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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화장실 없는 아파트: 핵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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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3-25 ㅣ No.1492

[행동하는 양심 – 사회교리] 화장실 없는 아파트 – 핵발전소

 

 

한번 상상해 보자. 아파트를 지어 입주를 했는데 화장실이 없다면? 집안에 화장실이 없다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시설 중 꼭 이 비유에 맞는 국가시설이 있다. 바로 ‘핵발전소’다.

 

핵발전소 사고는 우리가 아는 다른 종류의 사고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선 피폭에 따른 급성방사선증후군, 암, 유전적 변이에 따른 각종 질병과 기형 등 장기적인 후발성 이상 증세를 가져온다. 둘째, 유출된 방사성 물질은 인위적으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그 피해는 영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후쿠시마의 상황이 그렇다. 셋째, 피해를 수습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알기도 어렵고, 감당할 수도 없다. 넷째, 그 책임과 수습은 해당 기업과 현 세대가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 세대가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여기에 덧붙여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핵폐기물’(플루토늄)과 핵발전소 시설 자체가 ‘핵폐기물’이기에 안전하게 처분할 기술과 시설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사후 대책이 없는 시설이 바로 핵발전소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핵발전소를 가리켜 ‘화장실 없는 아파트’이라 부른다(『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 핵발전에 대한 한국천주교회의 성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3년).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세상은 정말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유럽의 선진국 독일은 17명으로 구성된 ‘윤리위원회’를 열어 시민들이 참여하는 토론을 하였다. 독일 정부와 시민들은 사고시에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주는 핵시설의 문제는 바로 경제나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의 문제라고 판단하였다. 종교계를 포함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결국 독일은 2011년 6월에 2022년까지 전면적인 ‘탈핵’을 선언하였다. 프랑스도 현재 사용하는 핵발전소의 수를 50% 줄이겠다고 선언하였다. 대표적인 친환경 재생가능에너지인 태양광의 성장률은 2006년 이후 연평균 85%를 상회할 정도로 폭발적이다. 위험한 핵발전소와 대기오염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청정한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의 신성장동력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지속가능한 환경,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청정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이 우리의 에너지정책 목표라며 탈핵을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를 약속했던 공약을 파기하며, 공론화를 통해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다수의 국민의 뜻이라며 강행하였다. 5기의 신규 핵발전소가 증설되게 되었다. 이전 박근혜 정부 때부터 건설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존 핵발전소 설비의 20% 이상이 증설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 수립된 ‘8차전력수급기본계획’ 데이터에 의해 박근혜 정부 시절 수립된 ‘7차전력수급기본계획’의 전력수요가 과다 예측되었고, 이것이 바로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의 증설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핵산업계와 연관된 권력과 관료들이 세금으로 사익을 추구한 결과가 핵발전소 증설이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술적 패러다임’이야말로 우상숭배라고 지적하신다. 사고가 나도, 사고가 나지 않아도 핵발전소가 만들어낸 방사능은 인간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 10만년 이상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로부터 철저하게 격리하여야 될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핵폐기물의 처분은 불가능하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러한 상황의 해답으로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다’라는 고백을 알려주셨다. 태초부터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이 죄를 불러왔고,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인간이 창조된 이래 인간이 행한 것 중 가장 어리석고 위험한 선택이 바로 ‘핵’이다. 인간을 파멸로 몰고 가는 물질 중심 우상숭배의 극치가 바로 ‘핵발전소’이다. 인간이 살 길은 우상숭배가 아닌 온전한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회복이다. 이것은 성령의 이끄심대로 ‘돈’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물며 세계는 핵발전소를 포기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림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위험한 핵발전소를 포기하고, 하느님이 선물해 주신 청정한 에너지를 선택할 때이다.

 

[외침, 2018년 3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양기석 신부(교구 환경위원장, 송전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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