던 삼손도 이스라엘의 판관이었다.

특히 삼손 이야기는 당시 필리스티아(불레셋)가 이스라엘을 억압했던 시절에 대해 값진 배경 지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스토리이다.

필리스티아는 가나안 족이 아니었고, 기원전 12세기 그리스 에게 해 쪽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 연안으로 들어온 이주민들로서(위 지도 참조)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과 시대적으로 얼추 겹친다. 필리스티아 인들은 지중해 연안 아스클론, 아스돗, 가자, 에크론, 갓 등에 살면서 이스라엘의 산악지방까지 뻗어가고자 호시탐탐 노렸다.

특히 지중해 연안을 분배받은 삼손의 지파 단이 직접적인 피해를 겪었고, 종국에는 단 지파가 필리스티아와 아모리 족에 밀려 북쪽으로 쫓겨갔기 때문에 이스라엘 북쪽 지방에는 단 지파 유적지인 텔 단이 있다(114쪽 사진 참조). 텔 단은 고대 시대에 라이스, 레셈이라 불렸다(판관 18장; 여호 19,47).

당시 지중해 연안에 살았던 단 지파와 근처에 함께 거주하던 유다 지파는 필리스티아의 압력에 정면으로 맞서야 했다. 그때 필리스티아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다소 회유적인 정책을 취했던 느낌을 준다. 강제로 억압하기보다는 서서히 침투해 들어와, 가는 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이스라엘의 독립에 지대한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삼손의 활동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띤다. 게다가 그는 동료의 지원을 받지 않고 단독으로 투쟁을 벌였기 때문에 직면해 있었던 잠재 위험이 부각되었다. 영웅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탄생부터 쉽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불임으로 고통 받다가 천사의 계시로 아이를 점지 받고 삼손을 나지르 인, 곧 하느님께 서원하여 바쳤다(판관 13장).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유다 지파와 단 지파의 경계인 초르아에 살았는데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2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마노아는 히브리어로 ‘휴식’을 뜻하고, 아들 삼손으로 말미암아 필리스티아로부터 휴식을 얻게 됨을 상징적으로 짐작하게 한다.

삼손은 팀나, 르히, 소렉 골짜기, 그리고 가자 지역 등에서 활동했다(판관 13-16장).

세기를 흔든 호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여인에게 약하다는 것인데, 삼손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렉 골짜기에서 들릴라를 만났을 때 문제는 심하게 꼬이기 시작하고, 끝내는 들릴라의 꼬임에 빠져 머리를 깎이고 가자로 끌려가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치욕을 당한다.

만일 이 이야기가 치욕적인 상황에서 끝났거나 극적으로 역전되어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면, 도덕적이지 못했던 한 호걸에 대한 단순한 스토리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자의 필리스티아 신전에 갇힌 삼손은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진정한 기도를 올렸다(판관 16,28). 이제껏 아무렇게나 사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던 신앙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주어진 장사의 힘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삼손은 필리스티아 신전을 무너뜨렸고, 이스라엘을 억압한 필리스티아 인들과 함께 짧고도 굵은 인생을 마감하여 우리에게 안타까운 영웅으로 다가온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삼손!’

몇천 년이 지난 지금 삼손의 고향인 초르아에 가면 마노아와 삼손의 가묘가 남아있다. 단순 무식했고 도덕적으로는 연약했으나 끝끝내 피 끓는 애국심과 신앙을 분출한 삼손의 열정을 품고 있는 듯하다. 심적으로는 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하느님께서는 그 안에 숨어있는 열정과 가능성을 보고 그를 도구로 쓰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판관기 저자는 삼손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사람도 도구로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 같다.

* 김명숙 소피아 - 부산교구 우정본당 신자로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다.

[경향잡지, 2012년 3월호, 글 · 사진 김명숙]


1,90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