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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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14 ㅣ No.1278

[124위 시복 특집] 윤지충 바오로(1759-1791) · 권상연 야고보(1751-1791)


“저는 결코 이단(異端)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천주교를 믿은 것은 사실입니다.”



윤지충 바오로는 전라도 진산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종사촌 정약용 요한을 통해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된 그는 스스로 교회 서적을 구해 읽으며 교리를 익혀 1787년에 인척인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편 윤지충의 이종사촌으로 이웃해 살던 권상연 야고보는 윤지충이 탐독하던 책을 빌려 보고 신앙에 눈을 떠 얼마 후 윤지충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1791년 조정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1790년 북경의 구베아(A. Gouvea) 주교가 조선 교회에 내린 지침에 따라 윤지충이 권상연과 함께 신주를 불사르고 전통 예절에 따른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산 관아에 자수한 윤지충과 권상연은 여러 차례의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천주교가 진리임을 역설하며 “절대로 신앙만은 버릴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두 사람은 갖은 문초와 혹독한 형벌을 겪으면서도 “천주를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다.”며 당당히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당시 전라 감사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신음 소리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다고 하면서 임금이나 부모의 명을 어길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1791년 12월 8일,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마치 잔치에 가듯 형장으로 걸어가 망나니에게 목이 잘려 순교하였습니다. 한국의 첫 번째 순교자가 탄생한 것입니다. 친척들이 아흐레 만에 관장의 허락을 얻어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했는데, 물그릇에 담긴 물이 꽁꽁 어는 엄동설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형구(形軀)에 묻은 피가 방금 전에 흘린 것처럼 붉고 선명한 것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이 놀라운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은 경탄하며 재판관들의 오판에 항의하였고 두 순교자의 무죄를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교우들은 여러 장의 손수건을 순교자들의 피에 적셨으며, 그 가운데 몇 조각을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시 병으로 죽어 가던 사람이 이 손수건을 만지고 나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서울대교 홍보국 엮음 | 그림 박지훈, 124위 약전 ⓒ CBCK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2014년 4월 27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주일, 이민의 날) 서울주보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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